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첫 번째 밤, 광대패 속의 여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58683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두 번째 밤, 절지당(絶指堂).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60495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세 번째 밤, 원귀의 저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4072
야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네 번째 밤, 개천에서 태어난 괴물(上)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6198
“여, 여보… 그 배는 다 무엇이요…?”
심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가지고도 아랑곳 않고 그저 생 쑥만 뜯어먹는 아내. 이미 걸신이나 객귀 따위가 들었는지 그 눈도 온통 공허하고 총기가 없었다. 남편은 이러다 사달이 나겠다 싶어 얻어맞고 침까지 맞아가며 구해온 쉰밥들을 내팽개치고 아내를 뜯어 말렸다. 배가 아프다고 앓던 것이 얼마 전인데, 배가 저렇게 괴악할 정도로 부풀기까지 한 판국이었다. 거기다 먹었다 하면 필시 배탈이 날 정도로 생 쑥을 먹어대니 당황할 수밖에.
“여, 여보! 이러지 마시오! 이러지 마시오!”
필사적이 되어 말려보는 남편이었으나, 아내의 그 앙상한 팔에서 나오는 힘은 몹시도 생소한 것이었다. 항상 굶주려 건드리면 부러질 듯 보이던 그 팔이 어떻게 이런 힘을 내는지. 냅다 달려들었던 남편은 아내의 팔짓 한 번에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던 것이다.
그러다 아내가 땅바닥에 떨어진 쉰밥덩어리들을 발견했고, 그제야 뜯던 쑥들을 내려놓은 채 밥덩이를 향해 뛰어들어 그것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흙덩어리인지 밥 덩어리인지 모를 그 지저분한 것을 털어내지도 않고 입에 우겨넣는다. 모래나 흙을 씹는 소리가 으적으적 들린다.
행여나 어금니라도 상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씹는 소리가 흉하다.
“내가 잘못했소! 여보! 내가 잘못했소! 흐흐흑…!!”
더 이상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주저앉아 우는 남편.
평소 가득했던 아내를 너무도 굶게 한다는 죄책감이 이로써 터지고 말았다.
내가 먹이질 못해 아내가 미쳐버렸다. 무력한 나 자신이 아내를 실성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아무거나 게걸스레 주워 먹을까. 아내의 그 괴상망측한 행동들은 마치 자신의 과오를 물에 비쳐 들여다보는 듯 죄악감을 들게 했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삽시간에 그 흙밥 덩어리들을 먹어치운 아내는 주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 안 돼…! 그만하시오 여보!! 안 돼!!!”
아내는 기어코 개골창 물이 흐르는 개천으로 눈길을 돌렸고, 머지않아 그 더러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얀 포말을 만들며 냅다 뛰어든 아내는 물속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헤엄쳤다.
몸을 움직여 사방에 물을 튀길 적마다 그 악취 또한 함께 뿌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전혀 괘념치 않고 그 구정물 속에 팔을 저어댈 뿐이었다.
온통 흐려 잘 보이지도 않는 개천의 밑바닥에 돌들을 들쑤셔보고 뒤집어보며 헤집고 다닌다.
그러다 아내의 손에 무언가 쥐어져 끌려 나온다.
꾸직!
온 힘을 다해 개천의 물을 헤집던 아내는 개구리를 잡아 뜯어먹기에 이른다.
남편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와 온 천지를 흐리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흘러나오는 눈물이 제대로 두 눈을 뜨고 있을 수도 없게 만들고 있지만, 아내의 그 실성한 듯 보이는 괴상한 모습들만큼은 어찌나 눈에 잘 들어오는지 그 괴로움이 멈추지를 않는다.
그 개구리라는 놈이 못 먹을 짐승은 아니다.
퍽 징그럽기도 하지만 보양식이라고 자주 구워먹기도 하는 것이 그 개구리라는 놈인데, 문제는 살아있는 것을 그대로 뜯어먹고 있다는 것이다. 비린내 나는 개구리의 바람이 찬 허파가 이빨에 씹혀 터지는 소리가 토악질이 날 정도였다.
꼬로록 꼬로록 꼬록 꼬록 꼬로록
남편은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풀숲과 바위틈 그 지천에서 개구리들이 몰려나와 아내를 향해 헤엄쳐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개구리 놈들 우는 소리가 주변을 온통 메워 귀청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항상 먹고 자던 이 개천에 이토록 많은 개구리들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방의 돌 틈과 흙더미 속에서 기어 나온 개구리들이 그대로 아내에게 헤엄쳐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수의 개구리들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씹어 삼키는 아내의 모습이 두 눈 앞에 펼쳐졌다.
개구리의 살과 뼈를 씹는 소름 돋는 소리들이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에도 파묻히지 않고 귀를 괴롭혀왔다. 남편은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주저앉은 채, 울고만 있었다. 아내는 미친 듯이 개구리를 삼키고 또 삼키고.
그 많은 개구리들에게서 나온 체액들이 아내의 입가에서 주르륵 흘러내리고 낡아빠진 저고리를 온통 적셔왔다. 주변의 땅과 물을 온통 메우는 듯 보였던 개구리 떼가 사라져 가는 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내가 개구리를 집어 삼킬 때마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 또한 사라져갔고, 주변은 점점 고요해져만 갔다.
개구리들을 모조리 집어삼켰을 즈음에는 이미 더러운 체액과 진흙 따위로 얼굴과 저고리를 온통 적신 아내만이 개천의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개천에 머리를 처박고 물을 있는 대로 들이켜다 축 늘어져버렸다.
뒤늦게 남편이 달려가 아내를 건졌을 즈음에는 아내의 배가 한층 더 커져 있었다.
“끄으으으…!”
해괴한 일을 벌이던 아내는 그 길로 졸도해 제정신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게 내버려뒀고, 남편은 그 뒷수습이나 제대로 하려는지 온 정성을 쏟는 모양이었다. 그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 남편은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 탓에 죄책감이 컸는지 아내가 졸도하는 순간 풀려있던 다리를 어떻게든 일으키고 달려가 아내를 개천에서 건져왔다. 그리고 온통 지저분한 오물들로 뒤범벅이 되어있는 아내를 근처 우물에 달려가 물을 길어오고 씻겨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히고 다시 한 번 물을 길어와 씻긴 뒤, 자리에 눕히고 천 조각들을 모두 모아 아내에게 덮어 주었다.
이유 없이 두려울 정도로 부풀어 올랐던 배는 이제 터질 것 같이 그 크기를 더한 상황이었다.
정신이라도 들면 아내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련만 남편은 속만 태우고 잠을 이루지 못 한 채, 길어온 물로 천을 적셔 이마에 올려주기만 한다. 주변은 고요하고 간혹 들리는 남편의 한숨소리만이 인적이 있음을 간간히 알린다.
“어억….”
여태 앓기만 하고 소리를 내지 못하던 아내가 소리를 입 밖으로 내어놓았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앉아있던 남편은 그 소리에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내에게 덮어 주었던 천들 따위가 꿈틀거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아내가 갑자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그 눈이 번쩍 뜨였고, 눈동자는 머리 위로 훌쩍 돌아가 흰자위가 가득 보였다.
두 눈에 핏발이 가득 서고,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들어갔다.
“괜찮소!? 여보! 정신 차리시오!!”
재빨리 아내의 양 어깨를 붙들고 흔들어보는 남편.
아내의 배는 그 위에 덮인 천을 모두 치워낼 듯, 심하게 요동친다.
이유를 알기 위해 천을 모두 벗겨내고 아내의 배를 들춰 보았다.
무언가 배 안에서 움직이는 듯, 부풀어 오른 배의 안쪽에서 연신 꿈틀대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보였다.
“으아아아악!!!! 아으으으으!!!!”
아내가 하혈(下血)하기 시작했다.
그 검고 시뻘건 피가 치맛자락과 그 아래 깔린 거적을 온통 물들여가고 있었다.
남편은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해 치맛자락을 냅다 들어올렸다.
온통 질척하게 물든 아내의 음문(陰門)에서 무언가 꿈틀대며 빠져나오고 있었다.
“대체 그게 다 무엇이냐!?”
이야기를 줄곧 듣던 임금은 이야기를 끊고 여인에게 물어왔다.
듣기에 온통 해괴한 이야기들뿐이라 귀가 온통 어지러운 탓이다.
