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홍신선, 연탄불을 갈며
컨테이너 간이함바집 뒤 공터에서
연소 막 끝난 헌 연탄재 치석 떼듯 떼어버리고
윗 것 밑으로 내려놓고
십구공탄 새 것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하나하나 생식기 맞춰 넣고 아궁이 불문 열어두면
머지않아
자웅이체가 서로 받아주고 스며들어
한통속으로 엉겨 붙듯
연탄 두 장 골격으로 활활 타오르리라
둥근 몸피 속속들이 푸른 불길 기어 나와
단세포 목숨처럼 탄구멍마다 솟구치리라 꿈틀대리라
왜 통합이고 통일인가
연탄불 신새벽녘 갈아보면 모처럼 너희도 안다
후끈후끈 단 무솥 안에서
더 요란스럽게 끓어 넘치는
뭇 사설의 뒷모습들
이지엽, 해남에서 온 편지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동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 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조정숙, 친정
나 가끔 친정으로 돌아가면
금세 엄마의 어린 딸이 되어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몸도 마음도 녹신녹신해져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한 일들
그만 가마득해지고
길을 가다 지나쳐 만난 사람처럼
남편 얼굴도 서먹서먹해져서
엄마 손에서 익은 물김치
호록호록 떠먹어가며 밤새도록
친구 같은 수다를 떨었네
엄마도 참, 고생이 많수
서로 마음을 만지작거리다가
니,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 한 줄 아나
좀 더 살아봐라 내 맘 알끼다
엄마를 관통한 바람이
목적도 없으면서
천천히 나에게 불어오는
내 속엔 작은 엄마가 있어서
가는 허리가 자꾸 허청거린다
노혜경, 슬퍼할 권리
슬퍼할 권리를 되찾고 싶어
잔잔하게 눈물 흘릴 권리 하며
많은 위로를 받으며 흐느껴 울 권리
핑핑 코를 풀어대며 통곡할 권리
지나친 욕심일까
그러나 울어 보지 못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아니야 울고 싶은 마음조차 먹지 못하고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마련하여
눈물 나는 영화를 보러 가서는
남의 슬픔을 빙자하여 실컷 실컷 울고 오는
추석날의 기쁨
고작 남의 울음에 위탁한 울음
하도 오래 살았더니 울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그러니 누가 나를 좀 안아다오
그 가슴을 가리개 삼아 남의 눈물을 숨기고
죽은 듯이 좀 울어 보게
권경업, 이슬을 낚는 거미는 배가 고프다
아침 산책길 숲 속 거미줄에
이슬이 걸려 있다
다들 눈부셔라, 눈부셔라 하지만
이슬이 마를 동안
눈먼 먹잇감도 걸리지 않을
다 드러나 버린 거미줄
안개 낀 삶의 막막함에, 때로는
밥보다 시가 더 필요한 날도 있겠지만
허공의 어둠을 훑어 이슬을 낚으면
틀림없이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