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손을 뻗어본다.
앞으로 10cm
앞으로 5cm
앞으로 1cm.
그리고 그 손을 거두고 만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슥, 하고 붙잡는다.
그것이 그와 나의 거리다.
1cm.
가깝지만 영원히 줄어들지 못할 거리.
그는 언제나 함께 있었다.
질긴 인연이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누구나 한 명 정도 있는 그런 소꿉친구일 뿐 이었다.
언제였을까.
큰 사고가 있었다.
그는 몇 주 뒤에 학교로 돌아왔지만 정말 다신 만나지 못할 뻔 했다.
그리고 그 뒤로 그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그가 나에게 인사하면 두근거림에 손이 떨릴 정도가 되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면 몸이 굳어버렸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그에게 손을 뻗었을 때였다.
예전이라면 아무런 생각 없이 뻗은 손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전하지는 못한다.
이 1cm가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원히 없을 것이다.
알고 있어서 더욱 아프다.
하지만 뻗어본다.
이 1cm가 닿기를 바라면서.
그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까지.
하지만 결국 붙잡지 못한다.
다시 또 손은 허공에서 맴돌 뿐이다.
그럴 뿐이다.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그냥 잊어버리라고.
그를 자꾸 생각하면 계속 생각날 뿐이라고.
지당하신 말씀이다.
다만 그래도 생각하고 만다.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만다.
그가 인사하는 모습을
그가 장난치는 모습을
그가 웃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다음날,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지 않았다.
단지 마음 한 켠이 아플 뿐이다.
언제나 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하며
언제나 다를 것 없는 길을 걸어가며
언제나 다를 것 없는 그의 모습을 쫒았다.
하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오늘이 무슨 날이었을까.
중요한 날 이었던 것 만은 기억하고 있다.
1년.
갑자기 떠올랐다.
그가 학교에 돌아온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사실이 이런 상황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정말 잠깐 눈을 돌린 사이에 그는 사라졌다.
나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찾아야만 한다.
이 마음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왜 사라졌는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달렸다.
그리고 그를 찾았다.
그는 횡단보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저 웃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달려갔다.
손을 뻗었다.
앞으로 10cm
앞으로 5cm
앞으로 1cm.
나는 더 나아가야 할까.
이 거리를 좁혀도 될까.
그에게 닿아도 될까.
그를 보았다.
그는 그때의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선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거리를 넘어 손을 뻗었다.
이내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1cm를 넘어선 그 끝엔
오로지 허공뿐이었다.
사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잊어버리라는 그 말에서도.
언제나 허공만 바라보던 그의 부모에게서도.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던 그 사람들의 눈에서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학교에 돌아온 일 따윈 없었다는 것을.
이 장소에서, 1년전에 그는 사라졌다는 것을.
하지만 다시 만나고 싶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그래서 1cm를 넘지 못했다.
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했다고 되뇌는 나를 알고 싶지 않았다.
그 1cm가 수억 광년보다도 먼 거리라는 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뻗지 못했다.
그 작은 거리를.
그 1cm를.
세상이 어두워져만 간다.
하늘에 손을 뻗어본다.
1cm
5cm
10cm..
이내 팔을 쭉 뻗어보지만
그 하늘에 손은 닿지 않았다.
앞으로 몇 cm를 더 뻗어야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허공에 맴도는 손 끝은 흔들렸다.
그저 흔들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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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떴다.
언제나 다를 것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언제나 다를 것 없는 하늘 아래에 있었다.
언제나 다를 것 없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다를 것 없는 그가 내 앞을 걷고 있었다.
정말 다를 것 없이.
나는 그에게 걸어간다.
그리고 손을 뻗어본다.
10cm
5cm
1cm.
그리고 멈췄다.
아.
이 허공에 맴도는 손끝을 어디에선가 본 적 있다.
결코 닿지 않을 것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뻗어본다.
그 거리가
1cm라도.
1m라도
1km라도.
수억 광년이라도.
1년이라도.
뻗어본다.
무엇보다 길고 먼, 1cm를 향해 뻗어본다.
아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