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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52.위기후.무안후열전(魏其侯.武安侯列傳)
게시물ID : history_185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2
조회수 : 5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25 05:26:18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ㅡㅡ 팟캐스트를 들으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blog.daum.net/carilla


*위기후.무안후열전(魏其侯.武安侯列傳)

 

지난편에 설명한 오초칠국의 난을 평정한것은 두영의 공이 컸다.

자고로 공이 있으면 귀해지는 법이니 그의 부귀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황족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의 위기를 구했으니 그 이름이 천하에 널리 퍼졌다.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자 오로지 두영만이 현명하여 선비들을 좋아했으며

선비들도 그를 흠모하여 따랐다.

그는 군사들을 이끌고 산동의 형양에서 반군과 항전 했다.

이제부터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의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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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소종래의(禍所從來矣)

 

위기후 두영은 효문제의 황후의 종형의 아들이다.

부친의 대까지 대대로 관진현에 살았는데 두영은 유달리 빈객들을 좋아 했다.

효문제때 그는 오나라의 재상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했다.

효경제가 즉위하자 두영은 첨사에 임명됐다.

 

양효왕은 효경제의 아우로 모친인 두태후의 총애를 받았다.

양의 효왕이 입조했을때 황제는 형제로서 그에게 주연을 베풀었다.

그때는 황제가 아직 황태자를 세우지 않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얼큰하게 취한 황제는 어머니인 두태후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말했다.

"천추후에 황제의 자리를 양왕에게 전할까 합니다."

과연 두태후가 크게 기뻐 하였다.

그때 두영이 황제에게 벌주를 한잔 따라 올리며 정색하여 말했다.

"천하는 고조의 천하입니다.

그때 고조께서 황제의 자리는 부자간의 상속으로 한다고 정하셨는데

어찌 마음대로 양왕에게 천하를 전할수 있겠습니까?"

 

태후가 그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

"그대가 무언데 이일에 참견하는가?"

그 일로 해서 두태후는 두영을 몹시 미워하게 되었다.

 

두영 또한 자기의 직위가 너무 낮은데다가 태후의 미움을 받는다 생각하고 벼슬에 미련이 없었다.

또한 때마침 병에 걸려서 병을 칭하고 첨사직을 사임했다.

 

태후는 두영을 더욱 미워하여 두영의 문적까지 박탈 해버렸다.

그렇게 되니 두영은 황제를 알현할 기회조차 얻을수 없게 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효경제 3년.

오초7국이 모반했다.

다급해진 황제는 종실과 외척까지 두루 살펴 보았으나 역시 두영만큼 현명한 인물을 찾을수가 없었다.

그때쯤에는 두태후도 두영의 인물됨을 깨닫고 몹시 부끄러워 하였다.

 

황제가 두영을 불렀다.

그러나 두영은 신병을 핑계로 중책을 굳이 사양했다.

그러자 황제가 꾸짖었다.

"지금 천하가 위기에 빠졌는데 왕손은 어찌 사양만 하고 있소?"

 

두영도 별수 없었다.

두영은 대장군에 임명되고 황금 천근을 하사 받았다.

그러나 두영은 그 황금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군문앞에 벌여놓아

군리들이 필요에따라 알아서 가져다 쓰도록 했다.

또한 두영은 은거해 있던 원앙과 난포 등을 황제에게 추천 했다.

 

두영은 형양에 진을 치고 제나라와 조나라의 군사들을 감시했다.

결국 두영은 오초7국의 난을 평정하고 나서 위기후에 봉해졌다.

 

많은 유세객들과 빈객들이 다투어 두영의 문하로 몰려들었다.

효경제도 국사를 논할때는 항상 조후 주아부와 위기후 두영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렇게 되니 열후들도 감히 대등한 예로 대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효경제 4년

율희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고 두영을 태부로 삼았다.

그런데 효경제7년에 율태자를 폐위 시켜버렸다.

두영은 이 일로 자주 황제에게 간쟁 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이에 두영은 다시 병을 핑계하여 종남산으로 은거해 버렸다.

그는 그곳에서 수개월동안 밭이나 갈며 살았다.

여러 변사나 빈객들이 두영를 조정으로 다시 불러 들이려고 설득 했으나

아무도 그를 끌어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양나라 출신 빈객 고수가 이렇게 설득 했다.

