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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택, 시간의 동공
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만 바다를 그리워한다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 말 한 마리
아주 먼 곳으로부터 걸어온 별들이 그 위를 비추면
창백한 호흡을 멈춘 새들만이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쉰다
꽃들이 어둠을 물리칠 때 스스럼없는
파도만이 욱신거림을 넘어간다
만리포 혹은 더 많은 높이에서 자신의 곡조를 힘없이
받아들이는 발자국, 가는 핏줄 속으로 잦아드는
금잔화, 생이 길쭉길쭉하게 자라 있어
언제든 배반할 수 있는 시간의 동공들
때때로 우리들은 자신 안에 너무 많은 자신을 가두고
북적거리고 있는 자신 때문에 잠이 휘다니
기억의 풍금 소리도 얇은 무늬의 떫은 목청도
저문 잔등에 서리는 소금기에 낯이 뜨겁다니
갈기털을 휘날리며 백사장을 뛰어가는 흰 말 한 마리
꽃들이 허리에서 긴 혁대를 끌러 바람의 등을 후려칠 때
그 숨결에 일어서는 자정의 달
곧이어 어디선가 제집을 찾아가는 개 한 마리
먼 곳으로부터 걸어온 별을 토하며
어슬렁어슬렁 떫은 잠 속을 걸어 들어간다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구광본, 강(江)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오랜 날이 지나서야 알았네
갈대가 눕고 다시 일어서는 세월
가을빛에 떠밀려 헤매기만 했네
한철 깃든 새들이 떠나고 나면
지는 해에도 쓸쓸해지기만 하고
얕은 물에도 휩싸이고 말아
혼자서는 건널 수 없는 것
이성선, 구름과 바람의 길
실수는 삶을 쓸쓸하게 한다
실패는 생(生) 전부를 외롭게 한다
구름은 늘 실수하고
바람은 언제나 실패한다
나는 구름과 바람의 길을 걷는다
물속을 들여다보면
구름은 항상 쓸쓸히 아름답고
바람은 온 밤을 갈대와 울며 지샌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길
구름과 바람의 길이 나의 길이다
장서언, 나무
가지에 피는 꽃이란 꽃들은
나무가 하는 사랑의 연습(練習)
떨어질 꽃들 떨어지고
이제 푸르른 잎새마다 저렇듯이 퍼렇게 사랑이 물들었으나
나무는 깊숙이 침묵(沈黙)하게 마련이오
불다 마는 것이 바람이라
시시(時時)로 부는 바람에 나무의 마음은 아하 안타까워
차라리 나무는 벼락을 쳐 달라 하오
체념(諦念) 속에 자라는 나무는 자꾸 퍼렇게 자라나기만 하고
참새 재작이는 고요한 아침이더니
오늘은 가는 비 내리는 오후(午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