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그를 꾸준히 지켜봤습니다.
저는 김어준 총수를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기획하여 세상을 들썩거리게 만든 판이 대체 몇 개인지...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되, 비판할 것은 제대로 까야
서로 좋은 겁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업그레이드 되지요.
어제 뜬 파파이스에서 김어준이 '더 플랜'에 대한 반론들에 재반론을 하는 걸
보고서 이 글을 쓰는 겁니다.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그 재반론이 너무 허약한데다가
우격다짐식이어서요.
(김어준은 황우석 사태 때도 이랬습니다.
그가 황당한 주장을 할 때도 있어요.
저도 때때로 이상한 주장을 하거나 잘못된 이론에 경도될 때가 있지만
새로운 증거나 제대로 된 반박이 나오면 얼른 수긍하는 쪽입니다.
우리 김어준 총수는 이게 잘 안돼요 ^^)
딴지 내부 필진이나 여러 게시판, 블로그 등에서 나온 '더 플랜'에 대한 반론을
정리하고 약간의 제 의견을 덧붙이면 이렇습니다.
1. 박근혜가 백만표 이상을 이겼으므로 이게 조작이라면 100장 단위로 묶은
표 중 몇 장씩 혼표가 나와야 한다. 개표심사부에 있던 몇 만명이,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백장 묶음을 휘리릭 넘기기만 해도 눈에 확 뜨일텐데?
기계만 믿고 소홀히 검표를 했다, 개표장이 혼란스럽다...는 주장은 그 수만명의 지성을
모독하는 소리다.
2. 노무현이 이겼을 때, 그를 받아들일 수 없던 저쪽 수구세력이 재검표를 주장, 결국
재검표를 했다 - 한국의 투표시스템은 투표지라는 결정적 물증이 남는다
곳곳에서 혼표가 발견되었다면, 그 당시 바로 재검표에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 대로, 혼표가 대규모로 나왔다는 보고는 전혀 없었고, 따라서 재검표도 없었다.
3. 개표보다 방송이 더 빨랐다? - 간단하다. 언제나 현장의 기자들이 결과를 먼저 보낸다.
백보 양보하여, 만약 어떤 해커가 전국의 모든 투표소, 또는 상당수의 투표소의 개표 결과를 미리 설계해서
미리 방송에 결과가 뜬거라고 치자.
이게 과연 가능한가? 분류표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사람이 판단하는 미분류표가
누구 표로 분류될지 어찌알고 끝자리 숫자까지 맞춰서 미리 디자인을 한단 말인가?
끝자리 숫자가 틀리는 개표소가 대규모로 발생할텐데?
(김어준의 주장에 따른 '정상표를 해커가 미분류표로 보낸 경우' 말고 진짜 미분류표의 경우를 말함.
해커는 이 진짜 미분류표의 숫자를 미리 알 수 없음)
그리고 재검표의 위험이 있다.
만약 이렇게 대규모의 혼표를 만들었다면, 재검표에 대비하여
엄청난 숫자의 인원이 동원되어 선관위의 감시망을 뚫고, 표의 숫자를 저 디자인된 숫자에 맞춰서 다시 넣고 빼고 해야 한다.
과연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4. 이른바 K값...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한 오해다.
선거관리에 참여해 본 사람들의 일관된 증언에 따르면, 노인들은 정말로 기표 실수가 많다.
(유영근 부장판사의 책 내용 참고)
분류표의 '문재인 : 박근혜 비율'이 미분류표에도 같게 나와야 한다는 것은
이 변수를 무시한 잘못된 전제다.
지난 대선은 사상 유례없는 세대 투표였기 때문에 노인들이 많이 만들어내는 미분류표에서
박근혜 분류표가 많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5. 김어준은 이 노인 변수는 이미 기각된 것이라고 하며 이렇게 말한다.
'노인 변수가 우리도 걱정되어 샘플을 100개나 뽑아봤다. 젊은 세대가 많은 지역의 K값이 오히려 높은 곳도 있다.
나이가 변수가 아니라는 증거다'
이상한 주장이다. 어느 지역에 젊은이의 인구비율이 높으면 그 지역에 사는 노인들은 기표실수를 안한다는 것인가?
그 지역에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것과 그 지역의 노인이 미분류표를 만들어내는 비율에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오히려, 노인이 많이 사는 시골의 노인들이 더 정정하고 활동적이며, 도시에서 젊은이들에게 부양받고 사는 노인들이
더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는 가정은 안해보나?
문재인 지지가 높았던 전라도의 시골지역의 K값이 낮고 그 반대의 경우인 경상도의 K값이 높았다는 것은
여러가지 시사점을 준다.
결론입니다.
영화 '더 플랜'은 선거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준다는 차원 정도에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내용 자체로는 너무나 허점이 많고 쉽게 반박될 수 있는 수준이에요.
저도 (영화에서 증명한 것 처럼) 해킹이 가능한 분류기 사용보다는 사람이 직접, 아예 투표소에서 바로 개표까지 해버리는 것에
찬성하는 쪽입니다만 이 영화는 너무 나갔습니다.
김어준 총수가 애는 썼는데.....많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조사 및 영화 제작 과정에서 자기에게 쓴소리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였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