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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자, 가장 쓸쓸한 일
아아, 쉬임없이 흐름으로써 우리를
고문하는
잔인한 세월이여
너를 죽여 모든 생활을 얻은들
모든 생활을 죽여 너를 얻은들
또 무엇하리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 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박목월, 사투리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
김시천, 가끔 쉬어 가는 자리에
가끔 쉬어 가는 자리에
나무 한 그루 있으면
좋겠네
그 그늘 아래
작은 돌 하나 놓여 있어
문득 머물고 싶은
늘 그러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가끔씩이라도
아주 가끔씩이라도
산 밑 주막에 피어오르던
구수한 저녁 연기 같은
그런 사람 하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
도종환, 똑같은 새를 보며
아름다운 목소리 지닌 새도
그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나오는 부리로
필사적으로 벌레를 잡아먹는다
고고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날아가는 새들도
물가에 내려 비린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진흙탕에 발을 딛고
날개와 깃털에 온통 흙물 묻힌 채
먹을 것을 찾는다
그러나 똑같은 그 새들을
오늘 다르게 본다
거친 털에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벌레를 잡아먹어가면서도
저 새는 저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구나
온몸에 흙탕칠을 하며 먹을 것을 구하던
새들도 저리 환하게 날개를 펼쳐들고
하늘 한가운데 다시 날아가는구나
제 하늘 제 소리를
저렇게 지켜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