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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 줄 풀기
수면(水面) 위에서
바람의 얼굴을 만난다
수면 위에서 마침내 마음의 줄을 풀고
물 속 깊이
일그러진 감정의 아가미를 낚는다
어둠의 뼈
비늘 같은 눈물
한평생 인간은 줄을 풀고
얽힌 줄을 풀어내고
자신을 만든다
저만큼
물 위에 반짝인 햇빛의
점 하나
빈 낚싯대 같은 인생을 모두 불러다
점 하나를 낚는다
윤동주, 이별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 내, 그리고
커다란 기관차는 빼―액―울며
쪼끄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더운 손의 맛과, 구슬 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김혜수, 덕장
담장 안 빨랫줄에
며칠째 걷지 않은 겨울빨래가 널려 있다
마르기도 전에 얼다 녹다
다시 얼어붙은
미처 걷지 못한 빨래 위로 눈발 날린다
맛이 깊고 육질 뛰어난 황태가 되기 위해선
추위와 바람 속에서 거듭
얼었다 녹았다 해야 한다
담장을 넘지 않으려 애면글면
다시 얼어붙은 눈물은 단단하다
영하의 공중에 가랑이 벌린 채
내복 바람으로 오래도록
벌 서는 가족들
가출한 당신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벗어두고 간 팔다리
저 혼자 펄럭이다가
줄 위에서 부르르 떨며
눈발 속에
물구나무 선 채
서정윤, 이 겨울은
겨울은 어디서 오는가
그렇게 아름다운
바람 소리를 내며
오늘도
어제만큼의 두께로 얼음이 되고
스스로 외로워하게 만드는
도무지 깨어지지 않는 바람
겨울의 세계는 과연 어디에
숨겨져 있었는가
찬란히 빛나는 이 겨울은
내가 모르는
그 어떤 고통의 흔적이 있기에
이렇게 당당히 바람으로 살아나는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내게 와서
나 아닌 나와의 험한 싸움을 지켜주는가
겨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생활에 시들어가는 인간의 목숨에
영혼의 불을 질러버릴 수도 있으련만
사람이 나서 죽는 게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듯 우리의 겨울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강한 힘을 느끼는가
되돌아갈 수도 없는 나처럼
잠시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김소월, 님과 벗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香氣)로운 때를
고초(苦椒)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