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놈이 '모나코'에 처음으로 일하러 가는 날은 내가 더 들떠 있었다. 놈이 DJ를 시작하는 기념으로 내가 1등으로 리퀘스트를 날리는 역사를 만들어야 되기도 했지만, 잘하면 나도 '모나코'의 DJ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우리는 삼십분이나 일찍 '모나코'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미 재우형과 유정이 누나 외에 여섯 명의 '모나코 죽순이'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들은 유정이 누나의 친구들이었고, 정태놈을 보려고 온 것이었다. 한 마디로 할일 지지리도 없는, 노처녀 문턱에 들어선 처녀들이었다.
내가 인사를 하고, 정태놈이 나를 소개하자 재우형이 말했다.
"근데 일마 이거는 학교는 안 가고 여기는 와 왔는데?"
"나도 디제이 되고 싶어가요!"
"안돼, 임마. 니는 학생 아이가 임마."
내 대답에 재우형이 웃었다. 기대했던 것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내가 바란 건 즉석 오디션이었던 것이다. 재우형에게 '학교를 때려치우면 안되느냐?' 묻고 싶었지만 너무 불량스러워 보일까봐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기회란 또 있는 법이니까.
유정이 누나가 우리에게 커피를 갖다 주었다.
무포여고 퀸이었다는ㅡ지금은 더 눈부시게 예쁜 승미 누나가 나를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딱 봐도 대장 포스였다.
"하아, 요새끼 봐라! 니는 느그 아부지부터 조져야 되겠네. 그래, 내가 니 또래로 보이나? 내가 몇 살로 보이는데, 새끼야?"
"그래 봤자 누나들 다 스물이지 머."
"그래, 이 새끼야. 우리 스물이다, 새끼야. 스물이면 맞먹어도 되나, 새끼야? 니는 몇 살인데 새끼야?"
"열 일곱."
"열 일곱이 스물 먹은 여자한테 맞먹어도 된다는 법이 어딨노, 새끼야? 남자 꼭다리라고 여자 깔보나, 새끼야?"
"울아부지는 열 일곱에 울엄마한테 장가도 갔거덩. 울엄마는 스물."
"이 새끼야, 그거는 옛날 아니가. 그라고 느그 엄마가 나이가 더 많아가 니 같이 싸가지 없는 놈이 안 나왔나, 새끼야!"
"잘 생겼다는 소리는 귀가 아프둘 들어도 싸가지 없다는 소리는 첨 듣는데?"
나는 내내 실실 웃었다.
"에라이, 능구렁이 같은 새끼야."
"승미야, 놔또라. 거짓말인 줄이야 알지만 스물로 보인다니 기분은 좋다야!"
"그래, 맞다, 맞아!"
그녀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나는 승미 누나의 거침없는 말투에서 부잣집 딸이란 걸 바로 알았다. 그녀는 '안하무인'을 연습하는 중인 것이었다. 그런 것을 모를 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세게 나가기로 했다. 승미 누나와 친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역시 여자들은 예쁘다는 것보다 어리게 봐주는 것을 더 좋아했다.
승미 누나가 다시 나를 지목했다.
"요새끼 옷 잘 입는 거 봐라, 이거! 완전히 프로 날라리네! 눈웃음까지 살살 치는 기 가시나들이 오줌 좔좔 싸겠다!"
나는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 청자켓에 갈색 단화를 신고 있었다. 거기다 자켓의 소매를 한 번 접어올려 티셔츠의 하얀 소매를 드러내 흰 얼굴이 돋보이게 한 것이 내 패션이었다. 그 시절, 나는 제임스 딘도 부럽지 않았다. 아쉽다면 고삐리라 머리가 짧은 것이었다. 제기랄!
"누나는 참! 타고난 거를 낸들 우짜라꼬!"
한번 시작한 말투를 존댓말로 바꿀 내가 아니었다. 연하보다 연장자를 대하는 것은 얼마나 수월한가. 최소한의 존중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특히, 여자들은 '누나'만 빼먹지 않으면 허물이 없었다.
"삥아리들 진짜 잘 생겼다아!"
"멋지드아!"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태놈도 어디 가도 빠지는 인물은 아니었다. 검은 면바지에 갈색 콤비를 입은 놈은 내가 봐도 깔끔하고, 멋졌다.
정태놈과 나는 그녀들에게 품평회를 당하시다시피 했다. 원래는 정태놈을 보러 왔는데 나까지 끼었으니 그녀들은 살판이 난 것이었다. 놈은 앞으로 계속 볼 수도 있고 단편적인 정보나마 있었지만, 나는 미답인 셈이라 그녀들의 관심은 당연히 나를 향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들의 개성과 특징을 금세 다 파악했다. 유정이 누나가 제일 얌전한 것 같았다.
시간이 되어 정태놈이 뮤직 박스로 들어갔다. 나는 미리 적어 간 쪽지를 넣었다. 첫 신청곡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였다.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할 때, 이 노래만한 노래가 또 있을까? 둘이 숱하게 같이 들었던 노래였지만 내가 정태놈에게 바치고, 나 스스로에게 주는 첫노래는 이 곡이어야 했다.
신청곡을 처음으로 접수한 정태놈은 S칸의 LP자켓을 한 뭉텅이 꺼내서 폼나게 한 장씩 쳐내듯이 제끼더니 한 장을 빼들었다. 그리곤 바늘 튀는 소리 없이 부드럽게 노래를 올렸다.
"신청곡입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놈의 음성은 정말 멋졌다. 그러나 놈은 끝내 '내 맘 알제?' 라고 내가 따로 적은 문구는 읽지 않았다.
그 대신 간주 중에 멘트를 넣었다.
"노랫말 좋죠? 아무리 물결이 험해도, 주변에 아무도 없다 해도 여러분들은 서로를 지켜주고, 위로해 주는 이런 사랑, 이런 우정 가꾸시기 바랍니다."
그 말은 나에게 또 제 놈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녀들은 바로 뒤집어졌다.
"끼아악! 멘트 죽인드아!"
"옵뽜아!"
"가시나들 오늘 삥아리들한테 오줌 싸겠다, 오줌 싸겠어!"
그렇게 나와 '모나코'와, 나와 입이 건 승미 누나가 대장인 '모나코 백조클럽'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모나코'는 내 아지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