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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빛나는 눈을 뜬다
게시물ID : lovestory_903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3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7/31 18:35:0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선우매발톱

 

 

 

야생화 전시장에서 산 거라고먼 곳에서

자그만 매발톱풀을 공들여 포장해 보내왔습니다

그 누구의 살점도 찢어보지 못했을

푸른 매발톱

한 석 달 조촐하니 깨끗한 얼굴이더니

깃털 하나 안 남기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매발톱풀을 아랫녘 밭에 묻어주러 나간 날은

이내가 피곤하게 몸 풀고 있는 저물 무렵이었는데

거름이나 되려무나

밭 안쪽에 화분 속을 엎었습니다

화분흙에 엉겨 있는 발톱의 뿌리는

보드라운 이내 속 깊은 허공 같아서

여리디 여린 투명한 날개들이

그제서야 사각대며 일제히 날아올랐습니다

아주 오랜 동안 내 꿈속을 찾아왔으나

한 번도 내게 얼굴을 보여준 적 없는 바람을 타고

반짝이는 수천의 실잠자리 떼

이내 속 깊은 허공으로 날아갔습니다

 

사람에 의해 이름 붙여지는 순간

사람이 모르는 다른 이름을 찾아

이길 떠나야 하는 꽃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2.jpg

나희덕소리들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발밑의 흙이 자글거리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3.jpg

박성룡메밀꽃

 

 

 

달밤에 할 일이 없으면

메밀꽃을 보러 간다

섬돌가 귀뚜라미들이

낡은 고서(古書)들을 꺼내 되읽기 시작할 무렵

달밤에 할 일이 없으면

나는 곧잘 마을 앞 메밀밭의

메밀꽃을 보러 간다

병든 수숫대의 가슴을 메우는

그 수북한 메밀꽃 물결

때로는 거기 누워서

울고도 싶은 마음

때로는 또 그 속에 목을 처박고

허우적거리고 싶은 마음







4.jpg

김현승시의 맛

 

 

 

멋진 날들을 놓아두고

시를 쓴다

고궁엔 벚꽃

그늘엔 괴인 술

멋진 날들을 그대로 두고

시를 쓴다

 

내가 시를 쓸 때

이 땅은 나의 작은 섬

별들은 오히려 큰 나라

 

멋진 약속을 깨뜨리고

시를 쓴다

종아리가 곧은 나의 사람을

태평로 2가 프라스틱 지붕 아래서

온종일 기다리게 두고

나는 호올로 시를 쓴다

 

아무도 모를 마음의 빈 들

허물어진 돌가에 앉아

썩은 모과 껍질에다 코라도 부비며

내가 시를 쓸 때

나는 세계의 집 잃은 아이

나는 이 세상의 참된 어버이

 

내가 시를 쓸 땐

멋진 너희들의 사랑엔

강원도풍의 어둔 눈이 나리고

내 영혼의 벗들인 말들은

까아만 비로도 방석에 누운

아프리카 산 최근의 보석처럼

눈을 뜬다

빛나는 눈을 뜬다







5.jpg

송종찬지나가는 바람

 

 

 

가을비 내리는 날이면 텅 빈 몸과 마음 사이에도

전류가 흐르고

문득 오지 않는 것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것인지

 

지난 가을 몇 사람만의 침묵을 싣고

새벽안개 속을 쏜살같이 빠져나가던 영구차 한 대

떠나간 연인을 잊을 수 없다며

제초제를 마신 그녀의 둥근 몸에서 수만 개의 풀들이 돋아나

식도를 태우고 폐를 지우고

혈관 깊숙이 타들어가던 원망마저 씻어낸 마알갈 얼굴로

 

바람 부는 날이면 다시 풀들이 쓰러지고

억새가 울고

목숨 타는 것들이 말을 걸어오기라도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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