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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철, 노숙일기
가난한 밤은 길다
수녀들이 지나가고
신부들이 지나가고
골판지 박스가 오고
신문지들이 오고
밤은 천천히 걷는다
소주병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며
욕설을 폭죽처럼 터뜨린다
차곡차곡 쌓인 하루 위에 몸을 눕히면
잠 속으로 발자국이 찍히고
아직 밥을 먹지 못한 영혼이 휘파람 소리를 키운다
밤은 저 홀로 깊어가고
잠들지 못한 이들의 신발은
발레를 하듯 절뚝인다
김소월, 옛낯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 오고
그리움의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그대여, 말을 말어라, 이후부터
우리는 옛낯 없는 설움을 모르리
신동엽, 노래하고 있었다
노래하고 있었다
달리는 열차 속에
창가 기대앉아
지나가는 풍경
바라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물결
양털 같은 세월 위서
너는 노래하고 있었다
죄없는 사람
가로수 밑 걸으며
또각또각 구둣소리
눈녹아 하늘로 번질 때
하늘은 바람
대지 위 고요
노래하고 있었다
창가 기대앉아
지나가는 들녘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로수 위
구름 위
보이지 않는 영화로운
미래로의 소리로
거대한 신은
소맷깃 뿌리며
부처님 같은 얼굴로
내 괴로움 위서
노래하고 있었다
김광섭, 보이지 않는 별
여기 촛불을 켜고 있음은
누구를 기다림인가
시간을 잊어버린 뒤에
별들이 나타난다
조고만 샛길을 걸어
사람들은 지나간다
너를 보고 가는 사람들을
별들아 다 너는 기억하느냐
아침엔 자라는 잎사귀같이
짙은 봄 생각을 하건만
저녁 빛은 멀어지며
향수 가까이 젖는다
저 너머 보이지 않는
별이 또 있는가
아마 내가 빠지는 건
빛 이르지 못하는 거긴갑다
임명수, 낙타 하나
낙타 하나 가지고 싶다
내가 사는 이 도시는 사막 같아서
푸른 숲 다정하게 흔들리는
하늘 마을에 가고 싶다
거기 지금도 너만은
젖은 풀잎처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직 친애의 말 나누고 있을 것이다
아, 너에게로 가고 싶다
너에게 가는 길을 아득하고
아득하게 돌아가는 목마른 구릉 길
여기는 사멸의 바람만 부는
사막 같아서
떠나자고 어서 떠나가자고
은빛 방울 딸랑거리는
낙타 하나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