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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오디와 전화
바람이 불고 전화가 왔다
바람이 부는데도 수화기를 드는 순간
전화가 툭 끊어졌다
바람이 불고 전화가 오지 않았다
집이 혼자 서 있다
울타리 넘어 바람이 뽕나무에서 불고
오디가 까맣게 익는다
안상학, 겨울나무
여름내
아무도 모르게 까치집 품고 살았다고
이제서야 첫눈에게 고백하는
겨울나무여
미안하지만 나는 너하고는 달리
말할 수 없는 사랑을 가졌어라
아무도 모르는 사랑
오래오래 품고 살았어라
겨울나무여
어느 세월
내 인생에도
가없는 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린다 해도
나 이렇게 가슴 깊이
따뜻한 사랑 품고 살았다 고백하지 않으리라
그때도 지금처럼
안으로만 깊이 뿌리를 내리는
아무도 모르는 우리 사랑에 대해서만 골몰하리라
강경호, 봄 들녘에서
죽음으로 일생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서둘러 유품을 태우고 흔적을 지운다 해도
들녘엔 푸른 핏줄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
거기 강물 끝 어딘가 무엇이 된 질긴 목숨이
손짓발짓으로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한때 네가 살던 마을에도
나지막한 산언덕 오래된 봉분은 있다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 모두 무심해진다 해도
생전의 착한 것, 죄가 되는 것
어딘가를 떠도는 그리움으로 남아
아직도 너는 내게 불씨로 글썽이는데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무엇이 되어 다시 살아 왔듯이
무엇이 되어 다시 살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뜨거운 마음 차마 가슴 저며
숲과 강마다 살아 타오르는 것을 보라
먼 옛날 무엇이었던 네가
저렇듯 수백 번 옷을 갈아입고
봄 들녘 또 누군가를 눈부시게 부르고 있다
천양희, 후기(後記)
시는 내 자작(自作)나무
네가 내 전집(全集)이다
그러니 시여, 제발 날 좀 덮어다오
성춘복, 밤마다 나는
밤마다 나는 돌을 굽는다
흙을 긁어 반죽하고
모양새를 만든다
네모지고 번듯하게 달궈 뜨거운 돌
쌓고 다져 집을 짓는다
담 높여 나를 가둔다
나는 무섭다
날이면 날마다 서른 장 상백 장
더 많은 무덤의 내 안벽
꼭꼭 나를 숨겨도 두렵고
새빨갛게 달군 불의 내 죄
몇 백배 키로 자란
안타까움의 돌색깔과 무서움의 어둠
그보다 나는 깜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