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be6Txn1t7Kg
김광기, 들고양이 유모차
엄동설한의 찬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늦은 밤 도로가에 무더기, 무더기 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부서진 유모차에 폐지나 종이박스를 올려놓고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횡단하거나
좁은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그녀였다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를 퀭한 눈
리듬도 없고 감정도 없는 거북이걸음
어느 날은 폐지를 가득 실은 낡은 유모차를
내 발치에 세워서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그녀이다
아슬아슬한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에도
무섭게 다가오는 자동차보다는
그 걸음이 더 위태로워 보이는 여자이다
바짝 다가서서 보면 행상에 지친
지난날의 내 어머니를 읽게 해주는 여자
신호등 옆에 쌓인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검은 비닐봉지들을 뒤지며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폐지가 아닌 듯하다
대부분의 삶을 거리에서 보내는 그녀가
더듬더듬 촉수를 움직이자
용도 폐기된 것들이 낡은 유모차에 실리고 있다
권혁웅, 처마 아래서
겨울비가 손가락을 짚어 가며 숫자를 센다
더딘 저녁, 누군가를 오래 세워 둔 적이 있었나
여러 번 머뭇거린 뒤꿈치가 만든
뭉개진 자리가 나란하다 창밖을 서성대던
들쑥날쑥한 머리통들 가운데 몇몇이
어느새 방 안에까지 들어와 있었나
검게 엉킨 실타래들을 풀지 못해
한 벌 수의도 지어 주지 못했나
나 간다 이번엔 정말 간다고
카운트다운을 하는 겨울비, 반에서
반의 반으로 다시 반의 반으로
끊임없이 숫자를 줄여 가는 저 겨울비
김찬순, 내 마음 내려놓고
갈 곳도 모르고
떠도는 한 조각구름처럼
중년의 갱년기
살며시 찾아오면
내 마음 내려놓고 기도했다
새처럼 날고 싶은
자유로운 무색의 마음
시들어 가는 꽃 한 송이 연출해 보며
찾아온 중년의 위기
내 마음 쓸쓸해 기도했다
인생의 지나가는 정거장
나만 힘들어 하나
무게에 못 이겨 살며시 기대본다
그래도 버거워
내 마음 비우려 기도했다
김윤숙, 섬머리 사수포구
아직도 끝나지 않는 노래가 있었네
삼양바다 검은 모래 찜찔하던 할머니
그 모래, 사수포구로 와 허물고 다시 쌓네
할머니 반야심경 오늘은 내가 듣네
정광사 연등같이 귀 밝은 저 집어등
불 꺼진 포구에 돋는 그리움의 두드러기
신 새벽 도두봉에서 그 후렴구 다시 듣네
몇 백마일 해역에서 당기는 장미꽃같이
뱃고동 몇 다발 꺾어 공판장에 부치네
당신의 무릎사이 나를 품어 키웠던
외손잡이 고집만큼 어선 몇 척 키운 이곳
할머니 은비녀 하나, 수평선에 세우네
장석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켜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