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우리가 죽음에 인도되는 건 공짜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900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5/18 09:17:26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손제섭옛집

 

 

 

돌확으로 눌러둔 한 사람이 있어서 오는 길이 멀었다

늙은 감나무 그늘은 여전한데

누군가 휘적휘적 걸어 나오는듯한 환각

물고랑이 나 있는 마당을 몇 발짝 걷는다

이마를 덮는 풀

담장 밑으로 분꽃 몇 포기

틈새가 벌어진 마룻장에 사지를 뻗치고 눕는다

이내 처연해지고

눈두덩이 붉어지는데

잠시무언가 나무라는 귀에 익은 잔소리들

맨낯을 감싸주던 곤한 손

나지막이 달래주던 말

한때는 닦고 또 닦았던 옛집 마루에

어둠이 들어선다

등허리가 점점 써늘해지고 껌껌해진

한참 뒤

돌확 밑에 숨겨둔 한 사람

여직 기척이 없어

눈 꾹 감고 혼자 돌아가는 길이 또 무거울 것이다







2.jpg

이애경천원역

 

 

 

호남선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천원역과 만나네

노량역 지나 송정리역 다음 나주역에서 내려야 하지만

나는 천원역에서 슬쩍 내리고 싶네

천 원짜리 지폐는 애들도 시큰둥 한다는데

차창 밖 들녘은 천 원이면 뭐든 살 수 있다고

나풀나풀 유혹하고

뻥튀기처럼 부푼 행복이 숨어있을 것 같기도 한

가난한 나는 그만 이 역에서 내리고 싶네

천 원짜리 밭뙈기나 부쳐 먹고

들녘 하늘에 매달린 노을이나 아침 햇살 주워 먹으며

저 자라는 청보리처럼 살고 싶네

바람을 지집 삼아 옆구리에 끼고

덤으로 준다는 별빛이나 달빛이며를

평생 이웃하며 희희낙락 살고 싶네

나부끼는 바람과 한 바탕 몸을 썩고 나면

내 몸도 그만 투명한 날개 한 쌍 달지 않겠나 싶은 게

뚝뚝 번지는 석양 아래 고단한 날개를 접고

긴 잠에 들면

내 생 언저리가 더 없이 부드럽겠다 싶은 게

자꾸만 입 안 가득 초록물이 도는 것이네







3.jpg

김미선비 갠 항구의 거리

 

 

 

비 갠 오후 통영 항구의 거리는

비린내 먼저 풍기고 흰 페인트가 눈부시다

간물 씻어 내린 바다에 푸른 물결 넘실대면

한낮의 갈매기는 은빛날개 반짝이며

바다를 물고 허공에서 끼룩거린다

 

비 그치고 물비린내 번지는 오후

설레는 가슴 사랑을 잠재울 수 없으리

생생한 창밖 저 항구로 달려가

철썩거리며 밀려오는 물결 속

소용돌이 거쳐 구름다리 건너간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미륵산에 올라

홍백 깃발을 들고 망을 보다가

멸치 떼가 몰려오면

소리소리 치며 붉은 깃발을 흔들어

연안에서 먼 바다로 전파선을 보낸다







4.jpg

최승호에스컬레이터

 

 

 

우리가 죽음에 인도되는 건 공짜이다

부채가 큰 부자이거나

부채도 없이 가난한 사람이거나

천천히 혹은 빠르게 죽음에 인도되기까지

올라가고 또 내려오며

펼쳐지고 다시 접히는 계단들

우리가 죽음에 인도되는 건 공짜이다

모자를 쓰고 우산을 든

궁둥이가 큰 바지 입은 사람의 뒷모습을

밑에서 쳐다보거나

고개돌려 저 밑계단의 태아들을 굽어보거나

우리가 죽음에 인도되는 건 공짜이다

서두를게 하나도 없다 저승열차는

늦는 법이 없다막차가 없다







5.jpg

이재무저 못된 것들

 

 

 

저 환장하게 빛나는 햇살

나를 꼬드기네

어깨에 둘러멘 가방 그만 내려놓고

오는 차 아무거나 잡아타라네

저 도화지처럼 푸르고 하얗고 높은

하늘 나를 충동질하네

멀쩡한 아내 버리고 젊은 새 여자 얻어

살림을 차려보라네

저 못된 것들 좀 보소

흐르는 냇물 시켜

가지 밖으로 얼굴 내민 연초록 시켜

지갑 속 명함을 버리라네

기어이 문제아가 되라 하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