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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남, 친구
오래간만에 대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니
모두 다 대학생이 된다
삼십 년 전 그날로 돌아가
대학생처럼 낄낄거린다
얼마 전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서는
모두가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이 든 게 아니다
대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잠시 헤어져 있었을 뿐
중학교 때나 국민학교 때 친구들과 만나면
나는 금세 코흘리개 어린애가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더 먼 옛날로 돌아가
나 태어나기 전의 친구들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어린 나무가 될 것이다
나뭇잎에 앉아 놀던 순한 바람이 될 것이다
아무런 걱정이 없던
그 오랜 날들의 친구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김윤현, 봄맞이꽃
추운 겨울이 있어 꽃은 더 아름답게 피고
줄기가 솔잎처럼 가늘어도 꽃을 피울 수 있다며
작은 꽃을 나지막하게라도 피우면
세상은 또 별처럼 반짝거릴 것이라며
많다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높다고 귀한 것은 더욱 아닐 것이라며
나로 인하여 누군가 한 사람이
봄을 화사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고 사는 보람이 아니겠느냐고
귀여운 꽃으로 말하는 봄맞이꽃
고독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며
풍부한 삶을 바라기보다
풍요를 누리는 봄맞이꽃처럼 살고 싶다
이성선, 도반(道伴)
벽에 걸어 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 진 석양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동행자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았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한수재, 목요일 늦은 밤 2호선
한참을 돌고 돌다 보면
서는 곳마다
그곳이 그곳인 듯
열리는 문이 다
집으로 가는 문 같은
목요일은 인생의 사십
가던 방향을 다시 보는 때
늘 다니던 길이 낯설어지는 때
서둘러 내리고 싶다가도 낯선 길이 두려워
어디로 어떻게 풀리든 기대고 싶은 때다
얼굴을 기대고
이마를 기대고
어깨를 기댄 사람들
내 집 식구 같이
털어 주고 싶은 사람들
계단 같은 사람들
그렇게 기댄 채
같은 길
기껏 등을 기대고 곤히 잠들
몇 평 안 되는 바닥에 닿기 위해
그렇게 올라가는 것일까
결국 기어가는 것일까
어둠에 덮인
계단 앞에 서면
계단이 사람처럼 보여
숨을 몰아쉬면
딱딱한 곳이 아니라도
사방이 아프다
민병도, 동그라미
사는 일 힘겨울 땐
동그라미를 그려보자
아직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있어
비워서 저를 채우는 빈 들을 만날 것이다
못다 부른 노래도
끓는 피도 재워야 하리
물소리에 길을 묻고
지는 꽃에 때를 물어
마침내 처음 그 자리
홀로 돌아오는 길
세상은 안과 밖으로 제 몸을 나누지만
먼 길을 돌아올수록 넓어지는 영토여
사는 일 힘에 부치면
낯선 길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