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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사건사고
게시물ID : sports_898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ouMeLove
추천 : 2
조회수 : 77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7/11 17:34:38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그야말로 드라마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극적인 감동적인 순간이 있는가하면, 생각지도 못한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간혹 위험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엽기적이기도 한 선수들.. 그들의 땀과 노고가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역대 올림픽들의 황당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아 보았다. 


개헤엄으로 수영 완주한 선수 이야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조별예선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최첨단 수영복 등으로 기록 단축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남자 100M자유형에서 고전적인 삼각팬티를 입은 흑인 남자선수가 서있다. 기니라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나라의 선수. 
수영경력은 8개월 바로 에릭 무삼바니가 주인공이다. 

같은 예선조의 선수들이 부정출발로 실격 당하자 그는 혼자 예선을 치르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고, 개헤엄?에 가까운 수영실력으로 결승선을 
통과 1분 52초72에 골인하게 된다.

1위 기록 48초30과는 세배 넘는 차이가 나는 경악할만한 기록이었다.

 


많은 스포츠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삼바니를 비웃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나라에는 수영장이라곤 20m짜리의 
호텔 수영장 2개가 전부이고, 50m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건 그에겐 난생 처음이었다고 하니, 그의 용기가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란선수는 마라톤에 참가하지 않는다.

왜? 마라톤이란 이름은 지명으로 지어진 이름 입니다. 중학교 시절 영어 교과서에서도 마라톤의 유래가 나와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마라톤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지역이며, 이곳은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의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는 승리하게 되고, 승전 소식을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는 뜻에서 채택된 육상 경기 종목이 마라톤이다.

중요한 것은 이란이 바로 페르시아의 후손이라는 것. 선조가 패배한 전쟁을 기리는 스포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민족적인 의지라고 봐야 하나? 
1974년 테헤란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에서는 마라톤 경기가 아예 빠졌다고 한다. 
 



55년만에 마라톤 완주한 영화같은 이야기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 그래서일까? 마라톤과 관련한 재밌는 찡한 이야기가 많다.

1912년 스웨덴 스톡홀롬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선수 카나쿠리는 경기도중 열사병으로 경기를 포기하고 만다. 
그는 어느 가정집에 들어가 음료를 마시고 휴식해 기력을 회복하지만 중도에 포기했단 수치심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일본으로 돌아왔다.

한편, 없어진 카나쿠리를 백방으로 찾아보지만 찾을 수 없었던 올림픽 조직위는 그를 실종신고하게 되고 그의 행방에 대한 소문들이 난무하게 되며, 
그는 마치 전설처럼 마라톤하다 사라진 사나이가 되고 만다.

 

1962년 올림픽 50주년 기념으로 스웨덴의 한 신문사가 카니쿠리를 수소문하게 되고, 그가 일본의 학교에서 지리교사로 재직중임을 알게된다. 
그의 나이 76세 1976년 스톡홀롬의 한 백화점 행사에 초청되어 그당시 올림픽 스타디움을 찾고, 그곳에서 55년만에 피니쉬라인을 밟았다고 한다.

현재 마라톤 최장기록, 54년 2일 32분 20.03초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이 아닐까?

 



42.915km의 마라톤 카니쿠리에게는 그 거기를 완주하기 위해 55년이란 세월이 걸린것이다.

다시 그를 찾아 수소문한 스웨덴의 신문사도 참 희한하고, 55년만에 다시 스타디움을 찾아 피니쉬라인을 밟은 카니쿠리의 이야기 마치 영화와 같다.

 

그런가하면 부끄러운 마라톤의 우승자들도 있는데, 미국의 프레드 로츠는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마라톤에서 경기도중 버스를 얻어 타고 움직여 
금메달을 박탈당했고, 런던 올림픽에서는 피에트리 도란도가 결승전 바로 앞에서 지쳐 쓰러졌지만 심판들이 도와줘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금메달은 곧바로 회수됐다. 

 

 
눈에 뭐가 들어갔다구요? 비둘기 똥!

 

1972년 뮌휀 올림픽에서 비둘기 똥이 눈에 들어가 100m 허들 예선에서 탈락한 사건이 있다

주최측에서는 불의의 사고를 배려해 이 선수는 본선에 진출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실격 되었다고 한다.

비둘기 똥이 눈에 들어갈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선수는 정말 운이 없었던 모양이다.
 



수구하던 선수들이 갑자기 나체쇼?



2000년 시드니 올리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수구가 때아닌 나체쇼가 벌어져 올림픽 조직위를 난처하게 했다고 한다. 

양팀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가 수영복이 찢어져 알몸이 들어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고 하는데, 호주와 러시아의 경기에서는 
무려 10명의 수영복이 찢어졌다고 한다.