“혹여 듣기에 거북하신지요.”
“듣자듣자 하니 이야기가 괴상하기 짝이 없구나.”
시선을 둘 곳조차 찾지 못 해, 대들보만 올려다보는 임금의 입에서는 탄식만이 흘러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은 그 잔잔한 눈빛을 하고서 임금을 바른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항상 다른 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묘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인은 임금의 당혹감에 찬 반응을 흘려 넘겼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인의 이야기를 끊은 채, 그저 탄식만을 흘릴 뿐 납득하는 모양새는 영 보이질 않는다. 그저 듣고만 있기 불편한 까닭이다.
“그 장지뱀 요괴 이야기나 노비들 이야기는 그저 있을 법 한 일이니 잘 들었다. 허나 이것은 무엇이냐, 멀쩡한 여자가 하루아침에 배가 부풀고 개구리 따위를 집어삼켜? 요재지이(聊齋志異)나 수신기(搜神記) 따위의 지괴소설(志怪小說) 같지 않느냐!”
분기가 차거나 역정을 내는 것은 아니나, 그 황당함이 차고 넘치는 듯 임금은 다소 흥분을 하고 있었다. 여인은 짐짓 놀랍다는 듯, 그 반응을 여태와는 달리했다.
“전하께서도 지괴소설을 읽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내 어릴 적, 즐겨 읽긴 하였다만 이곳에서 그런 꾸며진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많이 흥분을 한 탓일까.
임금은 그저 믿기지 않는 그 이야기를 허황된 거짓 이야기를 듣는 듯 표현하였다.
그 말에 여인은 그저 웃을 뿐.
“그럼 이것이 꾸며진 이야기라는 것을 증명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증명할 일도 없이 그러한 일들은 이 세상에 있을 턱이 없지 않느냐?”
그 말에 여인은 조금 더 깊이 다가와 임금에게 그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나 여인의 분위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저 생글생글 웃는 그 미소가 따스하게 느껴질 정도로 포근하다. 좋은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하시다면 전하께오서도 진나라 완첨의 무귀론과 같은 우를 범하시겠사옵니까?”
완첨(阮瞻)의 무귀론(無鬼論)
진나라의 완첨이라는 사내는 귀신이 없다는 자신의 이론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귀신이 죽어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혼이라면 귀신의 옷은 죽은 것도 아니거늘 어찌 귀신들은 옷을 입고 나타나느냐며 귀신이 없다는 이론의 증거로 삼았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이론을 뒤집지 못하고 언쟁에서 패배해 강제로 그의 말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고 그 손님과 갖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리하다 귀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까지 이어지게 된다.
완첨은 언제나와 같이 자신의 이론을 펼치며, 자신의 논리가 정연하니 패배를 인정하라고 손님을 몰아붙였다.
그러자 그 손님은 '옛 성현들도 인정하는 것을 왜 당신은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오? 당신에게 사실을 알려주겠소. 내가 바로 귀신이오!' 라고 하며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귀신으로 화해 완첨을 겁주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완첨은 너무 놀라 정신을 잃었고, 그 뒤 시름시름 앓다가 1년 후 병사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완첨의 무귀론이었다.
물론 임금은 이 이야기 또한 들어본 일이 있기에, 여인의 말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 못했다.
그러나 여인은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다.
따로 말을 내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인의 행동이 충분한 대답이 되는 일이었다.
하얗고 고운 여인의 손은 현시 온통 흔들리는 그 등불의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작지만 뜨거운 열기를 가지고 있는 그 등불은 여인의 손을 관통해 손등 위까지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신기루와 같이, 여인의 손은 그저 등불과 그 모습이 포개어진 채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사람의 살갗은 능히 태워낼 수 있거늘, 여인의 그 하얗고 곱기만 할 것 같은 손은 등불에게 마치 허상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지나 올곧게 타오르고만 있다.
그러다 그 등불이 여인의 손바닥 위로 옮겨 붙었다.
마치 기름에라도 옮겨 붙은 듯, 여인의 손바닥 위에 옮겨 붙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었다.
여인은 등불에서 손을 떼어, 자신의 손 위에 타오르는 불길을 들고 임금의 앞에 보여 주었다.
그 불은 바닷빛 같이 시퍼런 색으로 변했다가 갓 자라난 새싹 같은 푸른색으로도 변했고, 아름다운 자수정같이 반짝이는 자줏빛으로도 변하는 등 그 빛이 변화무쌍하게 달라져 갔다.
임금은 그 모습에 압도되어 그저 그 불빛만을 동공에 새겨 넣을 뿐이었다.
“그래… 너 같은 자도 있는데 어찌 그것을 거짓된 이야기라고 단언할 수 있겠느냐. 내가 실언을 했구나.”
몹시 누그러진 모습의 임금은 그 속내가 오히려 편해진 듯, 나직이 여인에게 인정(認定)을 표했다. 그 말에 여인의 표정이 한층 더 따스해졌다는 것을, 임금은 그 오색찬란한 불덩어리를 감상하느라 볼 수 없었다.
“괜찮으시다면 소녀, 이대로 이야기를 이어서 들려 드릴까 하옵니다.”
그 날이 있은 후로, 개천의 다리 아래에 있던 부부의 집은 발칵 뒤집히게 되었다.
하루 만에 아내가 만삭이 되었다가 아이를 낳은 것이었다.
그 기괴한 출산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늘어진 아내와 크게 벌어진 사달을 받아들이기 힘든 까닭에 그저 앉아만 있는 남편. 그 와중에도 아내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가장 깨끗한 천에 감싸 소중히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 행동과는 다르게 아이를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당혹감과 작은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임에도 그 크기가 다섯 살은 될 법 하게 컸다.
아기가 순수하게 덩치가 컸던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다섯 살 정도로 자란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큰 아이가 어떻게 아내의 그 작은 음문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으나, 한 식경도 되지 않아 태어난 것으로 보면 굉장한 순산이었던 것이니 더욱 그 의미를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내는 기력을 찾지 못하고 늘어져 있다. 아마 하루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 만에 아이를 뱃속에서 키워내어 출산까지 이뤄냈으니 무리가 많이 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질 뿐이었다.
거기다 출산 당시 그 더러운 개구리나 개골창 물들을 연신 들이키게 된 것도 그 아이를 낳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되는데다, 그런 것들을 먹었음에도 출산 후에 아무런 탈도 나지 않고 병도 나지 않았으니 더욱 그 모양들이 괴상하고 의아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눈에 새겨진 작은 공포심은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아이의 등짝부터 팔다리까지, 그 반신(半身)에 검은 비늘이 돋아 있었던 것이다.
앞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나마 인간과 같았다.
뒤로부터 이어진 비늘이 두 뺨과 팔 다리에도 걸쳐 뻗어 자란 탓에 얼굴이나 가슴, 배, 허벅지까지는 멀쩡했으나 그래도 드문드문 비늘이 보이는 것이 걸리긴 했다. 그래도 그것을 제외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고운 맨살을 보이고 있었으니 앞모습은 그나마 인간과 같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뒷모습은 마치 큰 생선이나 뱀을 보는 듯, 그 비늘이 아이의 뒤에 해당하는 모든 곳을 온통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는 검은 비늘로 수북이 뒤덮인 꼬리가 있었다.
마치 큰 이무기나 가지고 있을 법한 꼬리.
부부는 괴물을 낳았다는 생각에 겁을 집어 먹은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모성애를 잃지 않았다.
꽤 큰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젖을 물리는 일을 전혀 거리끼지 않았고, 젖을 먹은 아이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작은 노래까지 불러주는 것이었다.
아내는 아이를 한시도 떼어놓지 않고, 안고 있었다.
“여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시오…?”
아직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지 못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왔다.
그러나 아내는 힘겨워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을 뿐, 남편에게 이렇다 할 대답을 건네주지 못했다. 아내 또한 이유도 모른 채 배가 부풀어 올랐고, 그에 이어 허기를 견디지 못하며 눈이 돌아가 생 쑥이나 개구리, 개천의 개골창 물을 들이켰던 것이다. 그나마 생 쑥을 뜯을 때부터는 이미 기억이 없는 상황이었다.
“저… 이 아이는 키우고 싶습니다.”
“여보, 임자. 그게 무슨…”
“제 배가 아파 낳은 아이이니 남부럽지 않게 키울 것입니다.”
