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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IdsQf3xhD3s
김지녀, 물체주머니의 잠
보이는 것을 집어삼키기 위해
내 몸의 절반은 위가 되었다 가끔
헛배를 앓거나
묽어진 울음을 토해냈지만
송곳도 뚫고 들어올 수 없는 내벽의 주름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굶주린 항아리처럼 언제까지나 입을 벌리고 있다
안쪽으로 쑥 손을 넣어 악수하고
손끝에 닿는 것들을 위무하고 싶은 밤
나는 만질 때에만 잎이 돋는 나무 조각이거나
따뜻해지는 금속에 가깝다
오늘 내 안에 꽉 들어찬 것은 희박하고 건조한 공기
기침을 할 때 튀어나오는 금속성 소리
날카롭게 찢어진 곳에서, 푸드득 날아간 새는 기침의 영혼인가
한 문장을 다 완성하기도 전에
소멸하는 빛과 밤, 사이에서
나는 되새김질을 반복했다, 반복해도
소화되지 않는 나의 두 입술
밧줄처럼 허공에 매달린 나는 공복중이다
사물들의 턱뼈가 더욱 강해진다
안명옥, 낙엽
내게 남은 삶은
바닥이다
때 이르게 바닥에 떨어지고
대책 없는 마음 내려놓는다
견디다가
더러워지다가
가을이 저물어가듯
내 생도 저물어 간다
붉은 것은 아래로 비상하다
바닥에 떨어져 비로소 핀 꽃
오늘도 삶 하나
또 바닥으로 내려왔다
바람들 신이 났다
하순희, 독백
밤마다 자정이면
내게로 향한 주문
열려라 참깨
열려라 참깨
내일은 더 나으리라
하늘 문을 여닫는다
박영교, 말로(末路)
돌로 치는 이 누구인가 넌 그것으로 족하다
소금 끼 없는 말로 등 뒤에서 비수를 꽂고
돌아서 아무렇지도 않는
웃음 흘리고 있구나
지독히 아플수록 말없는 나의 표정
골백번 용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
바람찬 허기를 말리며
홀로 고독을 만들고
아무도 얼씬 않는 그들 주변의 공기
하나하나 탄로 나는 골 아픈 이야기 속에
이제는 두 손 다 털고
일어설 때도 됐는데
김제현, 보이지 않아라
보이지 않아라
바라볼수록 보이지 않아라
하늘과 땅 아득하여
보이지 않아라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들 보이지 않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