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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명에 관하여 그레고르님의 댓글에 답변드립니다.
게시물ID : history_89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4
조회수 : 59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5/10 16:14:10

시작은 진지는내컨셉님의 글에서 시작이 되었으며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8843&s_no=8843&page=3

본문의 원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8845&s_no=8845&page=3


 그레고르 (2013-05-09 20:31:52) (가입:2012-12-15 방문:96)   추천:0 / 반대:0               IP:211.40.***.223  
tetraisol님, 성의있는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가 알고있는 사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셔서 좀더 확인하고 답변 드리느라 늦었네요.

1. 맞습니다. 일본은 모르겠고 중원이나 시베리아에서도 잘 발견 됩니다. 그런데 혹시 사진은 찾아서 보셨는지요? 비슷한 연대의 다른지역에서
발견되는 옥귀걸이는 여러 장식이 새겨진 형태이지만 홍산이나 국내에서 발견되는 옥 귀걸이는 아무 장식, 음각등의 무늬없이 깔끔한 형태 입니다.
그러한 가공 방법등에서 연관성을 찾은 것입니다.
웅룡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의 형상이 있는 옥기가 발견되었다는 점은 인정 합니다.

2. 치가 춘추전국시대 무렵에 발생하였다고 한것은 중국측의 주장입니다. 그 주장은 중원 한족의 건축양식을 따랐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부분을 따랐다는 근거가 불충분합니다. 또하나의 주장은 전국시대 묵자 "비제"편, "비고"편에 나오는 "행성"이 치를 말한다 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는
묵자가 그러한 축성을 하였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제자가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중원에서 발견된 최초의 치는 조광윤의 북송시기의 성곽입니다. 그 이후의 중원의 성곽에 치가 많이 발견되고 있고, 그 이전에 중원 성곽에서
"치"가 발견된 사례는 없습니다.(제가 조사한 바이니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홍산 성곽의 치는 일반적인 치처럼 각진 형태가 아닌 둥근 형태의 곡성입니다. 물론 곡성도 치로 분류되고 한반도민족의 성곽등에도 나타납니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성곽모양 이라기에는 너무 형태가 확연합니다.

3. 이것은 제가 실수한듯 합니다. 정확한 출처 혹은 주장한 학자, 출토 사진이 나오지 않은 내용이므로 근거로 말씀드리기 힘들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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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을 가공한 장식품이나, 석조 성곽이나 문화의 유사성 만으로 연관관계를 점치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행동이다" 라고 하셨는데

너무 극단적인 결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옥가공 방식은 그만큼 그 수요자들이 선호하여 많이 만들었고 장인들도 익숙한 방식이므로

그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더라도 동일한 혹은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 하는 것은 당연 합니다. 성곽 축성술도 마찬가지이며 덧붙여서

전술개념에도 접목되어 그들이 이주하더라도 혁신적인 전술 보다는 검증되고 안정적인 전술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화, 언어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가 좀 조사해보면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 중국과의 관련성은 거의 없고 북방민족과 한반도 민족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면 볼수록 몽골이나 만주,시베리아 등지의 소수 민족들이 주장한다면 몰라도 하족/화족으로 대표되는 중국이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주장하는 억지라는 생각이 깊이 드는 생각입니다.

tetraisol님께서 반박해 주시면서 더욱 많이 배우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답변을 주셨는데, 우선적으로 깊은 관심과 높은 평가 참으로 감사드리며 우선적으로 1번 부터 답변드리겠습니다.

아래는 일본 죠몬 유적지에서 흔히 발견되는 귀걸이입니다. 그 아래는 제주도에서 발견된 귀걸이 이지요,



아래는 홍산문화에서 나온 귀걸이 입니다.




말씀하신 귀걸이를 결상이식(玦狀耳飾) 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수직으로 귀에 걸고 다닌 장식품을 통칭하는 것인데 사실 처음에 출토 되었을때는 이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다가 1917년 일본 오사카의 코우 유적지에서 인골이 발굴되었는데 그 때 두개골 양 옆에 위치하였기에 이것이 귀걸이 인것을 처음 알았다는 비화가 있습니다.


