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동계올림픽'으로 불리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산파 역할을 했던 김진선 조직위원회 위원장이 21일 전격 사퇴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은 지난주부터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2011년 이후 조직위를 이끌었고 연임에 성공해 아직 임기가 1년 3개월이나 남은 그가 이렇게 사퇴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김진선 위원장은 '사임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동계올림픽 준비가 후반기로 접어든 전환기적 상황"이라며 "새로운 리더십과 보강된 시스템에 의해 앞으로의 과제에 대처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물러나기로 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강원도지사 시절부터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고 이후 유치 특임대사,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열정을 불태워온 김 위원장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물러나게 된 이유치고는 너무 평범하다는 것이 체육계의 평가입니다. 김진선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실을 떠나기 10분 전 그의 방에서 단독으로 만나 몇 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1. 사퇴하게 된 진짜 배경은 무엇입니까?
=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유치한 지 3년이 넘었고 이제 3년 더 남았습니다. 임기는 내년 10월까지이지만 지금이 적기라 생각했습니다.
2. 마케팅 부진이 사퇴의 원인이 됐다는 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말도 안 되는 억측입니다. 최근 KT와 통신부문, 영원아웃도어와 스포츠의류업체 후원 계약을 맺었고 경기장 건설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올림픽 준비가 지지부진해 사임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3. 감사원 감사로 인해 사퇴하게 됐다는 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조직위원회에 대한 감사가 있었지만 별로 나온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닙니다.
극도로 말을 아낀 김진선 위원장의 표정을 세 단어로 요약하면 '착잡', '침울', 그리고 '허탈'이었습니다. 스포츠기자를 20년 이상 한 저의 직감으로는 결코 자진 사퇴하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흔히 '자의반 타의반'이란 말을 쓰는데 이번엔 순전히 제 주관적 느낌으로는 '자의1%, 타의99%'였습니다.
김진선 조직위원장의 전격 사퇴를 보는 시각은 크게 2가지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은 결국 감사원 감사가 모든 사태의 발단이 됐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업무 성과, 조직위 내부 문제, 또는 다른 안건으로 권력 실세의 눈밖에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원 감사를 동원해 사퇴하라는 시그널을 보냈는데 정작 본인이 아니라 문동후 제2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이 물러나자 최근 여러가지 방법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는 추론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에서는 "김 위원장이 능력의 한계를 느껴 사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오랫동안 실무를 챙겨왔던 문동후 씨가 사임한 데다 강원도와의 관계, 정부와의 관계, 그리고 마케팅에서 역량 부족을 실감해 스스로 물러났다는 설명입니다. 평창조직위원회를 오래 취재해왔던 저의 판단으로는 문체부의 설명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강원도지사를 세 번이나 지냈고 올림픽 유치를 세 차례나 진두지휘한 김진선 위원장만큼 동계올림픽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충분한 인사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김진선 위원장은 물러난 게 아니라 쫓겨난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아무튼 조직위원회의 투톱이었던 김진선-문동후 두 사람이 일제히 사퇴함으로써 조직위는 당분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형식상 위원 총회에서 선출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낙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임 위원장으로는 강원도 출신인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데 고령(78세)인데다 박대통령의 이종사촌 형부란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