"장군을 부귀하게 만든것은 폐하 이시며 장군을 친애 하시는것 또한 태후 이십니다.

지금까지 장군은 태자의 태부로 있었으나 이미 폐위되었으니 간쟁할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죽을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은거하여 병을 핑계로 두분불출하고

조나라 미녀들을 끼고 앉아 참조하지 않고 있으면서 빈객들을 상대로 시시비비만 논하고 있으니

이것은 자신을 변명하며 황제폐하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으로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다가 만약 폐하나 태후께서 문득 진노하는 마음을 품으시면

장군은 물론 처자식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두영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다시 참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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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도후 유사가 승상직을 사임했다.

두태후가 두영을 후임 승상으로 여러번 추천 했다.

효경제가 대답했다.

"태후께서는 어찌하여 제가 자리를 아껴 두영에게 승상의 직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위기후는 교만하고 경솔하며 부화뇌동 하는자이기 때문에 승상의 중책을 맏길수가 없습니다."

 

결국 황제는 두영을 등용하지 않고 건릉후 위관을 승상에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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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후 전분(蚡)은 효경제의 황후의 동생인데 장릉 출신이었다.

위기후 두영이 대장군이 되어 한창 명성을 떨칠때 전분은 겨우 낭관에 불과 했다.

그래서 고귀한 신분인 두영의 집에 드나들며 술심부름이나 하며 아들이나 손자처럼 굴었다.

효경제 만년에 이르렀을때 전분은 차츰 승진하여 드디어 태중대부가 되었다.

전분은 변설이 능한데다 반우와 잡가서 등을 읽어 아는것이 종횡무진 많아 보였으므로

왕태후는 그를 무척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효경제가 붕어하자 곧바로 태자가 즉위해서 효무제가 되었다.

곧 왕태후가 섭정했다.

천하의 인심을 진무하기 위한 계책 중에는 전분의 빈객들이 낸 계책이 많았다.

또 전분과 그의 아우 전승도 모두 왕태후의 동생이었으므로 

효경제가 붕어한 3년 후에 전분은 무안후로 봉해지고 전승도 주양후로 봉해졌다.

전분은 정치에 참여하면서부터 승상이 될 꿈을 가졌다.

그래서 항상 빈객들에게 겸손했고 은거하고있는 명사들을 추천하여 그들을 존귀해게 만들었다.

이는 기존의 세력가인 두영이나 장군.재상등을 몰아내기 위한 계책의 일환이었다.

 

건원 원년.

승상 위관이 병으로 사임했다.

황제는 후임 승상과 태위를 정할일을 논의 했다.

 

무안후의 문하인 적복이 전분을 설득 했다.

"위기후 두영은 존귀해진지가 오래되어 천하의 선비들이 그의 문하에 많이 모여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려는 장군께서는 결코 위기후의 상대가 아닙니다.

만약 황제께서 장군을 승상으로 삼으려 한다해도 절대 받지 마시고 위기후에게 양보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장군은 반드시 태위가 됩니다.

태위와 승상은 그 존귀하다는점에서는 거의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군께서는 남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는 명성을 얻게 될것입니다."

 

전분은 적복의 말을 옳다고 생각하고 태후에게 넌즈시 그 뜻을 전했다.

그것은 황제에게 말이 흘러들어가게 하려는 뜻이었다.

일은 뜻대로 되어 두영이 승상이 되고 전분이 태위가 되었다.

 

두영과 전분은 똑같이 유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도가의 학설을 밀어내고 유학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펴기위해 힘썼다.

그런데 두태후는 도학과 황.로 의 사상을 좋아했다.

그래서 태후는 두영과 전분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때 마침 외척들마저 두사람을 비방 했다. 

 

황실의 태후와 조정대신들의 사이가 심상치 않을때에 어사대부 조관이 태후의 섭정을 거치지 않고

정무를 처리하겠다고 발언했다.

이것은 두태후의 권위를 만만히 본것이었다.

두태후는 매우 크게 노하였다.

어사대부 조관은 물론 승상과 태위까지 모조리 추풍낙엽처럼 벼슬자리가 떨어졌다.

 

백지후 허창이 승상이 되고 무강후 장청적이 어사대부가 되었다.

두영과 전분은 그 일로 현직에서는 떠났지만 여전히 후 의 신분은 유지 되었다.

 

그런데 전분은 왕태후의 동생이었다.

그래서 황제로부터 총애를 받아 가깝게 지낼수 있었다.

