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나오 님
벌써 8년이나 지난 이야기입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여름 방학 때였습니다.
6년 만에 멀리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가자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여름 방학도 머지 않아 끝날 시기고,
두 분 다 꽤 연로하시니 이번에 못 뵈면 못 뵐 수도 있지 않을까하고, 효도할 겸 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느 현의 사○지마라는 깡촌에 살고 계셨습니다.
빌딩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문명과 동떨어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군데 군데 사당 같은 게 지어져 있었는데
그 사당이 무엇을 모시기 위한 것인지 알고 나서 참 신기했습니다.
보통 그런 작은 사당은 여우나.. 코마이누(해태와 비슷한 것)같은 걸 모시잖아요?
그런데 그 섬 전체에 있는 모든 사당이 모시고 있는 건 바로 "외눈박이 아이"였습니다.
이 섬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인가보다 하고 저는 그닥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항구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도착합니다.
낡아빠졌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우리 집과 별반 차이도 없고 내부도 의외로 깔끔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이고 많이 컸구나!"하고 호들갑스럽게 맞아주셨습니다.
거실로 가니 데자뷰가 일어났습니다.
족자가 걸려 있었는데, 그 족자에는 오는 길에 본 외눈박이 아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에게 "이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여쭤봤더니
"이건 말이다, 불길한 상질이란다"
불길하다고? 왜 그런 걸 섬기고 계시냐고 다시 여쭤봤습니다.
"시마나오(辰眼童-용 눈의 아이)님이라고 하는데, 어리석은 우리 섬 주민들이 만들어내고 만 존재지.."
할아버지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더는 여쭤볼 수 없었습니다.
집에 있어봤자 할 일이 없어서 밖에 나가봤습니다.
집 바로 뒤에는 언덕이 있길래, 그냥 한 번 올라가봤습니다.
언덕 꼭대기에서 보이는 경치가 꽤 괜찮아서, 계속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졸리기에 누워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눈이 떠졌습니다.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졌습니다.
다들 걱정할 것 같아서 서둘러 일어나 집에 가려고 했습니다.
"끽끽"
갑자기 오른쪽 방향에서 원숭이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하고, 아이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갑작스러워 움찔하긴 했지만, 동네 애들이 노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덕을 내려가려고 할 때 뒤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아이였습니다. 뭐라고하는 지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두 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갈색 솜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핫제테! 핫제테!"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릴 내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어딘가 이상한 게, 뭔가 콧소리 같은 쉰 목소리였습니다.
그 아이가 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뭔가 줄 것 같은 몸짓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저도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아이는 제 손에 "무언가"를 떨구더니 스윽하고 사라졌습니다.
저는 눈을 번쩍 뜨며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현관 불이 밝았기 때문에 좀 전에 아이가 주고 간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목걸이였습니다.
지저분한 끈에 고리 형태의 미끈거리는 게 달려 있었습니다.
지저분하기도 해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께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려다가 관뒀습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낮잠을 자도 밤에 잘 자는 편인데,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나해..나해... 버렸어"
방 창가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까 그 아이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까 그 쉰, 콧소리였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썼습니다.
그러자 아이 목소리가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무섭다고 생각한 순간 제 다리를 누가 밟았습니다.
저는 "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습니다.
달빛에 얼굴이 비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당에 모신 "시마나오"의 얼굴이었던 겁니다.
토끼 입에, 코가 없었고, 커다란 눈이 하나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머리 위에 살짝 얹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크게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손을 꽉 잡더니 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주무시던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달려오셨습니다.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가 그리 물으시기에, 한 마디만 했습니다.
"지금 시마나오 님을 만났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제 대답을 듣고 꽤 놀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이니? 시마나오 님을 만났다고? 저주 받았니?!"
할아버지가 무서운 표정으로 물으시고,
부모님은 그 옆에서 곤란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질렸다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쓰레기통에 버린 목걸이를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이 밝았지만 저는 우울했습니다.
툇마루 근처에서 널부러져 있는 제 앞에, 할아버지가 다가오셨습니다.
"70년 정도 전에 말이다, 어느 오누이가 살고 있었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오누이는 정말 사이가 좋았단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삐뚤어진 사랑이라서
어느 날 여동생이 오빠 애를 배고 말았어.
이 섬의 종교에선, 혈연 관계의 남녀가 정을 통하는 건 금지되었거든.
금기를 깨트린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던 게야.
그런데 그 오누이는 그것을 거부하며 둘이 몰래 달아난 거야.
섬 사람들은 섬에서 그 오누이가 빠져나가지 못 하도록
배가 나가지 못 하게 막아두고, 혈안이 되어 오누이를 찾았어.
그리고 산 속의 어느 낡은 오두막에서 그 오누이가 발견되었단다.
여동생이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어. 이미 낳은 게지.
그걸 본 섬 사내가 그 아이를 빼앗아서 죽이려고 했어.
그런데 그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그 갓난아기를 집어 던지고 말았단다.
그 갓난아기는 눈이 하나 밖에 없었어.
일단 오누이와 갓난아기를 섬의 사무소로 데려갔단다.
오누이는 바로 목을 쳤는데,
외눈박이 갓난아기를 죽이면 저주를 받을 것만 같아서 처형을 미뤘어.
그런데 살려뒀다가는 더 화를 불러 모을 것 같아서, 결국엔 그 갓난아기도 죽였지.
그 갓난아기는 영혼까지 없애려는 셈으로 바위로 머리를 짓누르고
몸을 갈기갈기 찢어서 바다에 내다버리는 정말 잔혹한 형벌을 내렸어.
그런데 그 갓난아이를 죽이고 며칠 정도 지났을까. 오누이를 처형한 사람 셋이 죽었어.
그리고 갓난아이를 처형한 사람과,
오누이를 찾는데 협력한 섬 사람 서른 명이 연달아 죽어나갔단다.
섬 사람들은 외눈박이 아이가 이 사람들을 죽였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매년 한 명씩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아이가 죽었어.
섬 사람들 모두 외눈박이 갓난아기가 저주를 내린거라 생각하며
온 마을에 그 아이를 모시는 사당을 세운 게야..
지금도 그 아이가 가끔 섬 사람 앞에 나타나서, 엄마가 줬다는 목걸이를 건네 준단다.
왜 목걸이를 주는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끝내시더니 일어나셔서 자기 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나니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 후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잘 살아계십니다.
저도 1년에 한 번 정도 할아버지 댁에 방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