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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마드모아젤 사강 (14) ㅡ19금 절때로 아님.
게시물ID : lovestory_896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86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3/13 18: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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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연재》
 아듀, 마드모아젤 사강 14 



 그래도 공부를 영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실컷 놀다가도 시험 며칠 전부터는 밤샘을 하다시피 했다. 덕분에 중간고사는 상위권이었다. 거기엔 공부하는(시험 치는) 요령도 한몫을 했을 것이었다. 

 공부 잘하는(시험 잘 치는) 넘들의 특징은 침착해서 아는 것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부 못하는(시험 못 치는) 분들의 특징은 아는 것도 적지만, 그나마 아는 것도 틀린다는 것이다. ‘맞는 것은?’ 이라는 질문을 ‘아닌 것은?’ 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지만, 10번 문제의 정답을 7번에 적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모르는 문제가 워낙 많아서 일단 비워두고 뒷문제로 넘어갔다가 막바지에 답을 옮겨 적는다는 것이 그만 시간이 촉박해서 허둥지둥하다가 발생하는 일들이었다. 시험을 치를 때, 침착을 유지하는 것도 실력인 것이다. 공부 못하는 분들에게 시험이란 안 그래도 못하는 공부를 더 하기 싫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 십상이었다. 공부만큼 빈익빈 부익부가 심한 것도 없을 것이었다.  

 법칙을 이해해야 되는 과목을 뺀 암기과목들은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평소에 완전하게 외우고 있지 않다면 방금 본 것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게 훨씬 쉽다. 그리고 긴가민가한 것은ㅡ대개 전혀 공부를 안 한 것은 4개의 답이 다 헷갈리지만,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문제는 보통 4개의 답 중에 2개가 헷갈리게 돼 있다. 2개 중의 1개가 정답이라는 말이다. 그럴 때 나는 전부 일괄적으로ㅡ아니, 평생 치른 각종 시험에서 일관되게 앞번호만 찍었다. 그러면 확률적으로 절반은 맞는 것이었다. 연필을 굴리거나, 이것저것 저것이것 요래조래 조래요래 막 찍으면 억세게 운이 좋으면 다 맞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라지게 재수가 없으면 다 틀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수학을 배우는 학생이 취할 태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사술들이 어떻게 오래 가겠는가. 날이 갈수록 과목은 점점 어려워지고, 공부를 하는 넘들은 더 열심히 하는데. 나는 공부라고는 안 하고 놀기만 하는데. 

 1학기 기말고사는 염려했던 대로 성적이 말이 아니었다. 반에서 20등이 겨우 될까말까였다. 성적표가 나오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사태를 일단 수습해야 했다. 그건 자수하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우편으로 보낸 성적표가 도착하기 전에 자수했다. 

 무섭긴 했지만 이런 건 아버지와 직접 이야기해야 했다.   

 “아부지요. 내 이번에 꼴뜽했니더.” 

 “머라꼬?”

 나는 더 과장해서 꼴찌라고 말했다. 내가 어떤 공주님처럼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유체이탈화법으로다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자, 아버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알아들은 엄마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이소.” 

 “일마야, 머가 걱정하지 마라 말이고?” 

 내가 자신있게 한 마디를 더 던지자 아직도 상황파악이 덜 된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중학교 때 선샘들이 실력이 없어가꼬 내가 기초가 약하다 아닙니꺼? 기초 다시 다진다꼬 한 발 늦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이소. 학교하고 내하고 진도가 안 맞아가꼬 성적이 이렇다꼬요.”

 “종내기 니 거짓말하는 거 아이가? 중학 때 공부 그만큼 잘했는데 기초가 약하다는 게 말이 되나?” 

 아무런 죄도 없는 중학교 선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데 어느새 머리방에서 건너와 옆에서 듣고 있던 막내누나가 낼름 끼어들었다.

 “공부도 몬하는 누부야가 머 아는데?”  

 나는 누나에게 핀잔을 주어 버렸다. 아무리 미워도 공부로 무시하는 건 아닌데 싶어 내 마음도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내가 공부를 하나도 안 해서 그렇게 됐다는 걸 알았다간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지도 몰랐다. 

 누나는 한참을 노려보더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사실은 영 꼴뜽은 아니고요. 한 20등 밖에 못했다꼬요.“  

 내 말에 아버지와 엄마는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의 충격요법이 제대로 먹힌 것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내 성적에 대해서 어떻게라도 야단을 좀 쳐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래, 우리 성오가 영 꼴뜽하고 그랄 아가 아니지!”  

 엄마는 내 손까지 덥석 잡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한번 했다. 그나마 안도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학교 성적은 우째 되든동 신경쓰지 말란 말입니더. Y대 목표로 공부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이소.“

 G대 근처에도 못 갈 성적으로 나는 Y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니라머 그 학죠 가고도 남을 끼다! 우리 성오가 공부를 얼매나 잘하는데. 성오 아부지요. 우리 성오 하는 말 들었지요?”  

 엄마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버지도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헛기침은 좋아하는 표정을 감추려 할 때 아버지가 하는 바디 랭귀지였다. 나의 큰소리는 불쌍한 엄마와 아버지를 위태로운 행복에 부풀게 만들고 있었다. 내 마음은 더 무거워졌고.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1학년 1학기는 무사히(?) 지나가고 있었다. 


   ㅡ15편으로 넘어갑니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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