정사를 상주하면 청허 되는일이 많았다.

 

언젠가는 무안후 전분의 시대가 올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두영을 떠나 전분의 밑으로 모여 들었다.

 

건원6년

두태후가 드디어 붕어했다.

승상 허창과 어사대부 장청적은 두태후의 장례식을 소홀히 했다는 책임을 물어 즉시 파면 되었다.

 

전분이 승상이 되고 한안국이 어사대부로 발탁 되었다.

천하의 제후들과 군국의 인심이 모두 전분에게 쏠리게 되고 사람들이 심하게 아부하게 되어

전분은 날로 방자해 질수밖에 없었다.

 

전분의 용모는 추악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내세우는데만 관심이 있었다.

전분은 국가의 모든 정사를 혼자서 전단했다.

그가 상주하는것은 모두 윤허 되었고 사람을 추천해도 되지 않는 자리가 없었다.

심지어 일반 백성을 2000석의 지위로 단번에 뛰어 오르게 하는일도 있었다.

가히 전분의 권세는 황제보다도 높았다.

 

어느날 황제가 전분에게 말했다.

"승상이 관리를 임명하는것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소?

나도 좀 관리를 임명하고 싶소."

 

어느날 전분이 관청의 부지를 불하받아 자신의 집을 넓히겠다고 청했다.

그때는 황제도 어느정도 성장해 있었다.

황제는 그때 대로하여 소리쳤다.

"그대는 아예 무기창고의 부지가 탐난다고 말하지 그러는가?"

전분은 찔끔 했지만 그래도 그의 오만은 여전했다.

 

어느날 전분은 객을 초청해 주연을 베푼적이 있었다.

그의 형 갑후 도 초대했다.

그런데 그는 형을 남향하여 앉게 하고 자신은 동향으로 자리하며 말했다.

"승상의 자리는 존귀하오.

형이라 하여 사사로이 몸을 굽힐수는 없소."

 

그의 권세는 날로 커지고 명성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나 한편 위기후 두영은 두태후가 죽은 후에 더욱 소외되어

등용되지 못하고 권세도 없었다.

빈객들의 발길도 끊기고 아무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오직 관부장군만이 옛 정을 생각해 가끔 찾아왔다.

두영은 뜻을 얻지 못하고 묵묵히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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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灌夫)장군은 영음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 장맹은 일찌기 영음후 관영의 가신이었는데

관영의 총애를 받아 봉록 2000석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리하여 관씨성을 받아 관맹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초7국의 난이 생겼을때 영음후 관영의 아들 관하가 장군이 되어 주아부 밑에 소속 되었을때

관맹을 교위로 삼겠다고 신청 했다.

관맹은 나이가 많아 싸울수가 없었는데도 관하가 억지로 청하여 징용 되었기 때문에 심사가 울적 했다.

그때 관부는 천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아버지 관맹을 따라나갔다.

 

연로한 관맹은 항상 적의 견고한 성을 공격하는데에만 배치 되어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군법에 따르면 부자가 함께 종군했다가 어느 한쪽이 전사하면

남은 한쪽이 그 유해를 거두어 귀향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러나 관부는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오나라 왕이나 장군의 목을 베어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때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

 

관부의 결의가 이처럼 분연하니 허락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갑옷을 입은 관부는 갈래창을 잡고 평소 자신을 따르던 병사 수십명을 이끌고 용약 출전 했다.

그러나 성벽문을 나서자 아무도 그를 따라 전진하려 하지 않았다.

"좋다.

그렇다면 나 혼자라도 가겠다."

관부는 단신으로 말을 달려 오나라 군중으로 쳐들어 갔다.

여남은 기의 사졸만이 뒤를 따랐다.

 

관부는 닥치는대로 베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수십명의 적을 벤 뒤 더 전진하지 못하고 다시 한나라의 누벽으로 돌아왔는데

처음에 따라나갔던 사졸들은 다 죽고 오직 한명만이 남아 있었다.

관부 자신역시 열군데 이상이나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다행히 만금짜리 좋은 약이 있어 그는 목숨을 구할수 있었다.

상처가 아물자 관부는 다시 장군에게 청했다.

"저번에 돌격했다가 오나라 성벽의 구조를 잘 알게 되었으니 다시한번 쳐들어 가고 싶습니다."