여태 기력이 없어 늘어져 있던 아내는 조금 기력을 되찾자마자 의견을 표했다.
그것은 어머니로써의 의지였고, 힘으로 강제는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은 꺾을 수 없는 모성(母性)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 생긴 것을 보시오! 뱀처럼 생긴 것이 마치… 마치 요물 아니오!? 이 아이를 보게 되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 것 같소? 당장에라도 이 개천다리 아래에 불을 놓을 것이오!”
남편 또한 아이가 뱀의 형상을 가지고는 있다 하나, 아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어서 그런지 싫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들킨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이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자신까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이 아이 보세요. 비늘이나 꼬리가 있지만, 얼굴도 선녀같이 곱고 살결도 티 없이 예쁘잖아요.”
“아이는… 물론 예쁜데… 중요한 것이 그 비늘과 꼬리란 말이오. 임자까지 위험해 질 수 있다는 말이오.”
“짐승하고 사람이 섞인 모양은 가릉빈가(迦陵頻伽 *불경에 나오는 사람의 머리를 한 새. 그 울음소리가 곱고, 극락에 둥지를 튼다고 한다.)도 있어요. 그런데 요물이 아니잖아요, 서방님.”
처음 가졌던 공포심은 점점 옅어지고 아내에게는 모성에 얽힌 사랑이 피어나고 있었다.
어느 새, 아이는 제 목숨보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항상 남편의 말을 곱게 따랐던 아내는 어느 때도 볼 수 없었던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하늘이 점지해 준 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루 만에 회임(懷妊)을 하고 출산까지 할 수 있겠어요? 요물 따위가 행하기에는 너무 큰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옥황상제님이나 부처님께서 점지해 주신 아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옳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남편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같이 살아온 날이 오래 되었으나, 혼인했던 그 날 이래로 이토록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은 다시 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자신과 혼인하던 날에 단 한 번 보여주었던 그 미소가 아내의 입가에서 다시금 퍼지고 있는 것을 보고나니, 더는 말을 덧붙일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비록 뱀을 닮았지만 누구보다 예쁜, 선녀 같은 딸이니. 사희(蛇姬)라고 지을 게요.”
우습게도 남편은 이 때, 다른 어떠한 생각보다도 백정의 딸 출신인 아내가 글을 나름대로 해박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어 웃음이 나왔다.
예쁜 딸아이의 모습이 퍽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여서 나온 웃음 같기도 했고, 그 아이를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내의 모습이 기쁨으로 다가와 나온 웃음 같기도 했다.
남편은 자기가 혹은 미친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그 뱀 같은 비늘과 꼬리를 가진 딸아이가 예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희야, 집 밖에 나갈 때는 꼭 장옷 쓰라고 했지?”
“그치만 답답하단 말예요!”
이미 어느 정도 자란 듯 태어난 사희이지만 그 성장마저도 너무나 빨랐다.
불과 한 해 사이에 마치 열세 살은 넘은 아이처럼 훌쩍 커버렸고, 말을 비롯한 모든 배움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아내는 그 모습에 역시 하늘이 내려준 아이라며 더욱 기뻐했고, 사희의 존재를 살아있는 기적이라고까지 여겼다.
남편 또한 사희의 그러한 면모에 대해, 딱히 근거가 없으니 하늘이 내려줬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딸아이의 인성이 몹시 착하고 고우니 결코 요물이나 허깨비 따위는 아닐 것이라고 여기고 몹시 사랑하며 아껴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적 같은 성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어디 타지에서 굴러 들어온 거지 따위를 주워 기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이미 충분히 주목을 받은 셈이라, 그 정체를 가리기 위해 장옷을 머리부터 덮어씌워 그 비늘들과 꼬리를 가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장옷이라고는 부르지만, 사실 장옷은커녕 옷의 구색조차 갖추지 못한 넝마짝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장옷의 용도로 쓰는 넝마는 무려 사희가 태어난 이래로 한 해 동안 그녀의 정체를 지켜준 고마운 옷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크고 총명한 아이를 어찌 집안에만 두고 키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밖에 나설 때는 꼭 장옷을 씌우는 것이었다.
“이렇게 귀찮은 비늘하고 꼬리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어미의 강경한 말에 사희는 온통 풀이 죽고 주눅이 들었다.
사희 또한 눈이 없는 것도 아니니, 다른 아이들은 답답한 장옷 없이도 마음껏 뛰놀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기 자신도 그러고 싶은데 비늘과 꼬리는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란 사실로 장옷을 못 벗게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감히 뛰지도 못하게 하니 그 사실이 너무도 싫은 것이다.
“그런 말 하면 못써. 사희, 네 비늘하고 꼬리는, 옥황상제님이 내려주신 귀한거야.”
“그런데 왜 남들한테 감춰야 해요!”
“다른 사람들은 바보 같아서, 그런걸 보면 무서워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바보 같은 거지 사희가 나쁜 게 아니야.”
아내는 울상이 된 딸을 자상하게 다독이고 달래 주었다. 사희의 볼이 귀엽게 부풀고 그 앙증스러운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지만, 어머니가 달래주니 기분이 마냥 나쁘지는 않았던 탓에 사희는 칭얼거림을 관두고 순순히 장옷을 뒤집어썼다.
그 해에는 심한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부부를 역적 집안이라 하여 내몰고 괴롭히는 짓이 다들 지루해진 탓인지 퍽 시들해져서, 이제는 산과 들에 자란 나물이나 열매들도 얼마든지 캐올 수 있었던 탓으로 그나마 구걸은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사정이 조금은 나아진 편이었으나 역시 가뭄이 들어 지천이 바싹 마르고 나니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고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구걸은 결코 하지 않았다.
예전에야 아예 먹을 것을 구하는 일 자체를 하지 못하게 돌팔매와 몽둥이질을 해가며 방해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명줄을 유지하고자 억지로 구걸을 하였으나 이제는 방해하는 이도 별로 없으니 조금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구걸은 하지 않는 것이었다.
역적 집안이라고 온갖 수모와 모욕들을 겪으며 살았으나, 그에게도 자존심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뭄 속에서는 구걸을 한다 하여도 영 마뜩치 않았을 것이다.
누가 자기들 먹을 음식도 모자란데, 눈엣가시 같은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겠는가.
작년이야 그들 부부를 조롱하거나 두들기며 괴롭히기 위해 먹을 것을 못 구하게 하고 구걸음식을 주었지만, 이제는 그 재미도 시들해졌고 가뭄이 들어 음식도 부족하니 결코 내어줄 음식 따위는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산을 헤매다, 늑대무리가 두려워 사람들이 발걸음하지 않는 깊숙한 곳까지 둘러본 뒤에야 겨우 오디 한 움큼과 그 나무에 살던 누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우와, 나 이거 먹어도 되요 아버지?”
아비가 들고 온 먹을거리에 사희는 눈이 반짝이는 듯 그 맑은 눈망울을 보여 왔다.
남편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희는 냉큼 먹을 것을 집어 입에 넣는다.
부부는 오디를 먹고, 사희는 열 마리가 조금 넘는 누에들을 먹기 시작했다.
약으로도 쓰이는 누에이기에 먹을 수 있겠다 싶어 가져오기는 했지만, 두 부부는 그것이 영 징그러워 입에 댈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희는 그것을 꽤 좋아했다.
태어났을 무렵부터 사희는 움직이는 것이라면 입에 넣고 봤는데, 어느 날은 손바닥 만 한 거미를 입에 넣고 씹는 것을 본 아내가 몹시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했었다.
그 후로도 종종 날아다니는 말벌을 잡아먹거나, 혹은 칠점사(七點蛇) 따위를 산채로 잡아 씹어 먹기도 했으므로 번번이 제 어미에게 혼이 나야 했다.
몹시 예쁘고 귀여운 아이였으나, 그런 흉물들을 서슴없이 잡아다 씹어 삼키고 입맛까지 다시는 것을 보면 천생 사람의 아이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다 그런 것들을 씹을 때마다 보이는 그 날카로운 이는 역시나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늑대나 가지고 있을 법한 날카로운 이들이 사희가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보이고는 했으니 역시 그것도 사람들에게 감추어야 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언질을 주게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사람같이 살게 하려고 그러한 것들을 먹지 못하게 해왔지만, 지금은 몹시 지독한 가뭄이고 누에는 약으로도 먹는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아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사희는 그 누에들을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 더 없는 거예요?”
