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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새장 같은 얼굴을 향하여
어느 날의 하루는 별 기쁨도 보람도 없이
다만 밥 먹기 위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저녁엔
여물통에 머리를 떨군 소가 보이고
달이 떠도 시큰둥한 달이 뜬다
지난 한 해는 바쁘기만 했지
얼마나 가난하게 지나갔던가
정말 볼품없는 돼지해였다
시시한 하루에
똑같은 하루가 덧보태져
초라한 달이 되고
어두운 해가 되고
참 시큰둥하고 따분하게 살았다
놀라울 것 없는 이 평범한 삶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빈 새장 같은 죽음의 얼굴은
이빨에 앵무새 깃털을 문 채
웃고 있는데
문덕수, 원(圓)에 관하여
네 품안에 한 알의 씨로 묻혀
너를 닮은 과일로 익고 싶다.
내 물살의 칼날은 꽃잎이 되고
뾰죽한 내 돌부리는 만월(滿月)처럼 깎이어
너를 닮아 차라리 타버리고 싶다
외길로만 뻗는 이 직선을 휘어 잡아다오
부러져 모가 서는 이 삼각(三角)을 풀어다오
꺾이어 모가 서는 이 사각(四角)에서 놓아다오
윤곽이 아니라 그대로 가득 찬 충실이기에
실은 우주도 너를 닮은 충실이기에
네 품안에 떨어질 하나의 물방울로
바다처럼 넘치며 출렁이고 싶다
천양희, 외길
가마우지새는 벼랑에서만 살고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삽니다
유리새는 고여 있는 물은 먹지 않고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들은 날아오릅니다
새들은 고소 공포증도 폐쇄 공포증도 없습니다
공중이 저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놓아 두시지요
외길이 나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요
박태문, 봄이 오면
바람 불고 어둠이고 겨울이다
바람 그치고 어둠 걷히면
봄이 오리라
봄이 오면 임이여
그대 눈물 글썽이리라
그대 글썽이는
눈물 그대로 세상을 보면
그대 눈물 그만큼 세상은 밝아오고
임이여, 그대 눈물 그만큼
그 빛깔만큼
세상은 또 그만치 살고 싶어지리라
한결 더 살고 싶어지리라
천상병, 갈매기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