 

장군은 그의 의기는 가상했으나 십중팔구 그를 잃을것이 염려되어 태위에게 상의 했다.

태위 역시도 그를 가상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나라가 격파된 후에 관부의 용맹은 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관하가 황제에게 관부를 추천 했다.

관부는 중랑장에 임명되었지만 얼마 안가서 법에 저촉되어 면직 되었다.

그러나 장안에서 그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관부는 효경제때 대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효경제가 붕어하고 효무제가 즉위 했다.

"회양군은 천하의 요충지이며 강병이 배출되는곳이니 당연히 관부를 보내는것이 적당하다."

그래서 관부는 회양군 태수가 되었다.

 

건원원년.

관부는 조정으로 돌아와 태복이 되었다.

 

건원2년.

관부가 장락궁의 위위인 두보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그가 버르장머리가 없다하여 손찌검을 한일이 있었다.

두보는 두태후의 동생이므로 황제는 태후가 관부를 죽이지 않을까 염려되어

그를 연나라 재상으로 전출 시켰다.

관부는 몇해후에 다시 법에 걸려 관직을 잃고 장안의 집으로 돌아와 소일했다.

 

관부는 성격이 강직했다.

그는 술이 취하면 주사가 심했지만 그래도 의리와 의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첨을 싫어 했으며

일족이 존귀하여 자기보다 윗자리에 있는 위세등등한 상관에게도 예의를 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능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자기보다 빈천한 사람에게는 항상 그들을 높여 대등하게 교제했다.

그는 아랫사람들을 아껴주었으므로 선비들도 그를 존경했다.

 

그는 학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책임감은 매우 강하여 그와 사귀는 사람들은 거의 호걸이 아니면 무뢰배의 두목급이었다.

 

집에는 재물이 풍족해서 식객이 들끓었으며 빈객들은 그에게 붙어 권세와 이익을 얻는사람도 있었다.

좌우지간 영천에서는 제멋대로였다.

그래서 영천의 아이들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ㅡ영천의 물이 맑으니 관씨는 태평.

영천의 물이 흐려지면 관씨는 멸족.ㅡ

 

관부는 비록 부자였지만 권세가 없었기때문에 대신이나 시중등 거물급 빈객들의 발길은 점차 끊어졌다.

그때 비슷한 처지의 두영과 관부가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의지하고 이끌어주며 마치 부자지간처럼 지냈다.

서로 만나게 된것을 기뻐하고 오히려 늦게 만나게 된것을 한탄했다.

 

관부가 상을 당했을때 승상 전분의 집에 들렀다.

전분이 그를 반가이 맞으며 별 뜻없이 말했다.

"나는 그대와 함께 위기후의 집을 방문하고 싶은데 하필 그대가 복상중이구려."

 

이 말을 들은 관부는 이것을 좋은 기회라 여겨 말했다.

"승상께서 다행히 위기후를 만나려 하신다면 제가 어찌 복상중이라는 이유로 마다하겠습니까?

제가 위기후께 알려 승상을 대접할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승상께서는 내일아침 일찌기 위기후의 집으로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분은 승락 했다.

관부는 즉시 이 소식을 두영에게 알렸다.

두영 역시 매우 기뻐하며 부인과 함께 장에 나가 고기와 술을 사고 집안 청소를 하는등 차비를 극진히 했다.

 

이튿날 아침일찍 관부가 두영의 집으로 왔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전분은 오지 않았다.

두영이 관부에게 말했다.

"승상이 혹시 약속을 잊은건 아닐까?"

그러자 관부가 투덜거리며 전분을 비난하고 마차를 몰아 전분의 집으로 가 보았다.

 

전분은 그때까지 자고 있었다.

사실 전분은 관부와 대담 도중에 그저 가볍게 말한것 뿐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반드시 가야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관부가 자고있는 전분을 깨웠다.

"승상께서는 어제 다행히도 위기후를 방문한다고 승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위기후의 집에서는 어제부터 대접할 준비를 하느라고 밤을 새웠으며

아침부터 승상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식사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분은 깜짝 놀랐다.

"내가 어제 술이 취해서 그대와 한 약속을 깜빡 했구려."

전분은 마지못해 일어나 천천히 출발 했다.

관부는 그러한 전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자리가 벌어지고 모두들 술이 취하자 관부의 주사가 시작 되었다.

그는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전분의 소매자락을 끌어 일으키려 했다.

"승상도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춥시다."

