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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엽서, 엽서
단 두 번쯤이었던가,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지요
그것도 그저 밥을 먹었을 뿐
그것도 벌써 일 년 혹은 이 년 전일까요
내 이름이나 알까, 그게 다였으니 모르는 사람이나 진배없지요
그러나 가끔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때
왠지 저절로 꺼내지곤 하죠
가령 이런 이국 하늘 밑에서 좋은 그림엽서를 보았을 때
우표만큼의 관심도 내게 없을 사람을
이렇게 편안히 멀리 있다는 이유로 더더욱 상처의 불안도 없이
마치 애인인 양 그립다고 받아들여진 양 쓰지요
당신, 끝내 자신이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영영 모르겠지요
몇 자 적다 이 사랑 내 마음대로 찢어
처음 본 저 강에 버릴 테니까요
불쌍한 당신, 버림받은 것도 모르고 밥을 우물대고 있겠죠
나도 혼자 밥을 먹다 외로워지면 생각해요
나 몰래 나를 꺼내보고는 하는 사람도 혹 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복할 리도 혹 있을까 말예요
윤주영, 권태기
시에
등줄기 서늘한 바람도 없고
시름 깊은 삶도 없고
따뜻한 시선은 더더욱 없고
전신주에서 전신주까지 흐르는 전기도 없고
좌심방 우심실 뛰는 것도 없고
칼같이 이는 증오도 없고
아, 시의 늘어진 어깨
건조무미해져 간다
이하석, 폐교
어둠 속 높이 선 이순진은 전신이 파랗다
온통 바다 아래 잠긴 듯하다
폐교 운동장 침범하는 학교 앞 새로 핀 유흥가 불빛 때문인가
어떤 밤엔 빨갛게 달아오를 때도 있다
운동장 안 넘보는 건 취한 불빛뿐만 아니다
누가 애완하다 버린 짐승들조차 동네 떠나지 않고
그의 어둠 뒤지며 노략질한다
밤의 폐교 안은 내란으로 내몰린 바다처럼 들떠 있다
아이들 소리 하나하나 풍선처럼 떠올라 사라진 하늘엔
별들만 왁자지껄하니, 은바늘 쌤통 뾰루지들 돋아 있다
손정휴, 무명 두 필 잠깨다
시집올 때 할머니가
혼수에 넣어준 무명 두 필
장롱 속 까맣게 잠자다
오늘에야 반갑게 찾아진다
유행의 덧없는 흐름 속
가끔 손길 닿아도 몰랐던
목화 다래 순 같은 숨결이
물레 돌리던 할머니 손 맛 벤 무게로
이제야 저고리 섶에 지긋이 담겨오는데
뻐꾹새 소리로 익어가던 노을빛 같은 것
별빛 싣고 가던 여울 같은 것들이
씨줄 날줄로
지금 온 몸에서 잠깨어 저려오는데
무명치마에 목화꽃 피어놓던
그때 할머니 미소가
오늘에사 환하다
고미숙, 돌탑
누구의 소원일까
차곡차곡 쌓여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돌은
불안한 소원이 되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돌은
소원을 받쳐주는 소원이 되어
탑을 이루고 있다
소원이 깃들어 있지 않는
돌도 한 개 끼어 있다
돌의 마음이 무거울까봐
아무런 소원 없이
내가 올려놓은
납작 돌 한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