잡아도 찢어지지 않는 특별한 소재의 수영복이 특별 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올림픽서 이산가족상봉

어렸을적 이산가족노래(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가 참 구슬펐던것 같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지만 그 노래만으로도 
이산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슬픈일이고 또 불행한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분단된 남북의 아버지와 딸이 만나는 기쁘고도 슬픈 사건이 있었다.

북한 육상선수 신금단 선수와 아버지가 7분간 올림픽을 통해 상봉했다는 것이다.

 신금단 선수는 촉망받는 육상선수로 도쿄 올림픽 매달후보였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소련과 비동맹국가들이 주축이 돼 열린 
가네포 경기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를 금지했고, 북한 선수단은 올림픽을 거부 철수하기에 이른다.


북한 선수단이 일본을 떠나기위해 열차를 타기직전 서울에 살던 신금단 선수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온다. 13년만의 상봉!! 신문을 보고 딸의 
올림픽 참가를 알았다는 것이다. 

둘은 부둥켜 안고 약 7분간 상봉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신선수는 바로 열차를 탔고, 아버지는 떠나는 기차를 따라 달리며 딸과의 이별을 슬퍼했다고 한다.
아버지 신씨는 83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참 가슴아픈 분단의 현실이다.

이 사건 이후 이들의 슬픈이별을 기리는 노래도 제작되게 되었고, 크게 히트를 쳤다고 한다. 
 



이렇게 가슴찡한 올림픽 뒷이야기들도 있지만, 정말 당혹스러운 뒷이야기들도 많다.

마라톤 선수가 다리다 똥 오줌이 마려우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달리던 마라토너 오줌누고 다시 달려

 

2005년 4월17일 런던 마라톤 대회에서 영국의 폴라 래드클리프 선수가 달리다 말고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 
바로 소변을 보고 다시 달리고 있는 그녀... 남자라면 좀더 쉽게 볼수 있었을텐데.... 쩝. 프로정신이 대단하다.
 


 

 


마라톤 경기도중 응가하면서 달려... 헉!




1998년 카타리나 맥키넌이 마라톤 경기 도중 응가를 해버린 것이다. 경기를 멈출수도 없고, 응가를 참을 수도 없고, 그의 표정이 너무나 비참하다. 
그는 두가지 고통을 짊어지고 달리고 또 달린다. 

관중들은 어처구니없이 웃고, 아 불쌍하다.
 


마라톤 응가 한명더있다!! 이번엔 여선수!!



 

 

 

그런데 남자만 이런 굳은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게 아니었다. 달리다 일을 봐 버린 여성 마라토너도 있었던 것. 해외사이트에 사진 자료만 돌아다니고 아무런 설명이 없어 역사에 길이남을 영상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그녀의 지인들만 알 뿐… 32번 마라토너는 이날, 잘못된 결심으로 똥 싸버린 일을 마구 발등을 찧으며 두고두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마라톤 금메달 유력호보 공격당해..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 후보로 유력했던 바더레이 코데이로가 35km지점을 달리던 순간 
전통복장을 입은 한 관중이 그를 공격했다. 이 관중은 아일랜드 전통복장을 입고 있었으며, 경찰조사에 따르며 종교적 
신념때문에 이런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황당한 투창 사건 

 

2007년 7월13일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 경기장에서 프랑스의 높이 뛰기 선수인 살림 사드리는 경기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등뒤에서 긴창에 날아와 등에 꽂혔다. 

창을 던진 선수는 핀란드의 테로 피카마키. 그 역시도 엄청나게 당황했다고 한다.


사드리는 창이 몸안으로 10cm이상 들어가 장기에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2007년 유럽 육상대회를 석권했던 사드리는 
그 이후 1년의 투병끝에 2008년에 경기장에 설수 있었다고 한다.
 



야구공에 맞아 비둘기 즉사


어쩜 타이밍이 이리도 절묘하단 말인가? 투수가 던진 강속구에 어디선가 날아든 비둘기가 맞아 즉사 한다. 


 

 

1993년 4월 독일 함부르크


'슈테피 그라프를 다시 세계랭킹 1위로 만들고 싶어 모니카 셀레스의 등에 칼을 꽂았다'


1993년 1월,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호주 오픈에서 모니카 셀레스는 슈테피 그라프를 결승에서 꺾고 첫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상궁의 위치에서 중전의 위치로 올라선 것이다. 모니카 셀레스 보다 4살이 많았던 슈테피 그라프의 미래는 비관적이었다. 그건 경제위기를 겪은 독일 국민들이 슈테피 그라프를 통해 얻은 위로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상실에 대한 불안한 기운은 호주오픈 3개월 뒤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사건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피습당한 모니카 셀레스(좌) / 나쁜 넘 군터 파쉬(우)

 

 

