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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홀로 잔을 채워도 외롭지 않다
게시물ID : lovestory_901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05 08:37:2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수익봄밤

 

 

 

봄밤

꽃나무 아래서는 술이 붉다

꽃향기 자욱한 술잔이 붉다

따라 주는 이 없이 홀로 잔을 채워도

외롭지 않다절로 흥이 넘치는 밤







2.jpg

김기택바람 부는 날의 시

 

 

 

바람이 분다

바람에 감전된 나뭇잎들이 온몸을 떨자

나무 가득 쏴아 쏴아아

파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보자고

바람의 무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 보자고

작고 여린 이파리들이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실처럼 가는 나뭇잎 줄기에 끌려

아름드리 나무 거대한 기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다







3.jpg

구재기작은 짐승

 

 

 

도시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둑길을 걷는다

아침까치처럼 세상은 환하고

이슬 받은 풀잎처럼 햇살이 빛난다

닥친 말썽거리 이리저리 피하던 이야기와

턱없이 허튼 소리를 지껄이던 이야기

비로소 눈물처럼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비대발괄하여 겨우 차지한 목숨이

둑길을 걸을 때마다 부끄럽다

이제사 한 마리의 작은 짐승으로

풀을 뜯다 쓰러질 곳을 찾은 것 같다

살아서 말할 수 있는 소리 띄엄띄엄

남의 일에 헤살 놓아 지르던 소리 꿈질꿈질

바야흐로 둑길에는 서러운 꽃이 지고

꽃술을 스치던 바람마다 힘줄이 서고

다시 허리를 구부리지 아니하고

쭉 바르게 살아가리라 다짐하면서

입술을 깨무는 노래와 함께

두 다리로 당당하게 둑길을 걷는다







4.jpg

김규동무등산

 

 

 

한 몸이 되기도 전에

두 팔 벌려 어깨를 꼈다

흩어졌는가 하면

다시 모이고

모였다간 다시 흩어진다

높지도 얕지도 않게

그러나 모두는 평등하게

이 하늘 아래 뿌리박고 서서

이것을 지키기 위해

그처럼 오랜 세월 견디었구나







5.jpg

하종오슬픈 사색

 

 

 

몇날며칠 물끄러미 보았다

 

흙을 떠나 수반에 앉은 꽃가지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고

저 혼자 활짝 꽃봉오리를 피웠다가 시들어

죽어서야 땅으로 돌아갔다

 

그 앞을 스쳐갈 때는 누구나

무심하여도 아름다워졌으므로

뿌리 없이 떠나는 것도 뿌리 없이 돌아가는 것도

자기 뜻이 아닌 채로 꽃가지는 잠시 어여뻤다

 

창 밖에는 햇볕이 따뜻했다

물끄럼물끄럼 보던 나는 부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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