 

전분은 모른척 하고 일어나지 않았다.

관부가 전분에게 욕설을 하며 승상을 능욕했다.

두영이 보고있다가 사람들을 불러 관부를 뜯어 말려 데리고 나가게 한 후에 승상에게 사죄했다.

 

승상 전분은 처음에 관부 때문에 불쾌했지만

그래도 두영이 극진히 접대했기 때문에 기쁘게 마시고 즐기다가 돌아갔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전분과 두영은 서로 사이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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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전분이 빈객 적복을 시켜 두영의 밭을 달라고 청했다.

전분은 두영이 당연히 밭을 양보해 줄것이라 생각했는데 두영은 크게 노했다.

"내 아무리 버림받은 몸이며 전분이 존귀한 승상의 자리에 있다하나

어찌 권세로 남의 재산을 탈취하려 한단 말이냐?"

 

마침 함께있던 관부도 합세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전분을 욕했다.

입장이 난처해진 적복은 승상전분과 위기후 두영의 사이가 벌어지는것을 원치 않았기때문에

두영을 잘 달래고 돌아가서 전분에게 돌아가 사실을 속이고 좋은말로 고했다.

"위기후는 늙었습니다.

곧 죽게될것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결국 두영과 관부가 화를내고 자신을 욕했다는 소문이 승상 전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전분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일전에 두영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을때 내가 그를 구해 주었는데 그까짓 밭 몇이랑때문에 나를 욕했다고?

게다가 관부 이놈은 또 무언데 참견인가?"

 

이 일로 그들은 서로 큰 원한을 품게 되었다.

 

원광4년.

승상전분이 황제에게 말했다.

"영천땅의 관부가 횡포가 심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높으니 자세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황제는 황제대로 그들의 사연을 알고 있었으므로 화를내며 말했다.

"그것은 승상의 할 일인데 어찌하여 하필 나에게 청하는것이오?"

 

조정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자 두영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두영에게 알렸다..

전분의 계략에 걸려 관부는 물론 자신도 위험하다고 느낀 두영은

승상이 회남왕으로 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사실을 황제에게 고발하여 전분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양쪽 집의 빈객들이 나서서 중재를 하고 화해를 시켰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화를 풀고 화해했다.

 

그해여름에 승상전분이 연왕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태후가 조칙을 내려 열후와 황족들 모두가 축하 하도록 했다.

 

두영이 관부를 찾아가 함께 참석하자고 했으나 관부가 사양하며 말했다.

"저는 술때문에 승상께 여러차례 실수를 해서 지금도 승상은 저를 싫어 할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오."

두영이 계속 권하여 두 사람은 마침내 전분의 잔치에 가게 되었다.

 

주석이 무르익고 흥겨워지자 전분이 일어나 축배를 들었다.

전 좌석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려 경하했다.

그 다음에 두영의 차례가 되어 축배를 들자 옛 친구들만 자리를 고쳐앉으며 경의를 표할뿐이었다.

관부는 술에 취한 와중에도 이런 꼴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관부가 일어나서 술잔을 들고 신랑 전분에게 갔다.

전분은 자리를 고쳐잡고 무릎을 세웠지만 술잔을 사양하며 말했다.

"너무 취해서 이젠 더 마실수 없소."

관부가 화를 냈다가 빈정거렸다.

"존귀한 분이라 술을 올리는것입니다.

그러니 이잔을 받으셔야 합니다."

관부가 비꼬는것이 불쾌했지만 전분은 아무말 않고 외면해 버렸다.

머쓱해진 관부는 다음자리로 갔다.

그 자리에는 임여후 관현이 있었다.

관현은 정불식 장군과 뭔가 귓속말을 나누고 있느라고 관부가 온줄도 몰랐다.

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관부는 마침 만만하게 보던 관현에게 화풀이를 했다.

"평소에는 정불식을 한푼의 가치도 없다고 헐뜯고 다니더니

오늘은 내가 축수를 위해 술잔을 돌리는데 계집아이처럼 귓속말이나 속삭이고 있는가?"

그러자 관현도 지지않고 말했다.

"나는 괜찮소.

그러나 정불식장군을 이런식으로 모욕해도 되는것이오?"

관부가 대답했다.

"목이 달아나든 가슴팍에 구멍이나든 그런것을 상관할 내가 아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되자 손님들이 변소에 가는척 하고 하나둘 일어나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두영이 보고 '이것 큰일났다' 싶어서 관부를 이끌고 나가려 했다.

