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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마을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평화로운 사람들은 소풍을 가고
큰 공 굴리는 운동회 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가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사람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뭉개버리는가
곰은 왜 마을을 습격하고
산불은 왜 마을 가까운 산들까지 번져오는가
한밤중에 횃불을 드는 마을의 소리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마을의 소리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마을에서
온몸에 가시바늘을 키운다
평화로운 사람은 문을 걸고
잠속에서도 곰에게 쫓길 것이다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집에서
돌담을 높이 쌓는다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문풍지 우는 긴 겨울밤엔 장자(莊子)를 읽으리라
신동집, 빈 콜라병
빈 콜라병에는 가득히
빈 콜라가 들어 있다
넘어진 빈 콜라병에는
가득히 빈 콜라가 들어 있다
빈 콜라병에는 한 자락
밝은 흰 구름이 비치고
이 병을 마신 사람의
흔적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넘어진 빈 콜라병은
빈 자리를 생각고 있다
그 옆에 피어난 들국 한 송이
피어난 자기를 생각고 있듯이
불고 가는 가을바람이
넘어진 빈 콜라병을 달래는가
스스로 풀어내는 음악이
빈 콜라병을 다스리고 있다
김종문, 샤보뎅
하늘에서 모래알이 쏟아지고 있었다
인간은 바람결에 소리를 내며 이루고 있었다
평원과 산을 생각하는 모래알처럼
인간이 죽어간 폐허 위에
집을 지으며 정원을 가꾸며 살고 있었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생각하며
사막에서 떠나 살 수 없는 체념에서 해골바가지를 들고
오아시스를 찾는 여정을 더듬어 가고 있었다
태양이 흘리며 간 적은 핏자국들은
뉘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태양의 유형(流刑)처럼
하늘에서 모래알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도, 땅도, 사막
저 멀리 사막 사이를 가도 있었다
검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운 여인이
양성우, 꽃상여 타고
꽃상여 타고 그대
잘 가라
세상에 궂은 꿈만
꾸다 가는 그대
이 여름 불타는 버드나무
숲 사이로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그 가슴에 돋은 칼로
슬픔을 자르고
어이어이 큰 눈물을
땅 위에 뿌리며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박용래, 먼 바다
마을로 지우는 언덕
머흐는 구름에
낮게 낮게
지붕 밑 드리우는
종소리에
돛을 올려라
어디메, 막 피는
접시꽃 새하얀 마디마다
감빛 돛을 올려라
오늘의 아픔
아픔의 먼 바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