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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가난의 골목에서는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그 정도로 알거라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이 아닌 것가
우리의 골목 속의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도 옳은 일쯤 되리라
그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
참말로 참말로 우리의 가난한 숨소리는 달이 하는 빗질에 빗겨져
눈물 고인 한 바다의 반짝임이다
신동집, 새벽녘의 사람
아침노을을 안고
새벽녘의 사람은 서 있다
누구인지 나도 잘 모르는데
지평선(地平線)에 한 발을 걸치고
뒷모양은 여전 움쩍도 않는다
이대로 언제까지
한번은 그도 몸을 일으켜
해 짧은 날의 들판을 건너가리라
새벽녘의 사람은 빨리도
해지는 기슭의 사람이 되는가
아침을 닮은 저녁노을의
불의 흔적(痕跡)도 마저 거두며
이육사, 나의 뮤즈
아주 헐벗은 나의 뮤―즈는
한 번도 기야 싶은 날이 없어
사뭇 밤만을 왕자(王者)처럼 누려 왔소
아무것도 없는 주제였만도
모든 것이 제 것인 듯 뻐틔는 멋이야
그냥 인드라의 영토(領土)를 날라도 단인다오
고향은 어데라 물어도 말은 않지만
처음은 정녕 북해안(北海岸) 매운 바람 속에 자라
대곤(大鯤)을 타고 단였단것이 일생(一生)의 자랑이죠
계집을 사랑커든 수염이 너무 주체스럽다도
취(醉)하면 행랑 뒤ㅅ골목을 돌아서 단이며
보(褓)보다 크고 흰 귀를 자조 망토로 가리오
그러나 나와는 몇 천겁(千劫) 동안이나
바루 비취(翡翠)가 녹아 나는듯한 돌샘ㅅ가에
향연(饗宴)이 벌어지면 부르는 노래란 목청이 외골수요
밤도 지진하고 닭소래 들릴 때면
그만 그는 별 계단(階段)을 성큼성큼 올러가고
나는 초ㅅ불도 꺼져 백합(百合)꽃 밭에 옷깃이 젖도록 잤소
홍해리, 우리들의 말
거리를 가다 무심코 눈을 뜨면
문득 눈앞을 가로막는 산이 있다
머리칼 한 올 한 올에까지
검은 바람의 보이지 않는 손이
부끄러운 알몸의 시대
그 어둠을 가리우지 못하면서도
그 밝음을 비추이지 못하면서도
거지중천에서 날아오고 있다
한밤을 진땀으로 닦으며 새는
무력한 꿈의 오한과 패배
어깨에 무거운 죄 없는 죄의 무게
깨어 있어도 죽음의 평화와 폭력의 설움
눈뜨고 있어도 우리의 잠은 압박한다
물에 뜨고 바람에 불리우고
어둠에 묻히고 칼에 잘리는
나의 시대를 우리의 친화를
나의 외로움 우리의 무예함
한 치 앞 안개에도 가려지는 불빛
다 뚫고 달려갈 풀밭이 있다면
그 가슴 속 그 아픔 속에서
첫사랑 같은 우리의 불길을
하늘 높이 올리며 살리라 한다
김현승, 참나무가 탈 때
참나무가 탈 때
그 불꽃 깨끗하게 튄다
보석들이 깨어지는 소리를 내며
그 단단한 불꽃들이 튄다
참나무가 탈 때
그 남은 재 깨끗하게 고인다
참새들의 작은 깃털인 양 따스하게 남은 재
부드럽고 빤질하게 고인다
까아만 유리 너머
소리 없이 눈송이가 나리는 밤
호올로 참나무를 태우며
물끄러미 한 사람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짧은 목숨의 한 세상
그 헐벗은 불꽃 속에
언제나 단단하고 깨끗하게 타기를 좋아하던
지금은 마음의 파여 풀레스 안에
아직도 깨끗하고 따스하게 고여 있는
어리석은 한 사람의 남은 재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