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누나는 나와 세살 터울로 무포에 있는 명화여고를 변변찮은 성적으로 입학해, 입학 당시 아버지와 구두로 서약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백조로 살게 될 운명에 처한 인간이었다. 찌질한 사립대는 꿈도 꾸지 말고, 그나마 지방 국립대인 G대가 아니면 대학 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선언한 아버지에게 누나는 서약을 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명화여고는 상위권이라야 G대에 갈까 말까한 학교였다. G대는 누나가 꿈꿀 수 있는 학교가 애초에 아니었던 것이다.
G대에 보기 좋게 낙방하자 누나는 하루 낮밤을 앙앙거리고 울었다ㅡ낙방하리란 걸 본인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니 우는 척 했을 거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안 그러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같은 톤으로, 똑같은 박자로 들으란 듯이 울 수가 있단 말인가. 초상집에서 상주들이 곡을 하는 것처럼.
물론 아버지는 막내딸을 엄청 예뻐했다. 그러나 선이 확실했던 아버지는 입학 당시에 약속했듯이 찌질한 2차 대학에 원서를 내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거기다 엄마가 쐐기를 박았다.
“가시나야, 고등 나온 거도 오감한 줄 알아라! 느그 언니야들은 중학도 게꼬 나왔다!“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누나가 쟁취한 것이 취직은 절대로 않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코대답도 하지 않았고, 엄마는 코웃음을 쳤다.
“잘됐다, 가시나야. 시집갈 때까지 집에서 일이나 거들어라.”
누나는 또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가지 더 쟁취한 것이 G대를 목표로 혼자서 재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학원을 다녀도 지난 번 성적을 까먹기 십상인 것이 재수인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대학보다 돈이 더 드는 학원에 보내달라는 것은 씨알도 안 먹힐 걸 알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집에는 있되 집안 일은 일절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었다. 누나는 공부는 별로였지만 고집은 셌다.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내가 막내누나에게 악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은 이 인간이 나의 자취가 확정되자ㅡ자취가 너무나 당연하던 시절이라 결국 마땅한 하숙집을 구하지 못했다ㅡ 나의 밥순이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오는 것이었다. 자기가 언제부터 알아봤다고 우리집의 기대주요, 미래에 우리 문중을 떠받칠 인물이라고 나의 인물됨을 턱 없이 과장까지 해가면서 그런 나를 연탄 가스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겠으며, 지난 3년간의 자취경험으로 ‘자취의 신’이 된 자신이 내가 오직 공부만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책임지고 제공하겠노라고 기염을 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열심히 공부를 해서 기필코 G대에 입성하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공부만 하겠다고 선언을 했지만 집에 있다가는 바쁜 농번기엔 강제노역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늦잠을 자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이고ㅡ누나는 자기가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주나 되는 것처럼 늘 늦잠을 잤는데, 겨울 방학 때 한번은 오후가 되도록 자고 있는 누나를 보고 열불이 난 아버지가 얼음이 떠다니는 양동이를 얼굴에 엎은 적이 있었다. 요즘 같으면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한 셈이었다. 그때, 놀란 누나는 추워서 이빨을 부딪치면서도 아버지가 무서워 울지도 못했다. 그 이후로 한동안 누나는 정말 일찍 일어났다ㅡ, 외출마저 쉽지 않을 것을 계산했을 것이었다.
아침에 잠깐 일어나서 내 밥과 도시락을 챙겨주고는 다시 실컷 자고 일어나서, 공부를 하는둥 마는둥하다가 내 저녁밥을 챙겨 놓고는 친구 백조들을ㅡ끼리끼리 논다고 못생긴 도토리 키재기 하는 것처럼 고만고만하게 공부를 하다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핑계로 놀 친구들이 무포에 좀 많겠는가ㅡ 만나서 놀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그러니까 자신의 학창시절을 3년 더 늘리겠다는 심뽀나 다름 아니었다.
누나의 학창시절을 두 배로 늘리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그러면 내 학창시절은 어떻게 하는가. ‘고교생활 멋지고 재밌게 즐기기‘ 프로젝트를 시작도 하지 못한 나는 어쩌란 말인가. 깡촌인 기서를 벗어나 여고가 7개나 되는ㅡ남고야 몇 개가 되든 내 알 바 아니었다ㅡ 무포에서의 3년간의 계획을 머리속에 다 짜놓은 상태였던 나는. 물론 그 계획 속에는 ‘공부도 그런대로 열심히 한다’는 항목도 들어 있었지만 대개는 공부와 거리가 한참 먼 항목들이었다. 그런데 누나가, 방도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다 감시하려고 들 텐데 그 일을 어쩌란 말인가. 큰일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원래 막내누나와 나는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샘이 많았던 누나는 남자인 내게 부모님의 관심이 집중되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둘만 있을 때 두들겨 맞은 적도 많았다. 물론 내가 일러바치는 바람에 누나는 나를 때린 것보다 엄마에게 더 많이 맞곤 했지만 그런데도 나를 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집이 말도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힘과 몸이 자기보다 커지자 때리기는 멈추었지만, 그때부터는 나를 고자질 해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막내누나 때문에 정말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랬으면 됐지, 누나는 이제와서 내 청운(?)의 푸른 꿈마저 짓밟으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누나에게 딱 잘라서 싫다고 했다. 나 혼자서도 까딱없이 멋진 자취생활을 영위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환장할 일은 엄마나 아버지 모두 누나의 계획에 긍정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내가 공부를 더 많이, 더 열심히 할 수 있으리란 이유였다.
나는 누나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것을 시연까지 해 보여야 했다. 그리고 여론공작에 돌입했다. 누나가 내 핑계로 잘 놀려고 한다는 따위의 지금 당장 입증할 수 없는 것으로는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므로써 닥칠 비상한 위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가 현재 사춘기라는 것이었다.
내가 설득해야 할 사람은 엄마였다. 아버지에게는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뭐든 엄마를 통해 전달하던 때였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엄마에게 나를 누나와 둘이서만 한 방에서 자게 하는 것은 돌쇠에게 마님의 전신마사지를 위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지만, 사춘기 남자애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한 짐승들이란 것을 에둘러 이야기했다. 특히, 아버지가 장가를 열 일곱에 들었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이때, 엄마는 그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렸던 것인가, 얼굴이 살짝 붉어졌던 것도 같다.