1993년 4월. 독일오픈. 독일에서 열린 경기인 만큼 슈테피 그라프는 라이벌인 모니카 셀레스에게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전세계 테니스 팬들이 이목이 집중된 이 경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코트 체인지를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던 모니카 셀레스에게 접근한 독일인 군터 파쉬가 흉기로 그녀의 등을 찌른 것이었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경기는 그대로 중단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모니카 셀레스는 범인이 보스니아 테러범일거라 생각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보스니아와 오랜 내전 중이었고, 모니카 셀레스는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에 비행기를 수시로 갈아탔을 정도였다.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피습 목격자가 된 슈테피 그라프는 범인이 자신의 팬이 아니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슈테피 그라프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군터 파쉬는 슈테피 그라프의 팬임을 시인했다. 군터 파쉬는 물론 독일에까지 비난이 이어졌고, 모니카 셀레스에겐 격려와 위로가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일 없던' 것으로 되진 않았다.

 

 

모니카 셀레스는 코트를 떠났다. 전문가들은 5-6개월 이내 컴백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코트에서 피습당한 정신적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듬해인 1994년, 미국 국적을 얻긴 했지만 코트엔 돌아오지 못했다. 범인은 정신병자라는 이유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 카롤리 셀레스가 1995년 복귀 직전, 독일의 한 TV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피습범에게 실형이 선고되지 않은 것에 대해 모니카 셀레스가 상당히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그렇게 절정의 기량에 있던 순간, 24개월을 통째로 날렸다. 사건 이후 모니카 셀레스는 다시는 독일에서 열리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라이벌이 사라진 여자테니스 코트의 주인공은 다시 슈테피 그라프의 차지가 되었고, 그렇게 완벽한 전설이 되었다. 더 이상 관객은 코트의 두 여왕이 펼치는 폭풍 라이벌 전을 볼 수 없었다.

 

 

프랑스오픈 3연패를 달성한 모니카 셀레스, 지켜보는 슈테피 그라프

 

복귀, 그리고 은퇴


모니카 셀레스가 코트에 복귀하기까진 정확히 27개월이 걸렸다. 95년 복귀 후 서서히 기량을 올려 96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해 테니스 팬들의 박수를 받았으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우승하지 못한 채 2003년 프랑스오픈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댄싱 위드 더 스타 영국판 시즌 6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녀는 2009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다. 그렇게 그녀는 만개하지 못한 안타까운 전설이 되었다. 

 

 

96년 호주오픈 우승컵을 받아 든 모니카 셀레스

 

 

못난 팬 하나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전세계 스포츠 팬들은 최고의 스타 한 명과, 그가 펼쳤을 세기의 대결을 통째로 날려 먹었다. 부당해 보이는 것은 피습만 아니었다면 슈테피 그라프와 동등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기록되었을지 모를 모니카 셀레스는 지금까지도 '한때 강력했던 도전자'라는 이벤트쯤으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테니스 코트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기 싫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우리가 모니카 셀레스를 '강력한 양손 포핸드를 구사하는, 괴성을 토해내는 최고의 선수'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하겠다.

 

 

 

월드컵 최단시간 골 ...한국

 

2002월드컵당시 터키와 한국은 3,4위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날 경기시작 11초만에 중앙수비수 홍명보가 터키의 하칸수쿠르에게 볼을 빼앗긴후 월드컵 최단 시간 골이라는 오명을 남기게되었다.

명불허전 따봉!!

 

2014 월드컵 핵이빨사건.

 





 

많은 이들이 생중계를 통해 본 수아레즈가 저지른 사건이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이번에도 수아레즈가 본성을 숨기지못하고 상대수비수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이로서 수아레즈는 총3번의 핵이빨사건의 주인공이자...핵이빨로 헤트트릭을 올린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피파는 수아레즈에게 4개월 선수생활 정지를 명령했고 벌금 1억 13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타이슨이 조만간 찾아갈지도...

 

 

노출사고가 가장많은 종목 ..여자수구

 

여자수구는 수영복 하나만 걸치지만 경기자체는 매우 격렬하여 

다른경기에 비해 유난히 노출사고가 많다.

 

 



 

 

 

그러나 수구선수들이 이렇게 단체누드 화보를 찍는걸보면 

노출에 크게 신경쓰지않는 듯하다.

 

2014 동계올림픽 피겨 선수소트니코바 형광나방 사건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금메달 자격 박탈 논란에 휩쌓였던 소트니코바. 시상식 이후 열리는 갈라쇼에서 

알수없는 형광색 누더기를 걸치고 나왔으나 아름답기는 커녕 더러워 보였던 누더기천을 휘날리다

결국 전세계 네티즌들의 항의 섞인 합성사진으로 형광나방 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피겨여왕은 메달과 상관없이 김연아 또는 퀸연아 라 불리는 한국선수 라는것이 

전세계 피겨팬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오늘 포스팅.끝♡.


출처:  내블로그 (구글검색 참고 하여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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