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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슬픔을 끊어서 운다
게시물ID : lovestory_904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3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8/09 10:50:1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최하림시를 태우며

 

 

 

밀면 돌멩이 되어

가는 불빛에도 흔들릴

석불(石佛)로나 돌아가 웃을까

동서로 떠돌며 노래 부를까

 

나는 시 써서 시인이고 싶었건만

오늘은 느티나무 아래서 시들을 모아

불태우네 점점이 날아가는 새들과

아직은 체온이 남은 기억들 그리고

지평선에 떠도는 그림자들

 

나는 시 써서 시인이고 싶었건만







2.jpg

맹문재식성에 대하여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은 먹어도

짬뽕은 절대 먹지 않던 어린 날 식성이

바뀐 지 오래

식성이 뒤바뀌거나

둘 다 먹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 먹는 것이다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면 복이 든다고 믿고

짜장면만 먹던 때

지나

 

나는 무단횡단으로 벌금을 문 적이 있다

그러나 벌금은 내게 길을 주지 않았다

나는 청춘의 규율로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정년이 보장되지 않았다

나는 논문을 써 선거권을 쥐었다

그러나 나의 권리를 소문마저 비웃었다

 

텔레비전 뉴스가 은하수만큼이나 쏟아져 내리는

쓸쓸한 중국집

나는 짬뽕 국물까지 마신다

마당을 쓸던 빗자루를 던져두고

텔레비전 앞에서

바뀐 식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저녁 나의 식성은 나의 것이 아니다







3.jpg

박성우

 

 

 

이파리 무성한 등나무 아래로

초록 애벌레가 떨어지네

사각사각사각

제가 걸어야 할 길까지 갉아먹어서

초록길을 뱃속에 넣고 걸어가네

 

초록 애벌레가 맨땅을 걷는 동안

뱃속으로 들어간 초록길이 출렁출렁

길을 따라가네

먹힌 길이 길을 헤매네

등나무로 오르는 길은 멀기만 하네

 

길을 버린 사내 길 위에 앉아 있네







4.jpg

성선경하여가(何如歌)

 

 

 

바람이 분다

바람 따라 머리칼을 흩날리며 살면 어떤가

몇 가닥 새치를 기르며 살면 또 어떤가

단추 한두 개쯤 풀고 살면 어떤가

노점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마시며 살면 어떤가

오뎅 국물을 후후 불며 안주삼아 속 풀며 살면 어떤가

자못 신경이 쓰이는 친구의 이야기도 못 들은 척

아니면 글쎄 뒤끝을 흐리며 살면 어떤가

한 번도 꽃답게 핀 적이 없었다고 너를 위해

뜨거운 적이 없었다고 찔끔거리면 어떤가

사는 것이 투사(鬪士)가 아니면 또 어떤가

바람이 불지 않는다

외투 깃을 올리고

땅만 보며 걸으면 어떤가

그렇게 살면 또 어떤가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 가는 나이

마흔 다섯







5.jpg

김규태슬픔을 끊어서 운다

 

 

 

밤새 이슬에 젖어 있는 숲에선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그 중 애틋하다

빛이 드나들지 않는 후미진 섶에 엎드려

긴 촉수를 세우고

보이지 않는 하늘을 휘저으며

어떤 모양의 슬픔이라도

가장 짧고 애잔하게 끊어 놓은 울음

몸짓으로 느끼지 않고

어떤 혼백의 사주를 받아 흘리는

슬픈 원형의 목소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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