이러한 결상이식은 비단 우리만의 무언가는 절대로 아닙니다. 한반도와 가까운 큐슈 지역의 경우, 2009년까지 90개 유적 120점 정도의 결상이식이 출토될 정도로 신석기 유적지라면 적게나마 꾸준하게 출토되는 장식품으로서 오히려 상기의 제주도의 유물과 같은 경우를 비릇해서 한반도 동해안 지역과 큐슈 서해안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그것도 일본의 그것이 한국에서 출토되기도 하는등 우리는 이러한 유물에서 무역의 흔적을 찾곤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자면 결상이식은 비단 이렇게 생긴것이나 옥 재질만 있는게 아닙니다.


골무처럼 생긴 것부터 둥구스름하게 생긴 사각형, 가로나 세로의 타원형, 돌칼 같이 생긴것등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재질도 대리석이나 활석까지 다양하며 그 가공 방법 또한 찰절구에 갈거나 가는 실이나 줄에 갈아서 끊어내는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것은 가공 '형상'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며 앞서 언급한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할때 이러한 가공품만으로는 우리와의 직접적인 관계성을 입증하는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난것입니다.





2. 


치성에 대한 유래는 사실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고구려 중기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고구려 말기에 비로소 한반도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이 치성의 경우는 말씀하신대로 고구려 중기와 같은 시기에 중원에서 모습을 가진 유적물이 없는 것이 맞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묵자는 읽어보지 못하여서 답변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러하기에 채희국은 고구려가 원조다 라고 하지만 반대로 손인걸은 북방민족 원조론을 들고 나오고 있지만 서인길은 앞서 언급한 하가점하층문화가 고구려 성곽 문화의 원조가 아닌가 하는 학설을 들고 나오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춘추전국시대 원조론 즉 묵자의 기록을 토대로 주장하는 것은 비단 중국 학자들만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여러가지 학설이 존재한다고 할수 있겠지요,



또 이 사진에서 볼수 있듯이 홍산문화의 치성이라 주장되는 구조물(첫째 사진)은 각진것이 맞으며 아래의 반월산성에서 볼수있지만 비단 우리나라의 치성이 둥그스름한것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실 이러한 성곽의 축조형태를 통해 유사성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어쨌거나 치성을 건축했지만 우리가 해당 민족을 우리 민족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관계성을 입증하는 것에 있습니다.


"옥을 가공한 장식품이나, 석조 성곽이나 문화의 유사성 만으로 연관관계를 점치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행동이다"


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측면입니다.


당장 일본의 문명을 우리가 촉발시켰다고 하지만 우리가 그 만큼 많은 기술과 문물을 전파했지만 일본인을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왜 일까요?



카나리아 제도에는 윗 사진처럼 우리나라 씨름과 꼭 닮은 스포츠가 있는데, 그 들을 우리나라 사람이라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씨름이 전해진게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무역도 있고 기술의 교류도 있으며 유사성도 있지요.


문화의 유사성을 들자면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온 세계에 연관성을 추려낼수 있는게 현실입니다. 


가령 빗살무늬 토기를 본다면 최초로 발견된 곳도 유럽이고 최초의 학술명이나 연구 성과 역시 유럽에서 나왔습니다. 


폴란드 독일 스웨덴 러시아 중국 일본 등등 빗살 무늬 토기의 출토지는 그 만큼 많지만 우리가 이 빗살무늬토기 문화권안에서 우리의 문화권을 한정 짓는것은 그 안에서 우리와의 명백한 관련성을 찾았고 입증할수 있었기 때문일뿐이지 우리의 문화권 내에서만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된게 결코 아닙니다.


홍산문명을 아니 일본의 죠몬 문화만 열어보더라도 우리와의 유사성은 추려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관련이 있는 한국인의 선조뻘 되는 집단이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되었기에 우리는 별개의 문화라고 바라보는 것이며 홍산 문명 혹은 홍산 문화라 부른 이 들역시 죠몬 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우리는 우리와 관련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겁니다.


덧붙이자면 동북 공정 사업은 한족 정립 사업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국 내에서 자국의 영토를 중심으로 사관을 정리하는 사업이기에 고동북 유형 그리고 고화북 유형 끝으로 고몽고고원유형의 순서로 발굴된 거주 집단의 역사등으로 관련성을 입증한 중국 정부로서는 충분히 홍산문명 내지 문화에 대하여 목소리를 낼수가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관련성이 전무하다시피한 우리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이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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