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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꽃은 한없이 지기만 하더라
게시물ID : lovestory_901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6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01 09:12:27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조지훈향문(香紋)

 

 

 

성터 거닐다 주워 온 깨진 질그릇 하나

닦고 고이 닦아 열 오른 두 볼에 대어 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곳에 무르녹는 옛 향기라

질항아리에 곱게 그린 구름무늬가

금시라도 하늘로 피어날 듯 아련하다

 

눈감고 나래 펴는 향그러운 마음에

머언 그 옛날 할아버지 수염이

아주까리 등불에 비치어 자애롭다

 

꽃밭에 놓고 이슬 받아 책상에 올리면

그 밤 내 베갯머리에 옛날을 보리니

옛날을 봐도 내사 울지 않으련다







2.jpg

김종길낙화부(落花賦)

 

 

 

내 하루

꽃 핀 고원(故園)을 찾아오니

바람도 없이

깊어가는 낮이련만

꽃은 한없이 지기만 하더라

 

꽃그늘 사느란 돌 골라 앉아

꿈속처럼 고요히 노래를 가르는

내 어깨에

여인의 손길처럼 내려앉는 꽃잎

모자도 없이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에

꽃은 차례차례 와서

 

그러나

내 가슴속에 핀 꽃

외로이 피어난 그 꽃도 마저

나는 져 버리란다

길이길이 져 버리련다







3.jpg

신경림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어려서 나는 램프불 아래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전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4.jpg

장만영소쩍새

 

 

 

소쩍새들이 운다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뒷산에서도

앞산에서도

소쩍새들이 울고 있다

 

소쩍새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어머니가 나에게 일러 주시는 그 사이에도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소쩍새들은 목이 닳도록 울어 댄다

 

밤이 깊도록 울어 댄다

아아마을은

소쩍새 투성이다







5.jpg

서정윤바람이여

 

 

 

바람이고 싶어라

그저 지나가 버리는

이름을 정하지도 않고

슬픈 뒷모습도 없이

휙 하니 지나가 버리는 바람

 

아무나 만나면

그냥 손잡아 반갑고

잠시 같은 길을 가다가도

갈림길에서

눈짓으로 헤어질 수 있는

바람처럼 살고 싶어라

 

목숨을 거두는 어느 날

내 가진 어떤 것도 나의 것이 아니고

육체마저 벗어두고 떠날 때

허허로운 내 슬픈 의식의 끝에서

두 손 다 펴보이며 지나갈 수 있는

바람으로 살고 싶어라

 

너와 나의 삶이 향한 곳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슬픈 추억들 가슴에서 지우며

누구에게도 흔적 남기지 않는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어라

바람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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