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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봄날에 철창에 기대어
봄이면 장다리밭에
흰나비 노랑나비 하늘하늘 날고
가을이면 섬돌에
귀뚜라미 우는 곳
어머니 나는 찾아갈 수 있어요
몸에서 이 손발에서 사슬 풀리면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어요 우리집
그래요 어머니
귀가 밝아 늘상
사립문 미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목소리를 듣고서야 자식인 줄 알고
문을 열어주시고는 했던 어머니
사슬만 풀리면 이 몸에서 풀리기만 하면
한달음에 당도할 수 있어요 우리집
장성 갈재를 넘어 영산강을 건너고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영암이라 월출산 천왕 제일봉도
나비처럼 훨훨 날아 찾아갈 수 있어요
조그만 들창으로 온 하늘이 다 내다뵈는 우리집
권혁웅, 떡집을 생각함
우리 집에 없는 건 그 콩가루였네
사람들이 담장 너머로, 쑥떡 쑥떡
씹듯이 우리를 건너다보았네
우리는 얻어맞은 찹쌀처럼
차지게 손을 잡았지 개피떡에 든 소처럼
조그맣게 웅크렸지 그가
아픈 자리마다 참기름을 발라주었네
먹다 남은 막걸리와
뜨거운 물을 멥쌀에 개어 증편을 만들 때엔
우리 마음도 함께 증발했지
그래, 우리는 그렇게 그 집을 떠났지만
지금도 그 집을 생각하면
나는 백설기처럼 마음이 하얗게 되네
김선우, 단단한 고요
마른 잎사귀에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 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 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채머리 떠는 소리
멧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 것들 물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 인사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주는 소리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 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윤동주, 유언
후어―ㄴ한 방에
유언은 소리 없는 입놀림
바다에 진주 캐러 갔다는 아들
해녀와 사랑을 속삭인다는 맏아들
이 밤에사 돌아오나 내다봐라
평생 외롭던 아버지의 운명
감기우는 눈에 슬픔이 어린다
외딴집에 개가 짖고
휘양찬 달이 문살에 흐르는 밤
김선태, 갈대의 시
황량하다고 너는 소리칠래
버릴 것도 추스를 것도 없는 빈 들녘
바람이 불면 외곬으로 쓰러져 눕고
다시 하얗게 흔들다 일어서는 몸짓으로
자꾸만 무엇이 그립다 쉰 목소리로 오늘도
그렇게 황량하다고 너는 소리칠래
소리쳐 울래
외롭다고 너는 흐느낄래
만나는 바람마다 헤어지자 하는 겨울
지금은 싸늘히 식어 버린 사랑이라고
메마른 어깨마다 아픔으로 서걱이며
떠는 몸짓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오늘도
그렇게 외롭다고 너는 흐느낄래
흐느껴 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