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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남자......
게시물ID : lovestory_900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뎀벼
추천 : 2
조회수 : 6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5/22 01:18:59
남자..

어려서 남자는 악동(惡童)이었다.
위로 3명의 건장한 형과,
아래로는 말 잘듣는 동생..

동네어귀에서 덕배네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마을사람들이 골치아픈 아들 5형제 집이라며,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단다.

조금이라도 맘에 안들면 난동을 부렸단다.
호박을 넝굴채 짤라버리고,
원두막에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다 익은 벼의 머리를 싹둑싹둑 베었단다.

국민학교 다닐때, 전쟁이 터졌다.
제일 큰형님이 경찰이어서,
식구 모두가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할뻔 했다.
요행히 평소 친분있던 막둥이네가
볏짚사이에 숨겨줘서 목숨을 부지했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하얀 제복에 폼나는 진주 앞바다의 멋장이 였다.
언제나 호기롭게 술마시며,
인기좋은 호남아 였단다.

우연히 마산 변두리의 빵집에서,
계산대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리고 둘은 결혼을 했단다.
그때의 나이 남자는 27, 여자는 20

해군을 마치고 공무원으로 일했다.
큰딸을 낳았다.
둘째딸을 낳았다. 그리고 콧날이 오똑한 아들을 낳았다.

공무원으로 알게된 사람과 같이 사업을 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모았다.
그러나, 곧 실패했단다. 사람을 너무 믿었던 고로..
34살때의 일이었단다.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큰형의 도움으로 재기할수 있었다.
그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들을 한명 더 낳았다.
자신을 닮은 순둥이 아들을...

부산에서 큰 돈을 모았다.
400평이 넘는 집과 최고급 차와 이쁜 아내와
부러울것 없는 4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는 더이상 부러울것이 없었다.
그의 나이 40세때였다.

박정희가 죽고 동명목재 강석진이 넘어가고,
모든 수금길은 막혔다. 2번째 부도. 재기할수 없는....

자식들은 자라기 시작했다.
큰딸은 집을 뛰쳐나가 자신의 인생을 개척했다.
약간은 호기롭지만 성실한 남자를 만났다.

세월은 어느새 20년이란 시간을 잡아먹었다.
사업할때의 폭음, 폭식으로
그에게는 당뇨병이 생겼다.

80키로의 몸무게가 지금은 50키로가 조금 넘는 몸으로,,
갖가지 병이 그를 덮친다.
얼마전의 뇌출혈로 오른쪽 몸의 기동이 어렵다.
그의 사랑스런 아내는 하나님에게 모든것을 귀의했다.
일주일에 7일을 교회에서 산다. 이제 그녀가 밉다.

그의 큰아들은 말이 없다.
집에서는 말이 없다.
희로애락에 대해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큰아들은 자신의 뒷모습 만큼이나 보기힘든 존재였다.

그는 늙었다.
자신의 친구는 하루종일 잡음을 쏟아내는 TV 뿐이다.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으면, 
하루 세번, 며느리가 방문을 열고, 식사시간을 알릴뿐이다.
식구들의 얼굴이 잘 안 보인단다.
이제 당뇨병의 말기로,,눈이 잘 안 보인단다.

그는 늙었다.
이제는 아무도 아무도 자신의 과거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목소리 큰 큰딸도, 멀리 서울 사는 작은딸도,,
말없는 큰아들도. 목사가 되려는 작은 아들도..
아무도 그에게 살듯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늙은 남자.....

그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다.
나는 그에게 유달리 말이 없는 큰아들이고......



2000. 7. 12 이제야 그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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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연히 낡은 외장하드를 정리하다 우연히 20년전 써놓은 내 넋두리를 보았습니다.
저 글을 쓰고나서 5년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요.

이제는 저 늙은 남자의 나이를 쫓아가는 남자가 되어버린 내 자신을 돌아보며...
부자간에 있어 시간의 흐름이란
DNA의 단순한 비슷함만으로 설명할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음을 느낍니다.

잠이 안오는 밤은 이렇게 긴데...
왜이리 20년의 세월은 쏜살같을까요.....

나도 이제 서서히 늙은 남자가 되어갑니다.... 




..... 2020. 5. 22  다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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