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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대의 그늘 전태일 청계피복노조
게시물ID : history_90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ss989
추천 : 3
조회수 : 50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12 02:35:32

 

 

 

977년 9월 9일 청계피복노조 목숨을 걸다 



이소선 여사의 장례식이 끝났다. 이제는 모든 짐 편안히 내려놓으시고 고운 모습의 아들을 얼싸안고서 지난 세월 동안 쟁여져 온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고 계시리라. 아마 그 이야기의 시작은 아들 전태일이 숨을 거둔 순간부터일 것이다. 이소선 여사는 8개항의 요구조건을 내세우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 요구 사항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노조결성 지원. 



당국이 가장 난색을 표한 조항이 이 노조 결성 지원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나 혼자라도 내 아들 시체를 토막내서 치마에 싸서 묻는 한이 있더라도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 장례를 치룰 수 없다."며 푸르스름한 결기를 발하는 어머니 앞에서 당국이 두 손을 들었다. 노동청장이 빈소로 찾아와 요구 조건 수락을 약속한 것이다. 청계피복노조는 그렇게 생겨난다. 가입조합원 560명의 청계피복노조가 첫 고동을 울린 것은 전태일이 죽은 지 2주 후의 일이었다. "내가 죽으면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캄캄한데 뚫리면..... 그걸 조금씩 넓혀서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기도(氣道) 막혀가는 입으로 피를 뱉아 가면서 남긴 아들의 말을 되새기면서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과 바꾼 노조의 고문이 된다. 



그 슬펐던 해로부터 7년이 지났다. 전태일이 일기에서 그렇게 갈구했던 '대학생 친구' 중 하나인 장기표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검찰이 말같지도 않은 논리로 장기표를 공격할 때 이소선이 외친다. "질문이 지랄같으니까 말을 안하는 거 아니야?" 판사가 퇴정을 명령하자 이소선은 판사에게도 퍼부어댔다. "부모들이 소 팔고, 논 팔아 공부 가르쳐 놨더니 이 따위로밖에 재판을 못하냐." 이소선은 법정모독죄로 구속된다. 



당국은 이소선 개인에 머물지 않고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청계피복노조에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권익을 규정한 노동법을 배우고, 각종 소모임을 통해 친목과 연대를 도모하던 노동교실을 강제로 폐쇄시킨 것이다 평화 시장 곳곳에 부르쥔 주먹같은 글씨의 선언문이 나붙는다. "저들은 제 2의 전태일을 요구한다....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9월 9일 오후 1시 30분. 조합원 40여 명이 버티던 노동교실 3층과 4층으로 경찰이 진입한다. 



말 그대로 결사적인 싸움이었다. 형광등의 유리를 집어던지고 책상을 부숴 만든 나무 조각을 휘두르면서 경찰에 맞섰지만 중과부적에다가 훈련된 병력을 당할 수는 없었다. 노동자 민종덕이 창틀에 올라섰다. "물러가지 않으면 떨어져 죽겠다." 이럴 때 한 치라도 아랑곳한다면 대한민국 경찰 자격이 없다. 기동대는 더 악착같이 달려들었고 비명과 절규가 엇갈리는 찰나 민종덕은 3층에서 몸을 던진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손목을 유리로 그어 교실 안이 피투성이가 되고, 같이 죽자고 휘발유를 바닥에 뿌린 뒤에야 경찰은 물러났다. 



"이소선 어머니를 모시고 와라." 노동자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중부경찰서장은 "곧 모시고 올 테니 기다려라"고 회유했다. 그러나 이소선 여사가 돌아올리는 만무했다. 한참의 대치 중,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이 갑자기 창문으로 내닫는다. 창밖으로 몸을 던진 순간 필사적으로 내뻗은 손들에게 그 다리가 잡혔다. 머리는 땅으로 향하고 다리는 이를 악물고 버티는 동료들의 손에 휘어잡힌 채 전순옥이 울부짖는다. "놔라! 죽게 해 줘!" 한 청년이 그를 끌어올려 골방에 가두어 버릴 때까지 전순옥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머리와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경찰은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을 모두 받아들일 것이며 이 사건으로 처벌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할복과 부상으로 피를 흘린 동료들의 건강이 염려된 노동자들은 그 믿기지 않는 약속을 믿어 보기로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내려가자마자 연행되어 중부경찰서 지하실로 끌려간다. 그들 가운데는 13,14살의 시다들도 있었다. 임미경(당시 14세)는 미성년자로서 형사 처벌이 면제되었으나 유신 정권은 주민등록번호 조작까지 해 가며 그녀를 구속시킨다. 



얘기하다 보니 먼 나라 이야기 같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그때에도 태반의 사람들은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에게서 파업으로 인한 손해 배상울 하라며 조원 집에 들이닥쳐 가재도구를 압류하고 경매에 부쳤던 재능교육, 열 댓 명의 사람을 차로 깔아뭉갰던 유성기업, 직원들 뺨을 슬리퍼로 때리고 다녔던 사장놈이 포진한 피죤 등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전태일 시대 못지않게 암담하지만 눈여겨보는 이는 그때처럼 적다. 1977년 9월 9일의 전순옥처럼 창밖에 매달린 사람들은 지금도 많다. 악착같이 그 발목을 부여잡은 손들의 힘은 빠져 가고, 무관심이라는 이름의 중력이 그들을 계속 땅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도 같다

 

 

 

출처

http://nasanha.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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