꼬박꼬박 예의 바르게 이야기하는 사희의 모습은 역시나 여간 앙증스러운게 아니었다.
제대로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현실이 미안하면서도,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그 마음이 부부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 미소가 조금은 쓴 맛이었지만.
“이렇게 가뭄이 들어서 어떻게 먹고 살라는 말이야!!”
마을의 자랑이었던 장터도 지독한 가뭄 앞에서는 그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누가 나서서 열지 말자고 한 것도 아니건만, 장터는 어느 누구도 물건을 내어놓지 않아 흐지부지 물 건너 가버렸다. 당장 먹을 것이 마뜩치 않은 상황에 생필품을 팔러 올 장사치도 없을 일이었고, 마을 사람들끼리 사고 팔아봤자 먹을 것이 가장 귀하니 서로 음식을 쟁여놓기만 할 뿐 누구에게도 팔거나 교환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모이지 않아 장터는 성립되지 못했다.
원래는 장이 열려야 하는 자리에, 사내 몇이 주막의 대청마루에 둘러 앉아 부채질을 하며 툴툴거리기 바쁘다.
“원 세상에, 이제 논밭에 댈 물도 바닥나서 심었던 게 다 말라 비틀어졌지 뭐야. 아예 못쓰게 되기 전에 다 뽑아다가 짠지를 만들어두기는 했는데 고작 그거가지고 어떻게 먹고 사느냐구.”
“우리 집은 기르던 소가 죽었다. 어디 그런 것 따위는 말도 꺼내지 마라.”
“소가 더워서 죽었어!?”
“그건 아니고, 너무 더워서 농사는 엄두도 못 내고 외양간에만 매어 두었는데. 물을 잘 못 먹어서 그런지 픽 쓰러져 죽더라고. 사람 마실 물도 마뜩치 않은데 어디 짐승 놈이 물을 마시려 드냐는 말이야!”
서로 그 가뭄과 더위 덕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가족들만큼 귀한 소도 그저 넋 놓고 죽이는 판국에 사람이라고 살기 좋을 리가 없으니 푸념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농사지을 물은커녕 마실 물도 없으니 논밭은 쩍쩍 갈라져 더 이상 먹을거리를 키워내지 못하는 지경이었고, 그러다보니 산 중의 토끼 같은 사냥감이나 강가의 물고기들도 삽시간에 동이 나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 판국이고, 그 어느 것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었다.
“저기 산 세 개 넘어가면 있는 서쪽 마을은 비가 온다더라고.”
“그런데 왜 우리 마을 근처에만 이렇게 비 한 방울 없이 바싹 마르냐는 말이야! 물줄기도 죄다 말라서 어디하나 작은 샘 같은 것도 없다는 게 얼마나 거지 같냐고!”
큰 소리 낼 기력도 별로 없는 와중임에도 그 분개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남은 것이 없으니 내어주지 않겠다고 하던 탁주를 웃돈을 주고서 얻어 마시고 그 취기에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갔다. 마치 세상 끝날 듯이 술을 들이키며 언성을 높이는 이들은 점점 그 성미가 포악해져만 갔다. 주모도 그 분위기가 제법 냉랭한지라 안채로 들어가 버린 지 오래였고, 온 마을 사람들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거나 먹을 것을 찾아 떠돌 뿐 장터 자리는 비워둔 지 오래이니 주막에는 오로지 그들뿐이다.
사내들의 눈가에는 악독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독기가 원래 그들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인지 살고자 하는 마음에 들어찬 기운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들이 하고 있는 그 생각들만큼은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닐 것이었다.
그 표독한 눈초리들 그 깊숙한 곳에서는 갈 곳을 잃은 분노가 하염없이 떠돌고 있었다.
“우리 사희,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
개천 가장자리에서 돌멩이들을 가지고 집을 지으며 놀던 사희는 넌지시 묻는 아버지의 질문에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맞췄다. 원래는 하얀 천이었으나, 워낙 낡아 여기저기 헤지고 때가 잔뜩 탄 잿빛의 옷이 아버지의 눈에 비친다. 자신의 딸이 몹시 낡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리고 은근히 아려온다. 조금만 더 입고 헤지면, 아마 팔 구멍에 머리 구멍 뚫린 누더기 걸레짝이나 다름없을 모양이었다.
“무슨 날인데요?”
그저 물어보고 아무 말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사희는 쥐고 있던 돌멩이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향해 돌려 앉았다. 잠시 불편한 상념에 잠겨 있던 아버지는 사희의 맑은 눈망울을 바라보며 그저 웃는다.
“오늘이 바로 우리 사희 생일이란다.”
“생일이 뭐예요?”
그저 배우는 것이 생각도 못 할 만큼 빨라 많은 것을 알려줬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생일 같은 당연하고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언질조차 주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 잠시 고민을 한다. 이렇게 사희가 모르는 것이 나올 적마다 바르게 알려 주는 것이 아비 된 이로써의 보람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렁그렁 예쁘게 비치는 것 같은, 사희의 귀여운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부모로써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그건, 사희가 태어났던 그 날짜를 뜻하는 거란다.”
“저는 작년에 태어났는걸요? 오늘은 태어나지 않았는걸요?”
“그러니까 단오에 태어났다면 해마다 오는 모든 단오는 생일이 되는 것이고, 정월이 되기 삼 일 전에 태어났다면 해마다 오는 정월이 되기 삼일 전 날은 바로 생일이 되는 것이지.”
말도 총명하게 잘하고 아는 것도 많았지만, 태어난 지 이제 겨우 한 살이니 사실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설명을 해 주면 철썩 같이 알아듣고는 했으나 간혹 이럴 때 보면 정말 어린아이가 맞구나 하는 생각에 몹시 귀엽다.
“그리고 사희의 생일에는 사희가 선물을 받을 수 있단다. 혹은 좋은 곳에 데려가 줄 수도 있지.”
“우와!! 정말이예요!?”
선물을 받는다는 말에 기뻐서 통 튀어 오르는 사희.
개천의 모래 위에 앉아있다 냅다 튀어 오르는 모습이 얼마나 사희가 기뻐하는지를 보여준다. 사희는 아버지의 주변을 방방 뛰면서 기대에 부풀어 얼굴마저 상기되었다.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
맛있는 먹을 것을 받아도 좋을 것이고,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신기한 무언가를 받아도 좋을 것이었다. 아버지가 신나게 놀 수 있는 꽃밭 같은 곳에 데려가 주어도 좋을 것이었고, 한 번도 잡아볼 수 없었던 하늘의 새를 잡아 주어도 좋을 것이었다.
배시시하며 웃는 사희의 입가에 날카로운 이가 보였으나, 오히려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것 같으니 도리어 귀엽게만 보였다. 치맛자락이 들썩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 꼬리라도 흔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 선물을 이미 정해 두었다.
반짝이는 하늘에서 갓 내려온 선녀같이 예쁘고 고운, 새 저고리와 치마를 지어 주고 싶었다.
“사희야, 예쁜 것으로 사올 테니까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야 한다?”
사희의 안전을 위해 신신당부를 거듭하는 부부.
사실 부부가 종종 필요한 것을 구하거나 장에 나가는 날이면 으레 하는 말들이었지만, 부부는 항상 걱정이 흠뻑 배어든 주의를 연거푸 주고가곤 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사희의 생일에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열심히 장에 나가 돈을 모았었다. 마을에서의 그 핍박받는 입지가 있는지라, 장사는 타지에서 온 마을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나 겨우 말붙임이 가능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모으곤 했으니 겨우 옷감 한 필 살 돈은 되었던 것이다.
산에서 나물이나 열매나 캐어먹고 살고, 간혹 덫에 잡히는 들짐승들 고기와 가죽을 얻어 근근이 생활했으니 그 돈을 모으는데 까지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가.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산다면 조금 더 넉넉하게 지낼 수 있겠지만, 더럽고 옷의 형상도 제대로 갖추지 못 한 옷을 자신들의 딸이 입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사희야 어차피 웬만해서는 못 먹는 것이 없으니 굶을 걱정은 덜하였고, 자기 자신들만 입을 더욱 덜 챙기기만 하면 될 일이라 생각하여 단박에 치마저고리를 고른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물건을 팔지 않을 테니 타지에서 온 상인에게 물건을 사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부부는 개천을 벗어나 장터로 향했고, 한 살짜리 딸아이만 남아 다리 아래의 집을 보게 되었다.
