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마초는 듣고 있고, 그녀는 말한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있어요. 불륜은 아니구요. 사랑하는 사이에요. 육체적인 관계는 맺지도 않았고 맺고 싶지도 않아요......" "......" "근데 이 남자는 만날 때마다 자기 집사람 이야기를 해요. 오늘 저녁 같이 먹기로 했다, 내일은 같이 어디로 갈 거다......" "......" "그래서 만날 때마다 싸워요. 근데 듣기 싫다고 해도 계속해요. 어떤 때는 전화를 해서 자기 집사람하고 어디를 가는데 저보고 그 동네를 잘 아니까 맛집을 소개해 달래요......" "......" "그리고 나하고 만나고 나면 심장이 굳는 것 같다고 해요......" 이 대목에서 그녀는 목이 살짝 잠긴다. 낭만마초는 이미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솟구치는 희열을 주체하기 힘들다. 이 여자야말로 세상에 다시 없을 진귀한 캐릭터가 아닌가? 그녀를 제대로 묘사하고, 표현할 수만 있다면 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내색해서는 안될 일이다. 일단 아직은 시간을 더 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지매 직업이 먼기요?" "왜 그걸 알아야 돼요?" "아따, 이 아지매가 깝깝하네! 의사가 필요하다 카모 알려주는 거지, 환자가 먼 말이 많노요?" "아니, 제가 환자인가요?" 그녀는 은근히 반발심이 생긴다. 이건 또 무슨 흰소린가? "꼭 어디가 빠사진 사람마 환자요? 마음이 빠사져도 환자요. 아지매는 그 개자슥땜에 상처받았잖아. 그러니 환자 아니오!" "뭐, 개자식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럼 개자슥을 개자슥이라 카지 개님이라 카까, 이 냥반아!"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나 절때로 가만 있지 않겠어요!" 그녀는 거칠게 통화를 끝낸다. 낭만마초는 웃는다. 순대 옆풀때기 째지는 소리하고 자빠라졌네! 가시나야, 니가 가만 안 있으모 우짤 낀데. 니 남편한테 이르기라도 할 끼가? 가시나 니가 전화 안하나 함 보자. 그녀로서도 낭만마초를 단죄(?)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 남자때문에 이렇게 흥분할 때가 아니었다. 그가 마음에 안들어서 상담까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건다. 여자목소리의 기계음으로 안내멘트가 다시 흘러나온다.
각종 연애문제상담소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칠천 구백 삼십 사번째, 칠천, 구백, 삼십, 사번째 접속하시는 고객님...... ....... 어떤 경우에라도 환불은 불가합니다.
이런 사기꾼! 그녀는 속으로 낭만마초를 향해 욕을 퍼붓는다. 중간에 안내멘트를 끊을 어떤 방법도 없었으며, 역시 칠천 구백 삼십 사번째 고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낭만마초로부터 뾰족한 해결책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1번을 누르고 낭만마초는 말한다. "상담소장이라요. 세상에서 젤로 편한 자세로 말씀하이소." 전화번호가 떠서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인데도 능청을 부리는 낭만마초를 가까이에 있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다. 고객 숫자 속이는 건 사기 아니냐고 욕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어차피 그런 시간도 결국은 자기가 돈을 지불해야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빨리 조언을 듣고 끝내고 싶었다. "그래, 어떻게 생각하세요?" "머를요?" "지금까지 다 이야기 들었잖아요." "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소." "야, 이 사기꾼아아!" 그녀는 제대로 폭발하고 만다. 이건 시간을 늘리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이 아지매 진짜로 무식하네. 선후설명도 제대로 없이 이기 무신 개떡같은 짓꺼리고? 츠암 나!" "교수인 내보고 무식하다고오?" 아뿔싸! 고함을 지르고 난 그녀는 자기 입을 손으로 친다.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