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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나오라
일즉 님을 여희고 이리저리 헤매이다
버리고 던진 목숨 이루 헬 수도 없다
웃음을 하기보다도 눈물 먼저 흐른다
다행히 아니 죽고 이 날을 다시 본다
낡은 터를 닦고 새 집을 이룩하자
손마다 연장을 들고 어서 바삐 나오라
이영도, 단란(團欒)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繡)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愛淸)에 삼간한 듯 둘렸다
박남수, 밤길
개구리 울음만 들리던 마을에
굵은 빗방울 성큼성큼 내리는 밤
머얼리 산턱 등불 두셋 외롭구나
이윽고 홀딱 지나간 번갯불에
능수버들이 선 개천가를 달리는 사나이가 어렸다
논둑이라도 끊어져 달려가는 길이나 아닐까
번갯불이 스러지자
마을은 비 내리는 속에 개구리 울음만 들렸다
홍성란, 황진이 별곡
신은 석양을 그리다가 망쳐 버렸다
앞뒷산 붓자락에
먹물 반쯤
잠겨 버린
이런 날
이른 별빛은
목 메이는 설움이다
아니, 서러운 건
별도 아닌
눈물도 아닌
시드는 꽃이다
팽팽한
자존이다
처절한 이 포복에도 까딱 않는 님이다
신달자, 섬
어둠이 내리면서
나의 섬은 밝아 왔다
어둠이 내리면서 나의 꿈은
별빛으로 내리고
하루의 심지를 끈 자리에
깨어나는 섬
가장 진실된 나무 하나 자라고 있는
나의 섬에 나는 돌아와 있었다
돌아와 있는 이 하나의 사실
눈이 찔리는 저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고 바라보는 신세계
나의 두 발은 초원 위를 걷고 있었다
꿈의 마른 잎을 따내면
안식의 꽃 한 송이 피어나고
순한 불빛이 영원처럼
섬을 둘러 왔다
돌아와 있는 이 하나의 현실
가슴 깊이 키운 새 한 마리
창공을 난다
몸 하나로
무한 공간을 받쳐 든
나의 섬
서서히 어둠이 가고
어둠따라 섬은 떠나고
하늘로 이어진 수천의 층계도 내려앉는다
섬이 지워지고
어제와 같이 아침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