전분은 드디어 폭발했다.

"저놈이 저토록 방자해진것은 방치한 나의 잘못이다.

저놈을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라."

전분의 사병들이 달려들어 관부를 체포했다.

이때 관부의 가신 적복이 재빨리 달려내려가서 짐짓 관부의 뒷덜미를 누르며 속삭였다.

"고개숙여 죄송하다고 사죄하게.

일이 심상치가 않네."

그러나 관부는 아직도 흥분과 취기가 가라않지 않았다.

"내가 뭣을 잘못했다고 저런자에게 사과해야 하는가?"

 

전분이 더욱 노해 소리쳤다.

"저놈을 묶어 옥에 가두어라.

내가 오늘 황족을 초대한것은 조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관부가 굳이 찾아와 빈객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행패를 부린것은

조칙을 가볍게 여긴것이 아니겠는가?

불경죄로 치죄하여 기시에 처해지게 하라."

 

과연 관부는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모두 잡혀와 옥에 같히게 되었다.

두영이 크게 놀라 금전을 풀어 석방운동을 했으나 관부를 풀려나오게 할수는 없었다.

잔칫자리의 이목이 많았기때문에 별 방법이 없었다.

 

두영은 아무도 몰래 황제에게 상서했다.

곧 황제가 두영을 불렀다.

두영은 관부가 술에 취했던 사정과 그 일로 인해 관부가 주벌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아뢰었다.

황제가 그 말을 그럴듯 하게 여겨서 음식을 하사하고 말했다.

"그대가 태후께 가서 잘 변명해 보시오."

 

그래서 두영은 동조로 가서 관부의 좋은점을 칭찬하고 승상이 취중의 일을 빙자하여

다른 감정을 가지고 관부를 죄 주려한다고 역설 했다.

태후는 이번에는 전분을 불렀다.

전분은 관부의 횡포와 무도함과 오만방자함을 말한뒤 덧붙였다.

"천하는 다행히도 태평무사합니다.

그래서 저같은 사람이 황실의 외척으로나마 오늘의 지위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몸조심 하며 승상의 직분을 삼가 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것은 그저 음악과 견마와 장원.저택이 고작이며 아끼는것이 있다면 창우와 공장 정도입니다.

그런데 위기후와 관부는 밤낮으로 천하호걸들과 사귀며 뱃속으로 비방하고 마음속으로 헐뜯고

모반을 꾀하며 장락궁과 미앙궁을 쏘아보며 천하에 변란이라도 일어난다면

때를 틈타 공을 이뤄보려는 무리들입니다.

신은 두영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노리고있는지 알수 없습니다."

 

일이 점점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황제는 조신들을 불러모아 누구의 말이 옳은가 물었다.

대신들중 일부는 관부를 죽일정도의 일은 아니라 하고,

또 일부는 처음에 두영을 편들다가 나중에는 우물쭈물 했고,

나머지 신하들은 입장이 곤란하다 생각하여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답변하려 들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황제가 노하여 여러 대신들을 꾸짖었다.

"그대들은 평소 두영과 전분에대해 자주 언급하더니 오늘은 어찌 그리 위축되어 말을 못하시오?

그 꼴이 마치 멍에밑에 매인 망아지와 같이 눈치만 보고있으니

내 오늘 그대들을 이 두사람과 함께 목을 베어야겠소."

 

황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황제는 태후에게 가서 음식을 올리며 사죄했다.

태후는 사람을 시켜 조정에서의 논의를 모두 보고받고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묻지 않았다.

태후는 노하여 음식상을 옆으로 밀치며 말했다.

"내가 살아있는데도 내 동생을 저렇게 짓밟고 있으니

내가 죽고나면 아예 어육을 만들어 먹지 않겠소?

지금 황제가 이렇듯 건재한데도 이러하니 붕어하신 후에는 누구를 믿을수 있단 말이오?

황제가 사죄하고 물러나왔다.

 

조회가 파하고 물러나오면서 승상전분은 어사대부 한안국에게 화를 내었다.

"내 오늘 저자들을 해치워 버리려고 단단히 별렀는데

그대는 나를 도와주지 않고 어찌 애매한 소리만 하였소?"

한안국은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그러나 승상께서도 오늘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지는 못하셨습니다.

