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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이, 사랑은 어디에서 우는가
재개발도 안 되고 철거만 가능하다는 곳
삶이 문턱에서 허덕거린다
햇살은 아무 것이나 붙들어 들어갔다 뺏다 하고
선과 악이 날마다 쌈박질하며
그 속으로 더욱 궁둥이를 들이밀며
달아나려 매번 자기를 죽이면서도 눈을 뜨는
내 바닥 불륜의 씨앗이 작은 방죽처럼 둥그렇게 모여 있는
닭장촌, 정착지도 모르고 날아들었다가
가로등 불빛에 타 죽어가는 날벌레 목숨 같은
오누이가 사랑을 하고 사촌오빠가 누이를 범해 애를 낳는 그곳
온 몸 짙푸른 얼룩을 감추기 위해 더워도 옷을 벗지 않는
엄마가 얇은 시멘트 벽 옆집 남자랑 도망가 없어도
어른이 되어가는 그곳
수많은 세대들이 서너 개의 공동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그곳
문밖에 버려진 작은 화초들, 으깨진 보도블록에서 솟아나는 풀들
바닥 틈 속에서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간혹 보일 듯 말 듯 한 꽃도 토해놓고
나 도망가다 멈춰 선 그곳
김순진, 광대 이야기
전깃줄 위 구르는 달을 꾸지람하며
정작 저는 고무줄놀이를 한다
그렇게도 어깃장 난 삶을
꿰어 맞추는 퍼즐게임
그리도 까불대던
어느 광대의 겨울 문틈엔
별 하나 둘 뜨고
구경꾼 모두 집으로 간다
세월이란 비수를 들이대며
세월의 강도가 자백한다
"난 그저 웃기려 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막이 내린다
강연호, 환승역
지하철 환승역, 갈아타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기차든 비행기든 직장이든 혹은 여자든
갈아타는 것만큼 가슴 뛰는 일은 없다
환승역에는 어디나 미로가 있고 종말론이 있고 복권이 있다
삶은 문득 놓친 실끝 같은 거니까
삶은 언제나 끝장내고 싶은 거니까
삶은 늘 가려운 거니까
환승역에는 어디나 미로가 있고 종말론이 있고 복권이 있어서
사람들은 더러 이쪽 저쪽 헤매기도 하고
열차에 받혀 공중돌리기도 하고
열심히 긁어대기도 한다
사람들은 날마다 환승역에 복작복작 모여들지만
갈아탄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장하빈, 개밥바라기 추억
겨울 금호강가에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등에 업혀 새록새록 잠들다가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져간 개밥바라기
하얗게 얼어붙은 강어귀에서
모닥불 지펴놓고 그를 기다렸다
한참 뒤, 폭설 내려와
강의 제단에 바쳐지는 눈발 부둥켜안고
모래톱 돌며 제(齊)를 올렸다
눈 그친 서녘 하늘에 걸린 초롱불 하나
김영철, 너울
천곡동굴을 지나
기찻길로 내려가는 길 끝에는
딱, 골목만한 쪽빛 바다가
하얀 이를 드러내놓고 웃는다
한번은 수척한 아버지의 얼굴로
또 한 번은 눈물만 쏟아놓고 멀어져간
여전히 앳된 소녀의 얼굴로
이마에 두른 하얀 수건 하나와
가녀린 손에 꼭 쥔 파란 손수건 하나가
허락도 없이 가슴팍에서 팔랑거린
춤을 추는 것이다
언제나 한꺼번에 날아와
바람을 즐기며 노는 갈매기처럼
양 어깨를 한쪽씩 맡아
위아래로 번갈아 흔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