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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시린 손을 잠시 댄다
게시물ID : lovestory_902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6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22 09:43:1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강은교진눈깨비

 

 

 

진눈깨비가 내리네

속시원히 비도 못되고

속시원히 눈도 못된 것

부서지며 맴돌며

휘휘돌아 허공에

자취도 없이 내리네

내 이제껏 뛰어다닌 길들이

서성대는 마음이란 마음들이

올라가도 올라가도

천국은 없어

몸살치는 혼령들이

 

안개 속에서 안개가 흩날리네

어둠 앞에서 어둠이 흩날리네

그 어둠 허공에서

떠도는 피 한 점 떠도는 살 한 점

주워 던지는 여기

한 떠남이 또 한 떠남을

흐느끼는 여기

 

진눈깨비가 내리네

속시원히 비도 못되고

속시원히 눈도 못된 것

그대여

어두운 세상천지

하루는 진눈깨비로 부서져 내리다가

잠시 잠시 한숨 내뿜는 풀꽃인 그대여







2.jpg

김상옥백모란(白牧丹)

 

 

 

이 한 조각 하얀 선지(宣紙온갖 형용(形容)을 앉히는 자리

바람에 나부낀 네 살갖은 아직 오지 않아도

질탕히 신들린 마음을 타고 떨기채로 와 있다

 

물감을 풀다 말고 저 투명을 받아낸 손놀림

이제는 우로(雨露)도 기름진 뜨락도 다 그만두고

인위(人爲)와 무위(無爲)로만 다리 놓아 서로 건너다닌다







3.jpg

박두진산에 살어

 

 

 

먼 첩첩 열굽이 꽃골짜기 돌아든 곳

내가 온 곳을 따라 너도 오라

숙아

 

머리에는 고운 산꽃을 따 달어 이브처럼 꾸미고

한아름 붉은 꽃을 가슴에 안고

새처럼 사뿐히 달려오듯 내게 오라

숙아

 

화장도 생활도 풍속도 버리고

여기 먼 아무도 없는 골에

천년을 산에 살러

내게 오라

숙아







4.jpg

민영이승과 저승

 

 

 

언제부턴가

수정으로 빛나는 별빛 한 점을

내 저승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네

불꽃으로 파열하는 석류처럼

 

그 별이 떨어질 때비로소 나는

오랜 나그넷길에 지친 몸을

호롱불 아른거리는 주막집 마루방에

누이리라 생각했네

 

그 언제부턴가

바닷가 가파른 벼랑 위에 핀

진보라빛 도라지꽃 한 송이를

되살아난 내 이승의 모습이라 생각했네

 

머리카락 날리는 바닷바람은

꽃대궁을 흔드는 새벽 찬 바람

서녘으로 떠나가는 구름발처럼

해연(海燕)의 울음 따라 떠나가려네







5.jpg

김남조우편물

 

 

 

내가 못 가는 곳에도

나의 책은 우표 붙이고 간다

책갈피 첫머리

저편 이의 이름을 쓰곤

시린 손을 잠시 댄다

가서 안부 전하고

호젓이 그 옆에 오래 머물라고

그가 외로울 땐

그 더욱 옆에 꼭 있으라고

마음 깊은 당부도

안 보이게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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