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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연어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 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 넘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노창선, 등(燈) 하나
어둠 속에 서 있다고
어둠이 될 줄 아나
따라온 발자욱이 어둠에 묻힌다고
어느 별처럼 스러질 줄 아나
하늘 저쪽 어디엔가
내 그리운 사람들 모여 산다지
그러나 나는 좀 더 걸어야 하리
누구는 새벽을 노래한다지만
초저녁이 아닌가
핏방울로 등불 켜고
홀로 걷는 이 밤길
서서 기다리는 이나
기다림을 맞으러 달려가는 이나
핏자욱 부비고 어둠을 부비고
그리운 사람들의
그리운 입맞춤
다시 등피를 닦으며
발부리에 채이는 작은 돌까지 캐내며
어둠 속에 서서 우리 어둠을 지워야 하리
채수영, 바람
눕힐수록 누워지는 맛에
바람은 오고 또 오지만
눕는 이도 한참 이골이 나면
대수롭지 않게 바람을 맞아
누워 버린다
일어나도 또 누워도
돌아오는 바람은 더욱 성깔 난 표정으로
산으로, 바다로, 논으로, 밭으로
길 없는 길을 만들면서
눕힐 수 있는 것을 눕혀 보아도
떨어진 꽃잎에선 다시
열매가 맺힌다
쓸어갈 것이 없는데
쓸어갈 일로 오는 바람은
가슴 깊이를 헤집어도
잎새 그리움이야 눕힐 수 없어, 바람은
머리를 앓는다
한여선, 별꽃풀
정월 밭둑에서 쥐불 놓는 아이들
그 떠들썩한 소리에
산마을 온통 흔들릴 때
살촉얼음 비집고 새봄 눈뜨는 풀뿌리
맑은 피가 돌기 시작하는
너는 새였다
시린 손끝 다죄면서
어둠의 굳은 살 긁고 또 뜯어내리는
아직도 서슬 푸른 동토(凍土)
그 굳어진 가슴 사이
뼈 속 마디마디 얼음 박히는
아픔 깊을수록 투명해지는
눈빛 감추는 새
아름드리 나무를 꺾는
광포한 계절에도 날고 싶은
그 꿈깃 부드럽게 다스리는 새
네 영혼이 끌어안고 뒹구는
갈대만의 땅 어두운 들녘
잡풀들 일어서는 날
키 낮은 풀잎 그 밑에 더 낮게
작은 꽃으로 피었다가
다소곳 곱포갠 깃 털며
또렷한 꽃불로 날아오르고 싶은
너는 새였다
김여정, 맑은 꽃
눈물보다 더 맑은 꽃이 있을까
4월은 꽃이 많은 계절
4월은 눈물이 많은 계절
맑은 꽃 속의 샘물에 뜨는 별
예사로이 보면 안 보이는 별
별이 안 보이는 눈에는
눈물이 없지
사람들은 꽃만 보고
눈물은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샘물만 보고
별은 보지 않는다
광장에는 꽃의 분수
4월의 눈물이 솟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