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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연, 나는 달빛 신민이었다
대구광역시 불로동에는 고분군이 있고
그 안에는 달빛 왕국이 있다
삼국시대 즈음
확실하지 않는 어느 고대부터 지금까지
달을 숭배하는 그 곳은
달 모양으로 빚은 수백 채의 봉분들
또 집집마다 태기가 있거나 만삭이어서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내가 숨이 먼저 차는 그 곳은
기이하게도 생리혈 비치는 날인데
이런 몸끌림의 난감함도 잠시
이미 나는 달빛 신민이었던 것처럼
복식호흡은 물론이고 내 몸 구석구석
내가 모르는 어느 전생의 슬픔까지 적시는
무장무장한 달빛
결국 나는 만월로 둥둥 떠
하염없이 고요하거나 깊어지는 것이다
이런 다음날은 어김없이
고분 한 채가 사라지거나 늘어나는 것을
달빛을 밴 나만 알고 있다
이재무, 소리에 업히다
자지러지는 풀벌레울음의 들것에 실려
둥둥, 풀밭을 떠내려간다
장대비로 쏟아지는 매미울음의 수레에 실려
후끈 달아오른 자갈길 시원하게 내려간다
젖어 무거운 생 가볍게 업고 가는
소리의 뒷등 멀찍이 바라다본다
김운향, 여자
나비들은 저마다
꿀만 탐하다가 날아갔다
꽃은 날아가려다 말고
이젠 아름다운 별만을 쳐다본다
그립다 외롭다 말 못하고
홀로 바람 속의 말씀만을 듣는다
오늘도 늑대 울음소리 들리는 이 벌판에서
꽃은 그래도 아름다운 별의 말씀만을 듣는다
김양수, 솟대
그리움보다 더 깊은 어둠이 있을까
기다림보다 더한 목마름이 있을까
외로움보다 더 긴 메아리가 있을까
나는 오늘도
바람의 끝을 따라
투명한 솟대를 돋운다
류영구, 그렇지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늦게까지 전도서를 읽다가
잠이 들었다
박꽃이 하얗게 달빛 먹고 피어있는
초가지붕 이어진 골목길을
누군가 옆에서 내 손을 꼬옥 잡고
함께 걸어갔다
창밖 새벽 새소리가 나를 깨웠다
꿈이었다
그렇지만 청아한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