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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소나기가 한동안 퍼부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898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4/18 21:27:3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최명선상처의 안쪽

 

 

 

호박 밑둥에 똬리를 받치며

어머니 말씀하셨다

병의 근원은 습함에 있는 거라고

 

늙은 호박을 가른다

좀처럼 칼이 먹히지 않는다

속은 분명히 비어 있을 터

이 버팀의 힘은 무엇일까

어머니수술대 위에 누워서

암 덩이를 들어내는 동안

나는 호박 가르던 그 순간을 생각했다

여린 씨앗들을 위해

모질어진 수밖에 없었던 생의 외피를

다만 질기다 무심했던 자식과

행여 그 속내 근심으로 읽힐까 봐

커다란 혹 달고서야 젖은 속 열어 보인

무던한 당신

공명으로 가는 길 그토록 깊어

내게 닿기까지 더뎠던 것인가

 

눅눅한 생일수록 쉬이 오지 않는 봄

진즉 똬리가 돼드리지 못한 자책과

피우지 못한 몇 겹의 꽃들이

벗은 몸 다시 입는 어머니 병실에서

허기처럼 삼 년을 붉다가 졌다







2.jpg

최재목허공의 얼굴

 

 

 

세수하다가 문득 두 손에 든

물을 바라보다가물 한줌 쥔 동안 비치다 깨어지고

다시 짜 맞춰지는 나를 보았네두 손과 얼굴 사이에서

은밀히 살아남은 허공의 물방울

물 한줌 쥘 동안 비치는 이목구비

그것마저 놓쳐 버리면 낱낱이 분해되거나

세상으로 흘러다닌 얼굴을 보았네

자신을 잊을 때까지 두 손과 얼굴 사이에서

떠오르다 가라앉는 물방울그러다가 그러다가

당장에 무슨 뾰족한 수도 없이

아주 잊혀져가는 얼굴을 보았네







3.jpg

이선영시든 꽃

 

 

 

저 꽃의 영혼은

추워서 방으로 들어갔단다

겨울 집밖을 나서다 보니

시든 꽃 한 송이

영혼이 저만 따뜻한 곳 찾아 들어가버린

아니면 시들어가면서 꽃이

영혼 먼저 들여보냈나

영혼이 놓아두고 간

시든 꽃잎들은

이제 아무데로나 떨어져내릴 것이다

추위를 견딜 마지막 힘조차 잃었는가

방 안에서 잠시 쉬었다

봄이 되면

다른 꽃을 찾아들리

꽃들은 끝내 시들고

시들지 않는 영혼만이 천년만년 새로운 꽃으로 옮겨다닌다







4.jpg

오규원칸나

 

 

 

칸나가 처음 꽃이 핀 날은

신문이 오지 않았다

대신 한 마리 잠자리가 날아와

꽃 위를 맴돌았다

칸나가 꽃대를 더 위로

뽑아올리고 다시

꽃이 핀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음날 오후 소나기가

한동안 퍼부었다







5.jpg

유안진말하지 않는 말

 

 

 

말하고 나면 그만

속이 텅 비어 버릴까봐

나 혼자만의 특수성이

보편성이 될까봐서

숭고하고 영원할 것이

순간적인 단맛으로 전락해 버릴까봐서

거리마다 술집마다 아우성치는 삼 사류로

오염될까봐서

'사랑한다

참 뜨거운 이 한 마디를

입에 담지 않는거다

참고 참아서 씨앗으로 영글어

저 돌의 심장 부도 속에 고이 모셔져서

뜨거운 말씀의 사리가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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