위기후가 승상을 헐뜯을때 승상께서는 당연히 폐하 앞에 관을 벗고 사죄하며

승상의 인수를 돌려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황제께서 승상의 말을 더 무겁게 여겼을 것이며 두영역시 부끄러워 스스로 자결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상께서는 위기후가 승상을 헐뜯자 승상역시 그를 헐뜯었으니

이는 마치 장삿꾼이나 어린아이들이 다투는것과 다를바가 없지 않습니까?

오늘 승상께서는 어른스러운데라고는 찾아볼수가 없었습니다."

 

승상전분은 크게 깨닫고 그길로 대궐로 돌아가서 한안국이 들려준 말대로 황제에게 사죄하였다.

그렇게 되자 결국 황제는 한안국을 불러 두영과 관부에게 죄가 있음을 문서로 작성하여 올리게 명하였다.

황제는 탄핵서가 올라오자 즉시로 형리에게 그 일을 맡겼다.

 

두영은 일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걸 깨달았다.

그때 효경제의 유조를 받아둔 사실을 기억해냈다.

ㅡ불편한 일이 생겼을때 언제든 상주할수있는 특권을 준다ㅡ

관부의 죄는 일족에 미쳤고 두영 역시 체포 되었다.

조신들 역시 황제에게 변명해주려는자가 없었으므로 일이 급박하게 되고 말았다.

두영은 옥으로 조카를 불러 유조문서를 찾아 황제께 상주토록 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두영은 즉시로 황제를 알현할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문제가 발생했다.

효경제가 썼다는 유조문서의 부본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그 부본이 없었다.

부본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조각일 뿐이었다.

불행히도 유조문서는 오직 두영의 가신이 봉인하여 집에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ㅡ위기후 두영은 선제의 조서를 위조했다.

그 죄는 기시에 해당한다.ㅡ

두영은 그렇게 공식적으로 탄핵 되었다.

 

원광5년.

관부와 그 일족이 논죄되고 처형 되었다.

위기후 두영은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중풍에 걸렸다.

그래서 두영은 단식하고 죽으려 했다.

그런데 황제가 두영을 죽일 뜻이 없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래서 두영은 다시 일어나 음식을 들고 병을 치료했다.

조정의 논의에서도 두영을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두영은 살아남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두영을 비방하는 말이 끊이지 않고 나돌았다.

좋지않은 소문만 황제의 귀로 들어갔다.

누군가 두영을 한사코 죽이려 하는계락이 있는듯 했다.

황제도 더이상 참지 못했다.

그해 12월 그믐에 논죄되어 두영은 위성에서 처형되고 기시 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듬해 봄 전분이 앓아 누웠다.

전분은 눈도 뜨지 못하고 그저<잘못했습니다.살려주십시오>리고 계속해서 헛소리를 외치기만 했다.

가족들이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점을치게 했더니 무당이 와서 보고 말했다.

"두영과 관부의 귀신이 붙어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며칠후에 전분은 죽고 말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회남왕 안 이 모반을 기도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그 전에 회남왕이 입조했을때 전분은 태위로 있었는데

유안을 패상까지 마중나가서 영접하며 이렇게 속삭였다.

"폐하께서는 아직 황태자를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황족중에 가장 현명한 분은 바로 대왕뿐이며 더구나 대왕께서는 고조의 친손자가 아니십니까?

만일 폐하께서 붕어하시면 제위에 오를사람은 대왕뿐이니 항상 자중자애 하십시오."

회남왕은 크게 기뻐하며 황금과 재물을 전분에게 후하게 보냈다.

그때의 사건이 뒤늦게 황제의 귀에 들어갔다.

 

황제는 사실 두영과 관부의 일이 있을때부터 전분을 올바른 인간으로는 보지 않았다.

다만 태후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전분의 편을 들어주고 그대로 두었던 것이었다.

그랬는데 회남왕과의 금품수수 사건을 듣게되자 황제는 울컥 화를 내었다.

"분하다.

전분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멸족의 벌을 내렸을텐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글의 말미에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ㅡ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은 모두 외척이었기 때문에 중용되었다.

관부는 한때 결사의 계책을 단행하였음으로 유명해 졌다.

 

위기후가 중용된것은 오초7국의 난이 계기가 되었고

무안후가 존귀해 진것은 일월이 동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기후는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했고,관부는 학문도 없는데다 불손했다.