“아웅…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또 다시 개천의 모래밭에 앉은 사희는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남들은 뜨겁다 하지만 사희에게는 기분 좋은 햇살이었고, 그것에 달궈진 모래들 또한 기분 좋은 이불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뱀이 바위 위에 올라가 햇볕을 쪼이듯 사희에게는 그것이 매일 있는 일상이었다.
모래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높은 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 없었고, 오로지 닿을 수 없는 퍼런 바다만이 깔려있을 뿐이었다.
저 하늘의 푸른색은 바다라고 생각했다.
하늘에 있는 바다에서 물이 쏟아져야 비가 오는 거라고 사희는 생각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 바다였지만, 아버지가 이야기 해 준 바다라는 것은 시퍼런 물들이 가득 채워져 그 끝을 볼 수 없다 하였으니 하늘에 있는 저 광활한 푸른색도 바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를 생각하니 강과는 다른 물고기가 많이 있을 것 같았고, 그 물고기들은 어떻게 생겼을까를 생각하니 퍽 재미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가 보였다.
날개가 있다면 저 높은 하늘에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텐데.
그럼 저 바다로 올라가서 어머니 아버지 좋아하시는 물고기도 잔뜩 잡아올 텐데. 그리 생각하며 사희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바라보는 사희의 모습은 날개가 돋아나 마음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내려다보는 모양이다. 산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보는 그런 경치 따위는 감히 갖다 붙이지도 못 할 만큼 멋진 모습들이다. 사희는 그런 상상을 하며 헤실헤실 웃는다.
“이봐!! 거기 역적들 있나!!!”
조금 먼 듯한 거리의 위에서 거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리 위에서 개천가로 내려오며 내는 말소리들 같았는데, 사희는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항상 부모에게 ‘사람들에게는 모습을 보이지 마라.’ 라는 주의를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상하고 귀여워해주는 어머니 아버지였지만,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중했기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사희는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넷 정도의 남자들이 개천가에 내려와 사희의 집을 들여다본다.
“이맘때면 들에 먹을 거 주우러 가더만 다 나간 거 아닌가?”
취기가 물씬 감도는 꼬부라진 말투의 사내들은 집 밖에서 서성이는데도 그 주취가 집안까지 흘러들어올 정도의 만취 중이었다. 만취한 이들은 항상 쉽게 물러나지는 않는다.
“가만있자, 이놈들이 살림이 좀 좋아졌나보네. 빨랫거리도 이렇게 마음 놓고 걸어다 놓으니?”
“마을 안에서 살았을 때는 이런 건 불 놔서 다 태워버렸잖아?”
“오히려 마을 냅두고 개천에서 마음 놓고 살 수 있다니, 이놈들에게는 역시 개천 개골창이 딱 어울리는 거지 뭐야!”
무엇이 좋은지 낄낄거리며 시시덕거린다.
괴롭히는 일에 실증이 나서 부부를 내버려두기 시작했고, 그제야 부부는 구걸도 하지 않고 근근하지만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해가며 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먹을 것을 구하러 산이나 들에 나가기만 하면 돌팔매를 해서 내쫓곤 하였으니 실상 개천 생활이 더 행복하게 된 것은 그들 탓인 것을.
그들은 밖에 놓인 바지랑대를 냅다 걷어차 쓰러뜨렸고, 말리기 위해 바위에 올려둔 거적이나 이불들도 죄 밀어 개천에 처박아버렸다. 그러면서도 퍽 즐거운지 이번에는 돌들을 집어다가 집의 벽 역할을 하는 거적들에 냅다 돌팔매를 하기 시작했다. 꽤 두터운 거적이었지만 묵직한 돌팔매질에 그것을 묶어둔 끈이 뜯어지고 여기저기 흠이 나며 기울기 시작했다.
“어어?”
거적이 끝내는 버텨내지 못하고 뜯어져 바닥에 힘없이 무너졌다.
집 안이 훤히 보이게 되었고, 집안 한가운데의 가마솥 뒤에 웅크리고 있는 사희가 보였다. 사희는 장옷을 뒤집어 쓴 채, 돌아앉아 와들와들 떨어대고 있었다.
“있었구만! 이런 건방진 년이 어디 대꾸도 안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숨어있어!?”
사내 중에 가장 앞서서 다니던 파란 홑조끼의 사내가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이닥쳐 웅크리고 있던 사희를 냉큼 붙잡고 잡아 당겼다. 사희는 장옷이 벗겨지지 않도록 꼭 부여잡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사내의 손길에 질질 끌려가게 되었다.
“어? 이거 백정 년이 아니잖아?”
“얼마 전부터 데리고 다니던 그 거지 년 아냐?”
필사적으로 장옷을 움켜쥐고 있는 사희는 그 얼굴만 빼꼼 나와 사내들을 올려다보았다. 실은 마을로 부모를 따라 나선 적이 종종 있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얼굴마저 가릴 기세로 장옷을 푹 덮어 썼기에 사내들이 사희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들이 부부가 어디에선가 주워온 거지라고 이야기하는 사희의 처음 보는 얼굴에 그 낯을 뜯어보느라 그 언성이 줄어든다. 의외로 멀쩡하고 깨끗하게 생긴 것에 그들은 놀란 눈치였고, 더군다나 나이가 생각보다 어려서 더욱 그러했다.
“이야, 꽤 반반하게 생겼네?”
뒤에 서 있던 사내가 히죽 웃으며 사희에게 다가왔다.
끌려와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사희는 몸을 뒤로 바짝 붙이며 사내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바로 뒤 가마솥에 등을 붙이고서 고개를 돌리는 사희는, 그 장옷을 쥔 두 손 만큼 몸도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야, 너 우리랑 가자.”
“그래, 아저씨들이랑 가자.”
사내들이 사희의 모습을 보고서 가장 먼저든 생각은 사희에게 술시중을 들게 하는 것이었다. 사내중 하나가 지난봄에 담가둔 오디술이 있다하여 술이 떨어진 주막에서 나와 사내의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가뭄에 술마저 귀해져 아껴두었을 것이나, 취기가 올라 배포가 커진 탓에 선뜻 오디술의 이야기를 꺼내며 선심을 쓰겠다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고운 여자아이가 나타났으니 심성이 시커먼 사내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먹을 것도 주마. 배 곯은지 한참 됐을 거 아니냐.”
“그래, 아저씨들 따라가서 시키는 대로 하고 먹을 거 받아오면 네 식구도 좋아할 것 아니냐?”
파란 홑조끼의 사내가 사희에게 다가와 장옷을 꼭 쥐고 있는 그 손을 붙들고 잡아 끌려고 했다. 사희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의 손을 붙잡는 사내의 손을 뿌리치고 더욱 뒤로 몸을 끌어갔다. 사희는 겁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를 하고서 겨우 입 밖으로 소리를 낸다.
“어머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요! 집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어요!”
단호하게 뿌리치는 사희의 모습에 사내들은 잠시 주춤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마을에서 핍박받고 학대받던 집의 아이가 감히 자신들에게 단호한 거절을 표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한 것이다. 자신들이 화가 나 집에 불을 지르더라도 관청이나 포도청은 상관도 안할 정도의 입지인데 감히 자신들의 화를 돋우는 일을 하다니 기가 찼다.
거기다 여자아이가 한 이야기도 허무맹랑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말이니.
“양수척(楊水尺 *귀화한 말갈인이나 거란인으로 백정일은 이들이 맡았다) 백정년이랑 하나도 안 닮았는데 니 년이 무슨 놈의 딸년이라 하는 거야?”
“역적 애비 놈이 다른 년이랑 붙어먹어서 나왔나?”
겨우 뱉어낸 사희의 말에 사내들은 비아냥과 조롱으로 대꾸를 했다. 아내의 태생이 다르거늘 어찌 조선인의 얼굴을 한 사희가 그녀의 딸이 될 수 있냐는 말이었다.
사내들은 자신들이 한 질 나쁜 모욕들에 자신들이 재미있어져서 낄낄대기에 바쁘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이 울상이 된 사희는 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 이전까지 보이지 않다가 작년부터 보이던, 열세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백정 아내를 어머니라고 부르니 어디서인가 주워와 수양딸로 삼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은 그저 그것이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아무리 배움이 모자라다 하여도 얼마나 심한 욕설인지는 알 수 있었다.
