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 있는 것들은 꺼내야겠기에 여자애들의 텐트에 들어갔다 나온 이번 미팅에서 ‘꽝’을 맞은 민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암만 급해도 가시나들 꺼는 안 건드리는 게 맞겠다. 이 가시나들 완전히 개판이네! 머 이런 가시나들이 다 있노?”
“와?”
“니도 드가가 함 봐라. 가시나들 빤쓰하고 부라자 우째 해놨는공.”
들어가 보니 기가 막혔다. 수영복이며 팬티, 브래지어들이 벗은 그 자리에서 산 채로 박제가 되어 수줍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자기 주인들을 부끄러워하는 듯 했다.
텐트 두 개가 똑 같았다. 아니, 여자애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런 것들은 치워 둬야 되는 게 아닌가? 한편으로는 텐트를 열어봤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쁠 수도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팔선녀들의 짐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더는 기다리면 안될 것 같았다.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용감한 것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인가?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서 대낮이 되도록 자느라고 팔선녀들은 오지 않고 있었다.
팔선녀들과 사랑에 빠진 넘들은 안타까웠겠지만 남은 음식들을 버리고, 설겆이를 했다. 지금은 그녀들에게 밥을 먹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 봉필이, 철규, 상규, 민호는 솥과 그릇들을 갖다주러 상규의 외갓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면서는 팔선녀들도 끌고 와야 했다.
그런데 아뿔싸! 절반 정도 갔을까. 팔선녀들이 울면서 뛰어오고, 그 뒤로 어제 그넘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강의 장면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ㅇㅇㅇ들이 우리 ㅇㅇㅇ 놨어! ㅇㅇㅇ들!”
숙자가 악을 썼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슨 물건처럼 팔선녀들을 우리에게서 넘겨 받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넘들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따라오면서 추행을 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도망가는 여자애들을 쫓아오기까지 하는 미친넘들이었다. 대낮에 말이다.
말릴 여가도 없었다. 시봉넘들이 들고 있던 것들을 팽개치고 튀어나갔다. 그넘들은 우리가 그렇게 나올 줄 몰랐던 것인가, 삽시간에 전부가 바닥에 나딩굴고 있었다.
내가 곧바로 뜯어말렸지만 시봉넘들은 한참이나 더 분을 풀었다. 그넘들은 하나같이 다리를 절뚝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절마들 다시 올 거 알제?”
봉필이가 아직도 씩씩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도 싼 넘들이었고, 이왕 벌어진 일이었다. 원망한다고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최대한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했다.
나는 팔선녀들을 데리고 텐트로 향하고, 봉필이와 셋은 상규의 외갓집으로 갔다.
그넘들이 다른 넘들을 끌고 오는데 걸릴 시간을 계산했다. 이제 우리가 연습이라곤 안하고 싸우는 센 넘들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았을 테니 적어도 다섯 명은 더 데리고 올 것이었다. 아니, 열 명을 더 데리고 올 수도 있었다. 어디에서 대기하고 있지 않다면 다섯 명을 동원하는데도 1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팔선녀들을 채근하고 우리도 거들어 그녀들의 텐트를 걷었다. 그녀들의 속옷에 대해서는 농담으로라도 말하고 싶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짐을 꾸리는 것을 끝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봉필이와 셋도 헐레벌떡 도착했다. 모두 가방을 둘러멨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상필이가 안다는 샛길로 가서 시내버스를 타면 안심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솔밭을 벗어나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임마들이 어디로 토낄라 카노?”
돌아보니 조금 전에 시봉넘들에게 얻어맞은 대장이란 넘과 스물 네다섯쯤 돼 보이는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서늘한 기운과 함께 소름이 확 끼쳐 왔다.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사내가 바로 염려했던 그 절대고수라는 것을.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에, 살기로 번뜩이는 눈, 막 출소한 것 같은 짧지만 더부룩한 머리, 권투선수 같은 다부진 체형의 사내가 우리를 손으로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다. 봉필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팔선녀들도 무슨 눈치를 챘는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사내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우리를 다 죽이고도 남을 것 같았다. 이제 우리의 생살여탈권은 온전히 그 사내에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