이 두사람이 서로를 도우니 재앙이 생긴것이다.

 

무안후는 존귀한 지위를 믿고 권세를 좋아하여 한낱 술잔 하나로 원한을 품고

현능한 사람을 모함 하였다.

 

관부에 대한 노여움을 두영에게까지 미치고 자신의 명까지 재촉했으며

뭇사람의 존경은 받지 못하고 악평만 얻었으니 슬픈 일이다.

화 라는것은 반드시 그 까닭이 있는것이다.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으로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보았다.

위기후 두영은 오초칠국의난을 평정하고 그 권세가 지극히 높았다.

그의 지위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승상의 위치까지 올랐으나 두태후의 진노때문에 직을 잃고

야인이 되었으며 그 두태후마저 붕어하자 더없이 초라한 신세가 되었다.

외로운 처지의 두영은 비슷한 처지의 관부와 친교를 맺고 울분을 달랬으나

결국 무안후 전분과의 불화로 서로 시기하고 암투하여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젊은시절에는 현명하고 용맹하여 국가의 대란을 평정하고 명성이 자자했으나

만년에는 관부같은자와 어울리면서 조정의 분란만을 일으켰으니

두영의 인품이란 그저 별로 특별할것이 없으며

다만 황실의 외척으로 한때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 아닌가 한다.

다만 외로운 처지의 관부가 죄를 입어 죽음을 당하게 되었을때

두려워 하지 않고 홀로 관부를 위해 변명하였으니

그의 의리만큼은 나름 높이 사 줄만 하다 하겠다.

 

무안후 전분 역시 황실의 외척으로 약간의 글줄을 읽어 나름 현명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국가에 끼친 큰 공은 없고 오직 사사로운 원한만을 갚기 위해 조정에 피바람을 일으켰다.

황제를 섬기는 몸으로 회남왕에게 아부하여 딴생각을 품었으니

이러한 자를 어찌 충신이라 말할수 있겠는가?

결국 한나라 초기에도 능력이나 인품 보다는 황실과의 친.인척관계를 위주로 하여 벼슬을 주고

직위고하를 결정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저 씁슬한 웃음만이 나올 뿐이다.

사소한 원한으로  남을 비방하여 오로지 복수할 생각을 가졌으나 결국 자신의 말로조차 아름답지 못하였고

귀신의 손에 죽음을 당하였다 하니 이또한 우습기 그지 없다.

 

관부라 하는자에 이를것 같으면 더이상 논평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젊은시절 한때의 용맹으로 이름 높았으나

학문도 없이 그저 자기 고향에서 제 멋대로 행하고 살았으며

또한 술만 마시면 주사가 심하여 자기자신을 주체하지 못했으니

세상에서 이러한자를 군자라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요 근래에 국회와 정치권 일각에서 개헌논의가 부쩍 일기 시작했다.

 

우선 필자의 의견을 말하자면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 여러곳에 산적해 있으므로

언젠가는 헌법의 개정이 이뤄져야 할것이며 그 시기도 매우 시급하다는것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개헌이라 하는것이 국회가 법을 개정하고 국민투표로 완성되는것인데

지금의 이 국회가 헌법을 개정함에 있어서 국민을 위한 개헌을 할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말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지금이 이 국회가,

지금의 저 국회의원들이 어떠한 자 들인가?

저들이 오늘 알아본 두영이나 전분.또는 관부보다 나을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들은 국가나 국민을 위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장기 집권이나 재선,

또는 당내의 권력강화에만 뜻이 있는자들이다.

 

도대체 어느 면에서 저들이 우리 국민을 위한 헌법을 만들어 낼것이라 믿을수 있겠는가?

이는 도저히 바랄수 없는 일이다.

 

저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는 과정만 보아도 알수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것은 오로지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 범죄 당사자들을 처벌하고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는것 뿐인데도

정치인들은 여.야 할것없이 유가족과 국민들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거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해가 갈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니

이러한 정치인들을 믿고 앞으로 우리국민이 살아나갈 바탕이 될 헌법을 어찌 맡길수 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이번 19대 국회가 개헌을하는것에 강력히 반대하는 바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법을 만들것이라는 희망을 가질수 없을바에는

차라리 조금 아쉽더라도 개악을 저지하고 그대로 사는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이 뽑은 소위 선량" 이라 하는자들을 믿을수 없다는 자괴감에

탄식이 쏟아져 나옴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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