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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우, 비 온 뒤에
눈부셔라
그대 반짝이는 풀잎을 밟고
비 그친 강둑길 굽이돌아
오는 이
잔잔한 물 위에
긴 그림자 드리우며
나란히 선 버드나무숲을 지나
손뼉치며 오는
그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구나
문정희, 고독
그대 아는가 모르겠다
혼자 흘러와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처럼
온몸이 깨어져도
흔적조차 없는 이 대낮을
울 수도 없는 물결처럼
그 깊이를 살며
혼자 걷는 이 황야를
비가 안 와도
늘 비를 맞아 뼈가 얼어붙는
얼음 번개
그대 참으로 아는가 모르겠다
이상국,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다
벌써 오래 되었다
부엌 옆에 마구간 달린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마당도 굴뚝도 없는 아파트에 와 살며
나는 그게 자랑인줄 알았다
이제는 그 부드러운 풀이름도 거반 잊었지만
봄 둑길에 새 풀이 무성할 때면
우리 소 생각난다
어떤 날 저녁에는
꼴짐 지고 돌아오는 아버지 늦는다고
동네가 떠나갈듯 우는 울음소리도 들었다
이제는 그 소도 아버지도 다 졸업했다고
이 도시의 시민이 되어 산지 오래인데도
우리 소 잘 먹던 풀밭 만나면
한 짐 베어지고
그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윤동주,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김은숙, 늦눈에게
입춘 지난 이월 하늘
흩뿌리는 늦눈이여
너는
내 무거운 우울을 닮았구나
산과 강과
마을 여는 길들까지
온 몸 정갈한 구원
하늘길로 닿을 때
빛 지는 그 너머
어두움 바라보며
꽃잎처럼, 숨결처럼
처연히 피어나서
아득한 세월의 몸짓
고요처럼 하강하는
빛나는 내 우울을
닮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