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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초가(楚歌)
나는 요새 무서워져요
모든 것의 앞만 보여요
풀잎 뜬 강(江)에는 살 없는 고기들이 놀고 있고
강물 위에 피었다가 스러지는 구름에선 문득
암호(暗號)만 비쳐요
읽어 봐야 소용없어요
혀 잘린 꽃들이 모두 고개 들고
불행한 살들이 겁 없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있어요
달아난들 추울 뿐예요
곳곳에 쳐 있는 세(細)그물을 보세요
황홀한 게 무서워요
미치는 것도 미치지 않고
잔구름처럼 떠있는 것도 두렵잖아요
김윤성, 나무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 속에
너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떠나려고 한다
한하운, 손가락 한 마디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 터를 가려서
깊이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황금찬, 고속버스 안의 나비
고속버스 안에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휴게소에서
문을 열어 놓았을 때
날아 들어온 나빈가 보다
버스는 창을 닫고
시속 120킬로의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장다리밭에서 날고 있는가 하지만
지금 나비는 가속에 실려
부산으로 가는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시간이라는 이름의 버스를 타고
가속으로
종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버스의 창이 열리면
꽃밭이 있겠지만
나의 종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비와 같이 가고 있다
김상옥, 누님의 죽음
고이 젖은 눈썹 불빛에 깜작이며
떨리는 손을 들어 가슴위에 짚으시고
고향에 늙은 어무니 뵙고 싶어 하더이다
그 밤에 맑은 혼(魂)은 고향으로 가셨는지
하그리 그린이들 이름을 부르시고
입술만 달싹거리며 헛소리를 하더이다
마지막 지는 숨결 온갖 것을 갈랐건만
어린것 품에 안고 젖꼭지 쥐어 준채
새도록 눈을 쓸어도 감지 않고 가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