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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경이 - 세포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 - 그리고 잡다한 이야기
게시물ID : science_422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럭키쓰리
추천 : 11
조회수 : 877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4/10/20 11:48:50

(동영상에 브금 있으니 주의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막 대학에 입학한 14학번 새내기입니다 ㅎㅎ

원래 저는 어렸을 때 봤던 코난 극장판에서, 자동차가 일정 높이에서 떨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을 구하는 하이바라를 본 뒤로
물리학에 완전 매료되어 중학생 때부터 쭉 물리만을 바라보며 대학까지 왔습니다.

갑자기 이런 말을 왜 꺼내냐구요?
물리학도면 물리학에 관한 글을 올리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냐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 전에 이렇게 서두를 꺼내는 게 제가 느낀 감동을 전달하는데 더 좋을 것 같아서요.ㅎ

우선 잠시 다른 이야기로 한번 빠져 볼게요.
제가 인생을 바쳐 연구하기로 결심한 물리학은 간단히 말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좀 더 멋있게 이야기하면 자연의 법리학자라고 할까요?
자연이라는 거대한 보드게임의 규칙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물리학이죠.

그중에 제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이론 물리학자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흔히 다큐멘터리나 책을 통해 접하는 경이로운 우주·자연의 근본 원리에 인류의 지성을 무기로 삼아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이죠.
어때요, 뭔가 멋지지 않나요?

...변태 같다고요? 그런 소리 가끔 들어요....(시무룩)
근데 그게 좋은걸요.ㅎ

사실 이 분야는 그렇게 돈이 되는 분야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선 밥 굶기 딱 좋은 분야기도 하구요(아, 서글퍼라ㅜㅜ).

그런데도 제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또 제 길에 관한 자부심 때문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이런 이야기로 샜던 이유를 알려 드릴게요.
개인적으로는 매우 부끄러운 과거지만 당당히 까보겠습니다!

자부심은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자만심으로 돌변하기 쉽더군요.
혹은, 자만심을 자부심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아요.

혹시 제가 무슨 말을 할 지 눈치채셨나요? 어, 그럼 부끄러운데...

암튼, 네. 저는 한동안 자만심을 제 길에 대한 자부심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런 거죠.

'생명과학? 그거 결국 화학의 응용 아니야? 뭐 배울라고 하면 예외 투성이고 교육과정도 체계화 안 돼 있고.

화학? ㅋㅋㅋ 그거 결국 파고 들어가다 보면 물리 나오는거 아님? 양자역학 빼고 화학 설명할 수 있음? 못하지? ㅋㅋㅋㅋㅋ

지구과학? 그건 뭐임? 물리 화학 생명과학 다 짬뽕한 게 지학 아님?

물리가 과학중에 단연 원탑이지 ㅋㅋㅋㅋㅋㅋ'

(제가 봐도 기분 나쁘네요. 으으...)

한마디로 물리 외의 모든 과학 분야는 결국 물리로 소급되는 하찮은 분야라고 여겼던 거죠.

어라, 여'겼던' 거죠? 과거형?
네. 지금은 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매일 애꿎은 이불을 하늘을 뚫을 기세로 차올리는 중입니다.

그 계기가 된 게 저 동영상이에요.
그리고 저 동영상이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기도 하구요.ㅎ


혹시 동영상은 그냥 스킵하시고 글만 읽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한 9분 정도, 아니 5분 정도만 투자하셔서 동영상을 봐 주시길 부탁드려요.

저 동영상은 교수님이 생물을 가르치시며 제게 틀어주셨던 동영상입니다.
동영상 자체가 품고 있는 내용은 엄밀히 말하면 크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밥 먹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똥 싸고, 자고 하는 동안 늘상 우리 몸 속의 세포 하나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금 자세하게 보여주는 영상이지요.
실제 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저 동영상보다 훨씬 훨씬 더 복잡합니다. 단적으로 번역 과정 이전에 필요한 tRNA 차징 과정이 저 동영상에는 나와있지 않죠.ㅎ

그런데 한 번 생각해봐요.

저 동영상만 봐도 이름도 모르는 이상하게 생긴 것들 수십 개가 막 지들끼리 복잡하게 왔다리 갔다리 하고 움직입니다.
정말 너무 복잡해요. 맘먹고 공부하려 해도 일주일은 필요할 정도로.

근데요, 이게 그냥 세포 하나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더라구요.
그냥 세포 하나.
우리몸에는 이런 세포가 10조개 가량 있다고 하죠?