“네년은 그냥 우리가 이야기하면 ‘예’ 하고 따르면 되는 거야! 어디서 건방지게!”
“그래, 잘 따르다가 가랑이도 한 번 벌려주면 좋은 거고!”
“말 안 들으면 네 어미 년 가랑이를 찢어 죽일 거야? 그건 싫은 게지?”
더러운 음담패설과 음심으로 가득한 눈빛들이 사희를 개천 바닥의 냄새 지독한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혐오감을 들게 하였다. 이미 사내들은 사희를 끌고 가기로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렸고, 단지 사희가 제 발로 따라오는 것이 편하니 협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이 밟아 죽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약한 이들 중에 어여쁜 여자아이가 있다는 것이 사내들의 정복욕과 의미 모를 쾌감을 자극했다. 창기보다도 다루기 편하고 뒤끝이 없는 간편한 욕망의 배출구라고 여기는 것이다. 설령 이 자리에 부부가 나타나 자신들을 말리려 한다 해도 결과는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여자아이를 데리고 거사를 치른다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어떠한 해코지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상황은 이제 한 살 먹은 사희에게는 너무나 잔혹했다.
“거 콧대 한 번 높구나! 뭐가 싫어서 그러고 우두커니 앉아있어! 냉큼 따라오지 못해!?”
파란 홑조끼의 사내는 다시 한 번 사희를 붙잡고 잡아 끌었다. 한 번 사희가 뿌리쳤던 것이 자존심 상했던 모양인지 이번에는 뿌리치더라도 절대 놓치지 않을 기세로 꼭 붙들고 체중을 실어가며 잡아 끄는 것이었다.
“뭐가 이렇게 힘이 좋아! 이년! 이리 와!!”
연신 우악스럽게 사희를 잡아 끄는 사내를 보고 뒤에서는 그 모습을 즐기며 끌고 가서 어찌 할까 하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사실 사희는 힘이 꽤 좋았다.
적어도 어린 여자아이 치고는 제 아버지만큼 힘을 쓰기는 했으니까, 따지고 보면 여느 사내아이보다도 힘이 센 것이었다.
단지 사희가 뒤집어쓰고 있던 장옷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찌이이이익
우악스러운 사내의 손길에 겨우겨우 옷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정도였던 넝마가 아예 찢어져버렸다. 장옷이라 하여 뒤집어쓰고 다녔던 그 넝마가 크게 찢어져 더 이상 사희의 모습을 감춰주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으아아아악!!! 이, 이게 뭐야!!!!”
“괴, 괴물이다!!!”
“흐이이이익!!!!”
사내들은 순식간에 질겁하여 사희에게서 물러났다.
그동안 사희가 감춰왔던 검은 비늘과 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린 것이었다.
다 찢어져버린 넝마를 채 놓지 못하고 두 손에 꼭 쥔 채, 당황해서 벌벌 떨며 서있기만 하는 사희. 그 눈망울에 이제는 그렁그렁한 눈물과 함께 공포심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사내들이 느끼는 공포심과는 다른 종류의, 철저한 약자가 느끼는 공포심이었고 그것은 조금도 움직임을 할 수 없게 신체를 마비시켰다.
사내들은 놀라 사희에게서 훌쩍 물러났고, 그대로 침묵은 이어졌다.
짧은 순간이었던 그 침묵은 당사자에게만은 몹시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사내들의 감정에 불을 지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뭐야 이 괴물은.”
사내들 중 가장 먼저 나서곤 했던 파란 홑조끼의 사내가 엄슬하게 적개심을 가지고서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느껴졌던 욕망들은 사그라지고 그것을 장작이라도 삼았는지 거센 불길이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것이었다. 그 불길은 분노와 책망이라는 감정으로 다가와 사내들의 마음속에 번져나갔다.
“상길이는 건너 마을 무당 데려오고, 석정이는 마을 사람들 불러 모으고 기름하고 횃불도 가져와.”
명백한 적의가 진득하게 눈에 흐른다.
그 독기어린 눈초리를 해서는 무슨 짓을 하려는지.
“우리 마을에만 가뭄이 드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만.”
그날 날이 저물 무렵, 개천에는 온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냄새가 나고 지저분한 까닭에 장마철에 수로를 뚫어야 할 때나 조금 모여 들고 평소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는 것이 개천이었고, 이곳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개천의 다리 아래에 사는 이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장에 나갔다가 장터가 텅 빈 것을 본 부부는 다른 마을의 포목점으로 가던 길이었고, 그 도중에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이들을 흠씬 두들기며 끌고 왔다.
끌려온 부부가 자신들의 집 앞에 내동댕이쳐지고 가장 먼저 본 것은, 다 허물어져가는 망가진 집 안에 혼자 우두커니 서서 떨고 있는 사희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저 요물 년이 옷가지로 몸은 가리고서 머리만 내밀고 나를 유혹하더라니까!? 지 반반한 얼굴 가지고 나를 유혹해서 간이라도 뽑아 먹을 심산이었던 거야!”
“요새는 구걸도 안하는데 두 년 놈들이 산이고 들이고 나가서 먹고 살잖아? 저 요물 년을 기르면서 사람이라도 해쳐가며 먹고 살았을 지 누가 알아!?”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져 소리 지르고 살벌한 의심을 주고받는 마을 사람들.
사희에게의 돌팔매질은 끊임이 없었고, 벽이 되어 주던 거적들도 다 무너진 까닭에 사희는 그 돌팔매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온 몸이 돌에 맞아 그 입고 있던 옷들이 찢겨져 나가고 있었고, 사희의 몸에는 그 잔혹한 일들로 인해 생겨난 생채기와 피멍이 가득했다.
“그러지 마세요! 우리 아이는 아무 잘못도 한 게 없어요!!!”
“닥쳐라 이 년!!”
“생긴 게 다를 뿐이지 그냥 아이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단 말입니까!!”
“이 놈이 그래도!?”
애지중지하는 딸이 돌을 맞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높이던 부부는 사람들의 매질에 다시 한 번 피를 흘리며 고개를 처박아야만 했다.
수많은 횃불들이 집을 에워싸고, 그 웅성대는 소리는 횃불들의 수만큼 자리하고 있었다.
“내 산상장군신님께 여쭈어 보니 이 요망한 요물이 화기를 품어 마을의 물을 죄다 마르게 했다는구나! 불은 불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하는구나! 마을에 화를 불러왔으니 화를 입혀야 한다고 하시는구나!”
건너 마을에 살던 무당은 마을 사내들에게 불려와 그 낡은 무령(巫鈴)을 흔들어대며 말을 전하고 있었다. 무당의 그 표독한 눈초리가 사희를 휘감듯 훑어본다.
머리가 깨져 피를 철철 흘리고 늘어져있는 부부였으나 그 말에 기겁을 하여 다시 일어서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짓밟고 있는 탓에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하다면…….”
“마을에 재앙을 몰고 왔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게 아닌가. 아무리 요망한 요물이라 할지라도 가기 전에 좋은 덕이나 쌓고 가라고 은덕을 베푸는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도 이 가뭄을 하루빨리 끝낼 수 있겠고, 이 요물도 저승에 가서 그 죄를 조금이라도 덜 받지 않겠는가.”
무당은 짐짓 자신이 부처라도 되는 양, 고상한 말투를 흉내 내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만큼은 그 어떤 마귀가 뱉어내는 말보다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무심한 눈초리로, 자신에게 물어온 사내의 손에 들린 횃불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한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도 시키자고.”
그 말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 두었던 기름들을 가지고 와, 사희를 향해 뿌려댔다. 그 코를 찌르는 기름내가 훅 하고 몰려왔고, 사희는 어찌할 줄을 몰라 그저 제 자리에 웅크리고 주저앉아 머리만 두 팔로 감쌀 뿐이었다.
사실 애초부터 사희는 불에 태워 죽일 작정이었다.
단지 무당이 그들의 의지에 힘을 더해 주었을 뿐이었다.
기름을 뿌리는 사내들은 웃고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잔인한 웃음을 머금고, 마치 놀이라고 생각하는 듯 기름을 뿌려댔다.
