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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sk7v3YvIxfc
이경옥, 먼지 법
먼지가 될까, 먼지나 되어 볼까
가진 것 다 버리고, 버릴 것 다 버리고
철저히 부셔져내려
아주 작고 투명한
먼지로 날아볼까, 먼지처럼 날아볼까
아무도 기억 않을 세상의 괄호 밖을
이 세상, 날개란 날개 죄 달고
체중 없이 날아볼까
도리 없이 무너지고, 무너지며 일어서고
스스로 하강하는 법, 세월 속에 쌓이는 법
티끌도 되지 못하는
먼지 법으로 깨쳐볼까
이경옥, 별이 뜨는 방
젖은 눈의 별 하나가
들 창가에 머뭇댄다
어느새 문틈으로 미끄러진 그 눈빛이
지금 막 충전을 끝낸 휴대폰을 울린다
자동응답 목소리로
술렁이는 하늘 쪽방
꼭꼭 지른 일상들을 네 품에다 털어내면
하나 둘 스치는 얼굴 문 밖에는 먼 발소리
잊지 못할 옛일들은
이 밤 모두 별로 떠서
아무도 모르라고 고즈넉이 기울지만
깨어져 아픈 몸짓만 방 안 가득 흥건해라
신필영, 마른 강을 건넌다
잠시 멈춰서야 잘 보이는 길이 있다
오고가는 언약들의 횡단보도 이쯤에서
보낼 것 다 보내도록 촉수 접고 서는 자리
완강히 막아서며 희게 지른 빗장들은
서툰 발길 옮겨주는 징검다리 되는구나
붉었던 순간의 일들이 푸른 등에 풀려나듯
허락된 말미로는 아무래도 넉넉잖아
산란기 어족처럼 번득이는 저 눈빛들
가늠할 겨를도 없이 마른 강을 건넌다
이위발, 그곳에 가면
그곳에 가면
물처럼 잡히지 않고
때론 부드러워
미끄러지는 바다가 있다
가슴을 열면
팽팽한 가야금 현이 되어
돌처럼 무겁던 귀가
어느새
동백꽃으로 열리고
내가 만났던
많이 사랑한
조금 사랑한
파도를 닮은 사람들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떠돌이 개
갈매기를 삼킬 듯이
솟아오르던 붉은 등대
청어처럼 누워있던
등 푸른 방파제
적당한 바람과 넉넉한 햇살로
소설 속의 첫 문장처럼
잘 버무려진
그곳에 가면
아직도 마지막 여분의
미소가 남아 있다
임승유, 주유소의 형식
나는 네모의 형식
팔다리를 접어 울음을 가두고 길가에 앉아 있다
누군가 지나가다 툭, 친다 해도 괜찮아
그건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점
사람들이 가벼워진 연료통을 끌고 와 줄을 섰다
견고한 내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싱싱한 울음을 채운 사람들이
끌고 온 길을 접으며 달려 나갔다
말하자면 나는 바깥에서부터 흩어지고 있었는데
막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여자의 손가락 사이로
울음이 삐져나오고 있다
멀리 보냈던 울음들이 활활 타오르며 옆구리에 달라붙고 있다
내부를 향해 몰려드는 바깥들
우린 언젠가 같은 종류의 울음을 나눠 가진 적이 있고
출렁이는 울음을 만지작거리며
달릴 수 있는 만큼 달렸다
갈 데까지 가서
울음은 바닥이 나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럴 때 우리는
길가에 웅크려 앉은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