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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류시화, 새들은 우리 집에 와서 죽다
새는 공중을 나는 동안 대기를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월의 하루 동안 새가
우리 집 지붕 위를 맴돌다가
갑자기 집 뒤의 빈터로 추락했을 때
나는 지구가 한 쪽으로 기우뚱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새를 떠받치고 있던
어떤 손이 치워지기라도 한 듯
새가 수직으로 빈터의 민들레밭에 내리꽂히자
우리 집 식탁이 기울고
식탁에 놓인 오후의 찻잔이 기울고
순간적으로 찻잔의 물이 엎질러졌다
죽음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하려는 듯
추락한 새의 무게는
우리 집 뒤의 민들레밭을 누르고
민들레 밭은 다시 도시 전체를 누르고
도시는 또다시 도시들로 가득한 세상 전체를 눌렀다
그렇게 해서 잠시 세상의 무게 중심이
한 마리의 새의 죽음의 무게로 이동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새들이 그날 오후
우리 집 빈터에 와서 추락하기라도 한 듯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날개들을 떠받치고 있던
어떤 손이 갑자기 치워지기라도 한 듯
지구의 중심이 우리 집
민들레의 빈터로
기우뚱하고 이동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박노해, 맑은 눈
휘영청한 사람을 보면
앞이 환해지는 듯하다
눈 푸른 이는
푸른 잎새 성성한 나무처럼
미래 지향성이라서인가
미래의 눈으로
오늘을 비춰보고
오늘 속에서
미래를 뚫어보는
투쟁과 묵상의 맑은 눈
이 세상에 가장 낮아서
가장 깊고 너른 사람들 속에서
먼 미래를 뚫어보며
오늘 어지러운 길을
착실하게 헤쳐 나가는
맑은 눈
휘영청한 사람을 보면
앞이 환해지는 듯
언 가슴 눈부시다
박목월, 수요일의 사과
강의는 오전 뿐
용무가 없는 수요일
갤슴하게 웃는 오후를
동대문 밖으로 나가
혼자 차나 마실까
누구나 살면은
이런 날도 갖나부다
조용히 돛을 펴고 기우는 하루를
밤이면 불이 켜질 교회
언덕 아래로
비둘기 붉은 발이
다리께로 걸어가는
접시에 한 조각 연한 과육
수요일의 사과를
씹으며
방문한 친구도 없이
다방에서
신을 생각해 보는
과즙으로 앉아서 목욕하고
그늘 아래 의자
5월의 정서를
김용택, 꽃처럼 웃을 날 있겠지요
작년에 피었던 꽃
올해도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 피어 새롭습니다.
작년에 꽃 피었을 때 서럽더니
올해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이 피어나니
다시 또 서럽고 눈물 납니다
이렇게 거기 그 자리 피어나는 꽃
눈물로 서서 바라보는 것은
꽃 피는 그 자리 거기
당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없이 꽃 핀들
지금 이 꽃은 꽃이 아니라
서러움과 눈물입니다
작년에 피던 꽃
올해도 거기 그 자리 그렇게
꽃 피었으니
내년에도 꽃 피어나겠지요
내년에도 꽃 피면
내후년, 내내 후년에도
꽃 피어 만발할 테니
거기 그 자리 꽃 피면
언젠가 당신 거기 서서
꽃처럼 웃을 날 보겠지요
꽃같이 웃을 날 있겠지요
도종환,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그대 마음의 눈녹지 않는 그늘 한 쪽을
나도 함께 아파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그대여 우리가 아직도 아픔 속에만 있을 수는 없다
슬픔만을 말하지 말자
돌아서면 혼자 우는 그대 눈물을 우리도 알지만
머나먼 길 홀로 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눈물로 가는 길 피 흘리며 가야 하는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밤도 가고 있는지
그대도 알고 있지 않는가
벗이여 어서 고개를 들자
머리를 흔들고 우리 서로 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 가자
그대여 아직도 절망이라고만 말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