혹시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기억 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그냥 간단히 '세포막, 미토콘드리아, 소포체, 핵'하고 배웠던 것들은 실제로는 저만큼 복잡한 기작 위에서 작동됩니다.

동영상 중간에 motor protein(모터 단백질) 보이시나요?
웬 빼빼마른 졸라맨 같은 애가 길다란 막대 위에서 지 몸보다 수십 배는 큰 소낭을 옮기는게 귀엽기도 하고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저는 완전 신기하게 봤는데 ㅎㅎㅎ

근데 진짜 저렇게 움직여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걸어다닙니다'.
그냥 일개 단백질이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물리지식을 총동원해도 대체 어떻게 분자가 스스로 걸어다닐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백질이라기 보단 나노머신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ㅎ

으악, 제가 글실력이 조금 모자라서 이야기가 조금씩 새네요 ㅜㅜ 필력 좋으신분들 부럽...

앞서 말씀드렸듯이 위 동영상 같은 일이 우리 몸에서는 10조개가 넘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일어납니다.
그것도 최소 10배는 더 복잡한 과정으로요.

...정말 너무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제가 생물학 지식이 많이 모자라서 저걸 일일히 알아먹을 수도 설명드릴 수도 없는게 너무 아쉬을 정도네요.

그니까 한마디로!
저는 이 동영상에서, 제가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봤을 때와 같은 경이를 느꼈습니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해요.

생명이란것, 정말 너무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더라구요. 관점에 따라서는 우주를 구성하는 방정식이 하찮게 보일 정도로요.

그런데 여기서 또 제가 충격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바로 윗윗 문장에서 쓴, '관점에 따라서는'.

네, 저 복잡한 기작들은 전부 다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닙니다.
모두 생명에 경이를 품고 일생을 다 바쳐 연구하신 생물학자 분들이 밝혀낸 거에요.
그 분들 덕분에 제가 책상에 앉은 채 편하게 생명의 놀라움을 감상할 수 있는 거지요.

그 생각을 하니 이런 것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생물학자, 그리고 생물학도 분들이 정말 멋있고 존경스러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물학자 분들은 제가 물리에 경이를 느끼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 만큼이나 생물에 경이를 느끼고, 자부심을 느끼겠지요.


저보고 저런 걸 공부하고, 연구하라 한다면 전 잘 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져요.

생물이 물리학으로 소급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원리적으로 그렇단 거지,
실제로는 생물학은 결코 물리학의 곁가지가 아니라 물리학과 대등한 또 다른 학문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도요.

마찬가지로 화학에도, 그리고 또 다른 학문에도 그 학문만의 경이가 있겠지요.

폭탄이 터졌다고 했을 때,
폭발 순간의 압력, 온도와 비산물의 운동 궤적에 관심을 가진 누군가는 물리학을,
폭발물이 어떤 반응을 거쳐 폭발에 이르게 되는가에 관심을 가진 누군가는 화학을,
폭탄이 터진 자리에서도 생존하는 생물들에게 관심을 가진 누군가는 생명과학을,
폭탄에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와 방법에 관심을 가진 누군가는 의학을,
폭탄이 개발되기까지의 과정에 관심을 가진 누군가는 과학사 또는 역사를,
폭탄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만드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진 누군가는 공학을,
폭탄이 어떻게 쓰여야 할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누군가는 윤리학을...

이런 식으로 학문은 똑같은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라보는 관점에 우열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인 취향이죠. 짜장면이 좋다, 짬뽕이 좋다 하는 그런 취향이요.

근데 마치 '짜장면만이 진리다!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하찮아!'하는 태도로 물리학과 비(非)물리학을 대해왔던 제 태도는 대체...
음....
정말 정말 부끄럽더라구요...ㅋ....

게다가 결국 학문의 경지에 오르면 오를수록 학문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것인지도 알게 되겠지요.
원자 수준까지 내려가면 화학과 물리학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어... 슬슬 지루한 이야기에 결론을 내볼까요 ㅎ

첫번째로, 저 동영상을 통해 생명의 경이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로, 저 동영상을 통해 제 자신의 과오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세번째로, 그 과정에서 학문이 무엇인지와 또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한 조그만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요.

사실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도 오만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과거의 자신보단 나아졌다고 확신할 수는 있네요.ㅎㅎ

그래서 이들을 가능하게 한 동영상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10분 정도를 투자해서 생명의 경이를 함께 느껴보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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