마치 강제로 구걸밖에 못하게끔 몰아세운 뒤, 구걸을 한다고 학대하던 그 날들처럼.
“안됩니다!! 안돼요!!! 제발 부탁입니다!!!”
“살려주세요!! 우리 애는 안 돼요!! 살려주세요!!!”
필사적으로 사력을 다해 일어선 부부는 기름을 뿌리는 사내들에게 달려들어 그 기름통을 빼앗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사내들은 부부가 애걸하며 매달리는데도 아랑곳 않고 기름을 뿌렸다. 못 먹고 살던 부부의 앙상한 팔로는 건장한 사내들을 결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한 사내를 냅다 주먹으로 후려쳤다.
피를 토할 듯이 소리치며 자비를 구하던 남편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덤벼들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힘없는 자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이 놈이 실성을 했나, 감히 누구한테…!!”
사내들은 분기탱천하여 부부를 한데 쓰러트리고는 흠씬 두들겼다.
눈이 터지고 이가 우수수 깨져 떨어져 나왔다.
온 몸에 피멍이 들고, 그것이 터져 꿀렁이는 피가 바닥을 적셨다.
그 잔혹한 처사가 눈앞에 펼쳐지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그 어떠한 마음도 동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비웃거나 구경거리 취급을 할 뿐이었다. 역시나 마을 사람들에게 이들 가족은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 점잖지 못하고 흉악하게 날뛰는 꼴 좀 봐. 서방 놈이 역적집안이라 그런지 냅다 주먹질부터 하고 보잖아?”
“어머머, 그러게 말이야. 상황이 어떤 줄도 모르고 냅다 주먹질부터 하는 게 역시 역적질 한 피가 어디가지는 않는 모양이야.”
“쯧쯧. 저런 건 맞아 죽어도 싼 놈들이야! 마당에 개들도 지들 잘못한건 알고 꼬리를 마는 법이거늘, 어찌 대들기를 대들어!? 저런 요물을 데려다가 길러서 가뭄이 들게 만들었으면 머리가 터지게 싹싹 빌어도 모자란 것을!!”
그 흉흉한 모욕과 비웃음들 속에서 부부는 피범벅이 된 채, 반 시체가 되어버렸다.
온통 피가 터지고 살이 터져 그 안에나 머무르고 있어야 할 하얀 뼈까지 부러진 채, 몸 바깥으로 그 뼛조각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이미 두 눈도 터져서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었기에 눈물인지 피인지 모를 그 핏물을 흘려댈 뿐이었다.
들고 온 몽둥이가 부러질 때 까지 휘두르던 사내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을 훔쳤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다른 몽둥이나 돌멩이 따위를 찾기 시작하다가 문득 자신들이 내려놓았던 기름통을 바라본다.
쏴아아아
사희를 향해 집안으로 뿌리던 기름들을 모조리 부부에게 쏟아 붓기 시작했다.
탁한 기름들이 피범벅의 두 사람에게 쏟아지며, 그 핏물을 씻어내었다.
피가 씻겨나가자 온갖 터지고 부러진 상처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고, 머지않아 그 기름덩어리들은 이리저리 뭉쳐 그들의 몸과 상처에 엉겨 붙었다. 이미 말은커녕 앓는 소리도 제대로 못 낼 법 하건만, 이들은 그 순간까지도 같은 소리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 우… 우리… 사희만… 은… 사희만은…….”
파란 홑조끼의 사내가 앞서 나왔다.
손에는 횃불을 들고서.
사람들은 침 삼키는 소리 외에는 어떤 말도 내지 않고 조용히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사내의 손길에 불이 댕겨졌다.
이미 죽을 모양이었는지 부부는 어떠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불을 붙인 사내도 그 열기에 버텨내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났는데, 불이 붙은 자들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지.
그 쏟아 부은 기름이 얼마나 많았던지 두 부부의 모습은 삽시간에 불타 사라지기 시작했다.
잿개비가 되어가며 사그라지는 신체는 불에 구워져 말려드는 낙엽의 모습처럼 검고 하얗게 변하며 작아져만 갔다.
그 강한 화력에 열독이라도 생길 것만 같았다.
“흐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앙!!!”
불타 사라지는 부모의 모습에 사희가 울기 시작했다.
여태 잔혹할 만치 짓누르던 그 공포심에 충격을 받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벌벌 떨기만 했던 사희에게 부모의 죽음은 현실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 가슴 찢어질 듯 비통한 슬픔에 사희는 그제야 눈물을 쏟아내며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거 봐 저거! 흉물스럽기도 하지! 저 짐승같은 이빨은 대체 무어야!?”
“우는 것도 꼭 짐승새끼가 울부짖는 것 같구만. 저런 흉한 것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 있었다니! 퉤에!!”
그저 입을 벌리고 우는 사희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혐오감을 쏟아냈다.
거의 다 타들어가서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진 부부에게 불을 댕겼던 사내는 아직 그 횃불을 내려놓고 있지 않았다. 그는 세상 전부를 잃고 그저 울기만 할 뿐인 작은 사희에게 그 부모를 태웠던 불을 쥐고 다가섰다.
툭
문득 사람들은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진 것을 느끼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차갑고 촉촉한 느낌.
그 반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우리가 옳았어!!!”
마을 사람들은 그 기쁨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뻐하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불을 지르라고 했던 무당은 그 낡은 무령을 더욱 세차게 흔들며 자신이 모시는 장군신의 이름을 더욱 소리 높여 부른다. 그 잔혹한 환희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사희의 얼굴에는 다리 아래에 있는 탓에 비도 맞지 않건만 그 애절한 물방울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너도 네 부모 따라 갈거지?”
파란 홑조끼의 사내는 울고 있는 사희의 집에 횃불을 던져 넣었다.
삽시간에 화마가 다리 밑을 덮쳤고, 별로 탈 물건도 없는 허름한 집이 불기둥까지 만들어내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불길의 한 가운데에서도 사희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오히려 뚜렷하게 사람들의 귓전을 울렸다.
지독하게 강한 그 불길은 점차 사람들을 물러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불에 타 죽는 이들을 신경 쓰기보다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가 좋았다. 그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세차게 쏟아졌다.
가뭄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입을 벌려 그 빗물을 받아 마셨고, 온 몸으로 비를 맞아 수영이라도 하듯 그 기쁨을 만끽했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하나이다!!!”
무당이 펄쩍펄쩍 뛰며 무령을 하늘 높이 흔든다.
장군신과 천지신명, 그리고 옥황상제를 찾는다.
그에 따라 마을 사람들도 무당과 같이 그 높은 이름들을 부르며 하늘에 감사를 올렸다.
“으아아아아앙!!! 어므니이이이!!! 아브지이이이이!!!!”
사희의 울음은 그 잔혹한 불길 속에서도 전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울음은 또렷하고 생생하게 이어졌고, 불길 속에서 어린아이의 멀쩡한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니 몹시도 해괴할 따름이었다.
“저 요망한 것은 죽지도 않나?”
“그러니 요물 아니겠나! 조금 있어 보드라고, 비가 온다는 것은 충분히 영향이 있다는 소리여!”
사희의 집을 태우는 불길이 더욱 거세진다.
자기 먹을 것은 없어도 사희를 굶기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쓰던 어머니와 아버지. 힘든 생활 속에서도 사희를 데리고 다니며 꽃을 보여주고 작은 들짐승도 보여주고, 간혹 없는 살림에 달콤한 당과 따위를 사 주기도 하였다.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안아주던 부모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잿개비가 되었으니.
“뭐야…? 빗줄기가 왜 이렇게 세?”
“그거야 오랜만에 오는 비니까 한 번에 몰아서…”
“아니 그 정도가 아니잖아!? 등짝이 아플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던 그 빗줄기는 점점 그 위세를 무섭게 키워가며 쏟아지기 이르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빗발이 거세졌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눈을 뜨는 게 고작일 정도로 견뎌내기 힘들어했다.
마치 큰 줄기의 폭포 아래에서 그 물줄기를 맞는 것 같이 온 몸이 아프다.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사람들의 발은 물에 잠겨가기 시작했고, 그 질척이는 땅에서 겨우겨우 걸음을 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부부의 집이 있던 다리가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와 함께, 불길에 집어 삼켜지던 집 또한 그 돌무더기에 깔려 버렸다.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 틈새로 채 꺼지지 않은 불길들이 새어나와 솟구치고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천지가 개벽하는 모습들을 보고 겁에 질려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집으로 피해!!!”
