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은 지금 정도만 살아간다면 이혼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정도로 그럭저럭 만족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한 여섯 달쯤 지났을까...?
하루는 남편에게서 친구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왔다.
[오늘 친구 아버님 상 당하셨네.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먼저 자.]
[누구?]
[당신은 잘 모르는 고등학교 동창 녀석인데 무척 친했던 친구라 쉽게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또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술도 한잔할 것 같고 금방 못 일어날 것 같아.]
[알았어. 내일 출근 하려면 피곤할 텐데 너무 늦지는 말고...]
[그럼, 그럼.]
그렇게 시작한 문자는 이틀이 멀다 하고 날아왔다.
[오늘은 부장님 장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바로 직속 상사라 늦게까지 있어야 할 것 같아.]
미영은 아무래도 너무 자주 누군가가 돌아가시는 것 같아 몇 번째 이런 문자가 왔나 빠르게 세어봤다.
[이번 달 벌써 여덟 명이나 돌아가시네?]
[그러니까, 나도 부조금도 많이 나가고 힘드네...]
[할 수 없지, 알았어. 저번처럼 너무 늦지는 말고...]
[그럼, 그럼. 먼저 자. 기다리지 말고...]
[이상하게 당신이 들어오지 않으면 잠이 잘 안 와. 남들도 그렇게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나?]
[일찍 가는 놈들도 있지만, 경사도 아니고 애사에 그런 놈들은 싸가지가 좀 없는 이기적인 놈들이지.]
[좀 이기적일 필요도 있는데... 그렇게 계속 못 자면 피곤하지 않아?]
[피곤해도 할 수 없는 거야. 남자가 직장생활 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야. 당신은 집에만 있으니 사회생활을 뭘 알겠어?]
[내가 왜 집에만 있었어? 나도 3년 정도 한 살림에서 근무했었잖아.]
[그게 직장이야? 언제라도 그만둬도 되는 알바 하고 직장하곤 엄연히 다르지.]
[알았어. 그 말이 아니야. 집에만 있었다는 말을 강조하는 것 같아 기분이 잠시 상해서 나온 말이야.]
[올해 아버지 회갑인데 부모님 유럽 여행이나 좀 시켜 드리고 싶은데 내가 돈이 없어서 아들 노릇을 못 하네.]
[유럽 여행? 두 분을 유럽 여행 보내 드리려면 이래저래 하다 보면 7~8백만 원은 있어야 할 텐데?]
[그렇겠지.]
[돈 있어?]
미영은 놀래서 물어봤다.
[내가 돈이 어딨어?]
[그럼, 무슨 돈으로 보내드려?]
무슨 돈으로 보내 드리자고 말하자 한참 동안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미영은 기분이 나빠졌다. 집에 생활비도 주지 않아 친정엄마가 주는 돈으로 간신히 먹고만 살고 있는데 부모님 유럽 여행을 보내 드리고 싶다면서 돈이 없다니 미영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보자]
[뭘?]
[집에 생활비도 안 내놓으면서 봉급 받아서 다 뭐하고 돈이 없어?]
[이번 달 애사만 있었던 게 아니야. 경사도 있고 애 경사 비에다 왔다 갔다 기름값까지 200만 원 정도 나갔어. 출퇴근 기름값에 담배 값에 점심값에 내 용돈 쓰고 하다 보면 모을 게 어딨어?]
[그렇다면 우린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나도 친정엄마한테 타다 쓰는 거 이제 눈치 보여.]
남편은 곤란한지 문자에 대답이 없다.
문자가 답이 없자 답답해서 전화를 걸었다.
“나야, 우리 말 나온 김에 이 문제 짚고 넘어가자.”
“무슨 말?”
기혁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집에 생활비도 못 내놓으면서 남들 애경사는 전국 어디고 쫓아다니는 거 좀 문제 있는 거 아냐?”
“나도 쫓아다니는 거 힘들어. 누군 좋아서 하는 줄 알아? 직장생활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고...”
“직장생활! 어려운 거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남들도 다 이렇게 살까?”
“나 여기 지금 직장이야. 그런 얘기는 나중에 집에 가서 얘기해.”
남편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미영은 간신히 걸어온 6개월간의 살얼음판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답답했다.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행복을 유지하려고 미영은 그동안 생활비 얘기도 못 하고 친정엄마 집에서 이것저것 갖다 먹으며 근근이 살고 있었는데 도대체 생활비는 줄 생각을 하지 않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듯 답답했었다.
신혼 초부터 거의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집에 생활비를 한 푼도 내놓지 않으면서 직장생활의 노고만 들먹이니 미칠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직장생활은 남편 혼자 하는 것처럼 말을 하니, 앞으로 이 문제는 해결이 될 것 같지가 않자 속이 얹힌 것처럼 더부룩 답답해 왔다.
그렇다고 어디다 말한들 해결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남편과 부부 상담 클리닉이라도 가보고 싶었지만, 그런 말이 씨가 먹힐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자,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높은 시멘트벽이 딱 버티고 있는 상황의 가위를 눌린 것처럼 미영은 숨이 막히고 힘이 들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갑자기 진우가 떠올랐다. 아내가 있는데도 장을 직접 보는 자상한 진우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동안 사실 수시로 생각나고 보고 싶었지만, 가정의 행복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쓰며 전화 통화 한 번 하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진우의 목소리가 불현듯 듣고 싶었다.
핸드폰에서 진우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손만 한 번 까딱 누르면 연결이 될텐데 떨리고 두려웠다.
‘만나서 불같은 섹스를 한다고 해서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미영은 다시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수건을 죄다 꺼내 삶았고, 이불이니 침대보니 죄다 꺼내서 세탁기를 돌렸다.
바쁘게 움직이며 진우를 잊으려 했을까? 잊으려고 아무리 몸을 움직이고 몸이 녹초가 되도록 집안을 닦고 또 닦아도 진우가 보고 싶었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진우의 목소리였다.
미영의 눈에서 갑자기 툭, 하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보세요? 전화 거셨으면 말씀을.... ”
발신자가 아무 말이 없자 끊으려던 진우는 혹시나? 싶었는지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대며 말했다.
“혹시...?”
“저 미영이에요.”
다음 회에서 만나요.
오늘은 3월 10일 하루종일 봄비가 내리네요.
이 비로 코로나 바이러스도 같이 씻겨 내려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갑자기 비가 내리자,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를 불러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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