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기고] 용산 열사들의 뜻을 기리며 / 백기완
지난밤 주먹이 떨려 잠을 못 잤습니다.
틀림없이 중학교 교실까지는 들어갔는데 내 책상과 걸상이 없는 거라.
그래서 “선생님, 내 책상과 걸상은요”
그랬는데 빌뱅이(거지)인 꼴새에 시끄럽다고 때려 실컷 맞다 깨어보니 베갯잇이 흠뻑 젖은 꿈.
몹시 속이 언짢아 지나가다 빌뱅이로 모는 녀석하고 붙었는데
싸울 줄을 몰라 실컷 주어터지던 그 모진 겨울이 겹쳐왔던 겁니다.
용산의 노여움은 이명박 정권의 만행입니다.
거기에는 나라 권력을 사병화한 범죄까지 더한 학살입니다.
이명박이 참된 대통령이라고 하면
“내가 어질지 못한 탓입니다. 용서해주세요” 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합니다.
그런 뉘우침을 받아냈어야 하는데도 그러질 못하고 우리 열사들을 땅에 묻어야 한다니
분해서 잠을 못 잔 겁니다.
우리 열사들이 올라간 데가 어디입니까.
오매 사층집, 거기서 총칼을 들었습니까. 기껏 주먹뿐인 다섯을 경찰관 1600명,
특공대와 용역깡패까지 2000명도 더 되는 병력이 흉기를 들고 때려잡았으니
그게 바로 폭도, 폭력 아닌가요.
그런데 거꾸로 우리 열사들을 폭도로 몰아온 건 이명박 정권이 거짓부리는
쥐망나니라는 갓대(증거)입니다.
예부터 거짓부리는 폭도 쥐망나니는 사람 사는 마을에서 쫓아낸다고 했으니
이명박 정권을 이 땅별(지구)에서 몰아냈어야 하는 건데
그리하기 앞서 우리 열사들을 땅에 묻어야 한다니 잠이 올 턱이 있겠어요?
이명박씨, 새해엔 국운이 열렸다고 했지요.
거짓으로 사람 잡는 나라의 밝은 새날이란 어떤 것입니까.
누구의 것이냐구요.
서민을 생각한다면서 죄를 지은 재벌은 사면복권하고 먹고살겠다고 바둥이는 사람들을
폭도라는 누명을 씌워 두 번 죽이는 것이 법치입니까.
서민을 돋고저(위한다) 한다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 울고 있는 빈소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모르는 채 철도노조 파업 바루(현장)에 나타나
파업 파괴를 손수 지휘하는 것도 대통령이 할 일입니까.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은 얼음구럭에서 떨고 있는데 길거리의 따슨 떡볶이가 목에 넘어가던가요.
서민 어쩌고 하면서 용산 만행은 끝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쌍용자동차노조, 공무원노조, 전교조를 마치 미친개처럼 때려잡고,
언론자유를 뿌리째 뭉개고,
4대강을 죽여 장사꾼 몇의 배만 불리려 들고,
반제 해방싸움으로 피맺힌 통일문제를 미제 냉전구조에 옭아매고,
서민경제를 해체해 미국과 국내 부패 재벌의 먹이로 거덜을 내고,
지난 예순 해 동안 피눈물로 쌓아온 민주주의의 갈마(역사)
그 민주 역량을 깡그리 죽이는 그 독재, 그 오만은 무엇이오.
오바마가 미국 경제의 제국주의적 본질로 하여 군사모험주의로 빠지고 있다면
이명박씨는 이참 한국적 자본축적의 한계에 따라 약탈적 폭력주의,
이명박 투(식)의 독재로 굴러떨어지고 있는 것이지 딴 게 아닙니다.
이를테면 미국 모랏돈(독점자본)과 국내 썩은 재벌들의 쫄목(이익)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겁니다.
안 됩니다.
우리 역사가 용납을 않는다니까.
가뭄이 들면 흘떼(강)는 마르기도 하나
진보의 갈마(역사)는 우당(전쟁)으로도 못 죽이는 거요.
독재자의 칼이 사람을 죽일 순 있어도
사람의 알록(실질) 그 꿈은 못 죽이는 거라니까.
그렇습니다. 이명박의 저 오만, 부패 독재는 한낱 허무주의입니다.
허무주의의 맨 마루인 폭력, 오만을 땅에 묻기 앞서
저 눈물겨운 열사들을 어찌 땅에 묻겠습니까.
그 뜻을 불씨로 일어나자고 다짐해야 합니다.
아, 이제 몇 날만 있으면 우리 설날이지요.
그날 따슨 떡국이라도 한 그릇씩 나누고 싶은데
아, 열사여! 열사여! 정말 원통합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출처: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