“마을로 돌아가!!!”
개천에서 길가로 기어 올라가는 사람들.
올라가다 문득 개천을 내려다보는데, 개천에 흐르는 그 물줄기가 심상치 않았다.
휩쓸리면 필시 죽음을 면치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살벌하게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파란 홑조끼의 사내는 단단했던 땅이 토사가 되어 흘러내리는 까닭에 미끄러지고 다시 기어 올라가기를 반복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잘못 떨어져 개천까지 구르면 정말로 죽을 것이었으니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다 문득 그 세찬 빗소리의 사이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 돌무더기들 아래에서 들려오는 사희의 울음소리.
“… 저… 미친 괴물이…!”
화마가 쏟아내는 열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속에서도, 천지가 개벽하며 쏟아지는 빗줄기 탓에 무너진 다리의 돌무더기 아래에서도 사희는 죽지 않는 것이다.
그제야 자신이 종일 괴롭히고 돌팔매질을 했던 여자아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는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개천을 마저 기어 올라갔다.
사내는 거의 다 올라갔을 무렵, 자기보다 먼저 올라갔던 이들이 마을의 반대편을 향해 내달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찬 빗줄기들 속으로 사람들은 사라져갔고, 사내는 그들이 도망쳐온 마을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치 천지가 뒤집히는 듯 땅이 울려온다.
갈빗대와 그 안에 염통까지 울리는 큰 진동 속에서 사내가 본 것은, 하늘을 뒤덮을 듯 쏟아져 내려오는 거대한 물의 그림자였다. 사내의 눈에는 그 거대한 물결이 이루는 시커먼 그림자가 마치 대호나 거구귀(巨口鬼) 따위의 무시무시한 아가리로 보였다.
그 바다와 같은 물의 거대한 흐름은 사내를 그 시커먼 속내로 집어삼켜 버렸고, 도망친 사람들 또한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집어삼켰다.
마을의 뒤에 위치한 산이 쪼개지며 무너졌고, 그 자리에서 물줄기가 솟구쳐 뿜어져 나왔다. 하늘에서는 그 위에 바다라도 있는 듯, 한도 없이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고 지천에 물이 가득 차올라 땅 위에 솟아난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그 시커먼 물속에 집어 삼켜진 그 잔혹한 마을도 모조리 쓸려져 토사 따위로 화해버린 논밭도, 모두 흔적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물은 끝도 없이 모든 것을 집어 삼켰고, 비는 삼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렸다.
그 탐욕스러운 물은 가득 차올라, 원래부터 있던 것 마냥 거대한 강을 만들었다.
가뭄을 불러와 사람들을 괴롭히던 그 강렬한 태양도 삼 일 동안은 그 자취조차 보일 수 없었고, 그 후가 되어서야 매섭게 몰아치던 비는 모두 그쳤다. 그 주변의 땅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그저 물만이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크고 작은 산들이 그 많은 물들을 가두는 벽이 되었으며, 마을이 있던 자리는 어디서 흘러오는지 모를 물줄기들이 모여들고 또 조금씩 그 물줄기들을 내보내는 드넓은 강이 된 것이다.
그 후 깊이를 모를 만큼 시커먼 그 강의 한 가운데에서 검은 빛의 용 한 마리가 솟아나왔고, 주변을 둘러보며 날아다니다 그대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자취를 감추었다.
“허어… 사람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용이 되다니…….”
길고 길었던 이야기가 끝을 맺자 임금은 탄성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요물이나 반인 따위라고 생각했을 터.
“이무기 뿐 만이 아니라 구렁이나 잉어. 심지어는 용의 그 형상을 본 따 만든 벽화나 목조상도 용이 되어 날아간다고들 하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못 할 것이 무에 있겠사옵니까.”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임금의 그 모습에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한다.
임금은 그제야 자신의 앞에 놓인 검은 비늘을 다시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해 준 여인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이 비늘의 주인은 그 천지를 개벽하게 만들었던 흑룡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럼 이 비늘의 주인은 그 용인 것이냐?”
잔뜩 상기되어 묻는 임금의 말에 여인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다. 임금은 그 검은 비늘을 집어 들고 다시 그 모양새를 살폈다. 다시 보니 그 모양새가 신묘하기 이를 데 없다. 흑요석 같이 빛나는 검은 비늘이라니.
“그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네가 어찌 그 용의 비늘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제가 부탁을 하였더니 친히 그 비늘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사희는 매우 착하고 어여쁜 아이입니다.”
은근히 그 친분을 에둘러 이야기하는 듯, 여인은 그 장난기 묻어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비늘을 쥐고 있는 임금의 손이 이제는 조심스럽다. 그냥 신기하거나 희귀한 물건 정도인 줄 알았건만 그 내력을 알고 나니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손길에 정성과 조심성이 들기 시작한 임금의 손길을 보며 여인은 마냥 웃는다.
“전하, 그 비늘의 효험을 한 번 시험해 보시지요.”
임금은 말없이 여인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모양새는 듣고 있으니 말하라고 하명하는 모습이었다. 그 눈에는 왠지 모를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 비늘을 전하의 베개 아래에 두고 잠을 청하시면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조용하고 퍽 얌전한 몸짓으로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나가는 문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임금의 앞에서 등을 보이는 것이 매우 불경한 일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여인은 그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임금은 문제 삼지 않는다. 어쩌면 그러한 임금의 모습을 알기에 그런 자극적인 모습을 하는지도 몰랐다. 행여 다른 의도가 있기에 뒷모습을 보이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별로 볼 기회가 없었던 여인의 그 뒷모습은 그 몸태가 아름다워서인지 새삼 매혹적이었다.
다소 몸에 달라붙는 독특한 치마저고리도 한 몫을 하는 듯하다.
나가는 문을 붙들고 여인은 돌아서지 않은 채, 한 마디의 말을 잇는다.
“비가 오네요.”
그 말에 다소 넋이 나가있던 임금이 귀를 기울여 바깥의 소리를 들었다.
나라가 가뭄 탓에 심각하게 병이 들어, 그간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 반가운 소리.
“사희가… 자기 살던 강이 마르는 것은 원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뒤를 돌아보진 않았으나 여인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젖어 있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빗소리 탓에 기쁜 마음이 들어 상기되었으나, 여인의 그 목소리는 임금을 한편으로 애달프게 만들었다. 어째서 슬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부디 사희를 잊지 말아주시옵소서.”
그대로 여인은 문을 열고 조용히 침소를 나갔다.
그 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는 않았지만 은근한 인적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시간이 다시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임금이 부르면 나인들이 대답을 할 것이었다. 임금의 침전이라 딱히 서로 간의 말들은 늘어놓고 있지 않지만, 그들도 빗소리에 쾌재를 부르고 있는 듯 조금의 발걸음 소리가 분주히 들려왔다.
임금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비늘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되새겼다.
그러다 베개 아래에 사희의 비늘을 조심스레 넣었고, 여인이 머무르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쉽게 몸을 누이지는 못 할 것 같았다.
야심한 시각, 은은히 들려오는 빗소리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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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번 이야기는 정말 기네요!
이렇게 긴 이야기는 너무 오랜만에 써 보는 것 같습니다!
실은 상편 분량의 두 배가 넘는거 같아요...
결말을 짓지 못하고 여행을 다녀와서 좀 더 정성스레 적다보니 음....
또는 상편을 더 길게 적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여튼 지루하지 않아야 할텐데요 어음...
여튼 네 번째 밤도 이렇게 끝이 났네요 ㅎㅎ
언제나 하는 얘기지만 ㅎㅎ
재미나게 읽어주시는 분들 덕에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우 감사해요! ㅎㅎ!
다음 회차에는 또 다른 이야기로 다시 뵈어요, 여름 끝 무렵인데 가을이 오는 날까지 불볕더위 조심하시구 항상 건강하세요!!!
ㅎㅎ... 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 ㅎㅎ!!
출처 | 작성자, 본인, 윈스턴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첫 번째 밤, 광대패 속의 여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58683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두 번째 밤, 절지당(絶指堂).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60495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세 번째 밤, 원귀의 저주.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4072 야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네 번째 밤, 개천에서 태어난 괴물(上)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2961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