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놈은 내가 거친넘들하고 계속 어울리다간 자칫 인생행로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잘못 엮여서 큰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원에라도 한번 갔다오면 정말 깡패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도 사실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어디 갈 때면 옷을 갈아입는다는 핑계로 일부러 더 늦게 나가곤 했던 것이다. 내 패션감각은 그것 때문에도 유용했다.
그런데 뽕브라더스 시봉넘들이 여름방학 때 4박 5일 일정으로 상규의 외가가 있는 남해안의 어느 마을에 가기로 5월부터 계획을 잡은 것이었다. 나는 거기가 얼마나 멋진 곳이며, 차비와 텐트만 갖고 가면 저의 외갓집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된다고 큰소리치며ㅡ큰 배가 두척이나 있는 부자집이라고 했다ㅡ 떠드는 상규넘을 패버리고 싶었다. 무포 인근도 아니고 남해안까지 가면 어쩌자는 것인가. 이 사고뭉치들과 함께. 시봉넘들은 틈만 나면 모여서 무슨 해방구를 찾아가는 난민들처럼 들떠서 떠들었다. 나는 그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걱정한다고 될 일인가.
시간이 흘러서 드디어 해방구(?)로 출발하는 날이 왔다. 나는 솔직히 도망을 가버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마땅한 핑계가 없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터미널로 갔다. 누가 깨우지 않으면 해가 중천에 올 때까지 자는 넘들이 약속시간인 7시가 멀었는데 모두 터미널에 나와 있었다. 그만큼 좋아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며칠 전부터 거기에 가서 절대로 누구와도 싸우지 말 것을 봉필이를 비롯한 멤버들 모두에게 다짐에 다짐을 받았지만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4시간이나 걸려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목적했던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나는 크게 안심했다. 상규가 이야기했던 대로 거기는 해수욕장이 아니었다. 백사장이 10여 미터가 좀 넘어보이는, 양쪽이 바위와 둔덕으로 가려져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었다. 뒤로는 솔밭이었다. 여기라면 사고 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찾아올 장소가 아니었다.
상규가 자랑하던 대로 과연 멋진 곳이었다. 작은 바위섬들이 정다운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오고, 바다는 끝 간 데를 모르게 푸르고, 크고 작은 파도는 쉬임 없이 밀려왔다. 우리 학교에서도 20분만 걸어가면 바다였지만, 이 바다는 그런 바다가 아니었다.
우리는 짐만 백사장에 던져 놓고 바다로 뛰어들어 함성을 지르고, 물싸움을 하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불안을 벗어던진 내가 제일 좋아하자 애들은 처음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물을 먹이려고 덤벼들었다. 여럿이서 한 넘을 들어 물속에 던지기도 하고, 숨 오래참기도 하면서 배가 고플 때까지 놀았다.
텐트를 친 우리는 동길이만 남겨 놓고, 한참 떨어진 상규의 외갓집으로 향했다. 그 집은 과연 부자집이었다. 2층 양옥집에 커다란 냉장고도 있었다. 텃밭도 엄청나게 넓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이 다 있었다.
상규의 외조부모들이 우리를 반겼다.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외손은 큰손님이라는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던 때이기도 했지만 외손자가 왔다고 저렇게 좋을까 싶었다. 이미 공부를 포기한 상규넘의 손을 꼭 잡은 상규 외할머니가
“니가 그래 공부를 잘하니 느그 엄마 아부지는 얼매나 힘이 나겠노!”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해 할 때, 우리는 전부 고개를 돌리고 키들키들 웃었다.
특히,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후덕한 인상의 상규의 외숙모는 고생하지 말고, 삼시 세끼를 집으로 와서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냥 해보는 말 같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캠핑하는 재미가 없다면서 극구 사양하고, 매운탕용으로 손질해 놓은 생선과, 양념과 채소, 쌀과 솥, 그릇들을 들고 텐트로 돌아왔다.
일사천리로 솥을 걸고, 나무를 모아오고, 밥을 짓고, 매운탕을 끓였다. 누구 하나 꾀 부리지 않았고, 전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완전한 일체감을 맛보았다. 우리의 우정은 한뼘이나 깊어지고 있었다. 있는대로 막 넣어서 끓인 매운탕은 천상의 맛이었다. 거기다가 우리는 무쇠라도 먹으면 녹일 나이였다.
정말이지 그날은 밤새도록 신나게 놀았다. 바다에 뛰어들어 몸을 식혀가면서 광란의 밤을 보냈다. 내가 창주형에게 빌려간 기타와 준섭이가 갖고온 야외전축이 망가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였다. 내 어설픈 기타에 맞춰 롹커 흉내를 내면서 멱을 땄으며, 여분으로 사 간 건전지가 다 닳을 때까지 몸부림으로ㅡ그 몸짓들은 도저히 ‘고고‘와 ‘디스코’라 할 수 없었다ㅡ 우리의 10대를 찬양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낮이 될 때까지 잤으며, 다시 상규의 외갓집에 가서 상규의 외숙모가 준비해 둔 회와 반찬거리와 쌀을 얻어서 텐트로 돌아왔다. 회가 얼마나 많은지 배가 터지도록 먹었는데도 먹은 것보다 남은 것이 더 많았다.
너무 좋았다. 낙원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없지, 먹을거리와 놀거리는 충분하지, 뭐 걱정할 일이라곤 없었다. 그 팔선녀들이 나타나기 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