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독에서 빚어둔 술 한 잔 떠 마시다 문득 생각이 나서 씁니다.
술 좋아하는 것도 집안 내력인가, 우리 외증조할아버지께선 장이 서는 날이면 읍내로 나가서는 종일 술을 퍼마시다가 돌아오시곤 했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잔뜩 만취해서 돌아오는 깊은 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취하긴 했어도 평상과 다름없이 지나오는 길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초가가 하나 있더랍니다.
그래서 ‘거 참 이상하다’ 하면서 슬몃 기웃거려 보는데, 그 집에서 여인 하나가 나와서는 ‘술 한잔 하고 가이소’ 하고 붙잡았다고 합니다.
공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그런 제안에 어찌 거절할 수 있었겠습니까. 냉큼 들어가서 술잔을 받았더라지요.
그런데 그 여인이 글쎄, 그 옛날에 술안주로 육고기를 내왔다더군요.
우리 할아버지, 만취 중에 ‘웬 떡이냐’ 싶기도 했었지만 시원찮은 기분이 들어서는,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며 술을 마셨답니다. 그래서 소매에 슬쩍, 고기 먹고 남은 뼈를 몇 조각 넣었다지요.
그러다 술이 다 떨어졌는가, 시간이 늦었는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하고 집엘 들어와서 곤한 잠에 들었다는군요.
그만치 술을 마셨으니 아무래도 꿀잠을 주무셨겠지요.
그런데 날이 밝아 눈을 뜨고 생각해보니, 전날 초가에서 생면부지의 여인에게 술 얻어마신 일이 꼭 꿈결 같았더랍니다.
그래서 찬찬히 생각을 하다 소매에 넣어둔 뼈들이 생각이 나서 슬몃 꺼내봤대요.
그런데 소매에서 뼈가 나오긴 나왔는데, 으레 오래된 뼈가 그렇듯 검게 삭은 뼈들이 나왔다는군요.
무덤 속에서 오래 풍화된 뼈처럼 검디검은 뼈들이...
원래 그 부산지역이 옛날에 장난치기 좋아하는 도깨비들이 많이 있었다는군요.
도깨비 관련한 외증조할아버지 일화가 몇 개 더 있는데 제가 지금 슬슬 취하는고로 나중에 올리거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