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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였던 정렴(鄭磏 1506~1549년)은 자신의 호(號)인 북창(北窓)을 붙인 정북창(鄭北窓)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그는 유교 뿐 아니라 도교에도 관심이 많아 뛰어난 예언자라고 명성이 자자했는데, 1873년 서유영(徐有英 1801~1874년)이란 사람이 쓴 야담집인 금계필담(金溪筆談)에 실린 정북창의 일화를 소개해 봅니다.
금계필담에 의하면 정북창은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할 수 있었고, 어린 시절에도 세상 일에 밝아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선’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는 조선의 인종(仁宗 1515~1545년) 임금이 죽고 나자, 벼슬에는 관심을 끊고 오직 도술과 신선에 대한 공부만 하며 지냈습니다.
정북창은 어릴 적부터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 중에는 윤춘년(尹春年 1514~1567년)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윤춘년은 나이 마흔이 되도록 과거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백수로 지냈는데, 그러다 보니 조바심이 생겨 자주 정북창을 찾아가 “도대체 내 운수는 언제나 좋아지겠는가?”라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정북창은 윤춘년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만 지켰습니다.
그러다가 섣달 그믐날 밤에 윤춘년은 정북창을 찾아와서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언제 좋아질지 알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정북창은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자네는 내년에 죽게 될 걸세. 그래서 내가 자네한테 대답을 안 해준 거라네.”
1년 후에 자기가 죽는다는 말에 겁이 난 윤춘년은 “그러면 혹시 내가 살아날 방법은 없는가?”라고 물어보았고, 정북창은 다시 대답해 주었습니다.
“자네가 살기를 원한다면 방법이 있기는 하네. 다음 날 새벽에 한양의 남대문으로 나가서 약현(藥峴 서울시 중구 중림동)에 있으면, 노인 한 명이 소를 몰고 올 걸세. 그러면 그 노인한테 자네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을 해보게. 그 노인이 자네한테 욕을 하고 때려도 결코 포기하면 안 되고, 끝까지 매달려 자네 목숨을 살려 주겠다는 말을 받아내야 하네.”
윤춘년은 정북창의 말을 믿고 새벽녘에 얼른 남대문을 통과해 약현으로 갔습니다. 놀랍게도 정북창의 말처럼 소를 몰고 오는 노인 한 명이 나타났습니다. 이에 윤춘년은 재빨리 그 노인의 앞에 엎드려서 “어르신, 저의 목숨을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노인은 윤춘년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다가, 윤춘년이 계속 빌자 짜증을 내며 욕을 퍼부었습니다.
“내가 무슨 수로 너를 살려준단 말이냐? 허튼 소리 하지 말고 썩 비켜라!”
그러자 윤춘년은 얼른 노인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서 “어르신이 아니면 저는 죽습니다.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어 살려만 주십시오!”라고 애걸을 했습니다. 이에 노인은 화를 내며 “너는 아무래도 미쳤나 보구나? 그러면 더 말 할 필요가 없지!”라며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윤춘년을 심하게 때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맞아도 윤춘년은 노인에게 계속 매달려 목숨을 빌었고, 노인은 남대문까지 가는 도중에 윤춘년을 계속 때리다가 어느 순간 매질을 멈추고 윤춘년한테 말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나오는 건 다 정북창이 시켜서 한 일이겠지? 그렇지 않느냐?”
윤춘년이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묻자, 노인은 “그자가 아니면 나한테 목숨을 살려달라고 비는 녀석이 나올 리가 없지. 네가 이렇게 간절히 원한다면, 내가 너의 목숨을 늘려주마. 정북창의 수명 중 절반이 너의 수명이 될 것이고 그러면 너는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을 하더니, 소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신기한 광경을 직접 본 윤춘년은 정북창을 찾아가서 자신이 본 일을 말하며, “그 노인은 대체 누구였나?”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정북창은 “그 노인은 매년 1월마다 지상에 내려와 모든 사람들의 수명과 운명을 관리하는 신(神)이라네. 그한테 빌어서 자네의 목숨이 늘어난 걸세.”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제야 노인의 정체를 알게 된 윤춘년은 납득을 하면서도 “그러면 앞으로 내 운명은 어떻게 되겠나?”라고 물었고, 이에 정북창은 “자네는 원하는 대로 수명을 늘렸고, 앞으로의 일도 잘 될 걸세. 자네는 올해 봄에 열리는 과거 시험에 합격해서 1품 벼슬까지 할 걸세.”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북창의 말처럼 윤춘년은 과거에 합격해서 예조 판서의 벼슬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정북창 본인은 그 해에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수명을 친구한테 떼어주어 오래 살게 해준 일은 아마 정북창이 삶과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죠.
출처 | http://blog.daum.net/timur122556/1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